빈자의 딸로 태어나 자라면서부터 주위로부터 왠지 모를 귀티가 난다, 품위가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듣던 그녀는 자신이 여염의 아낙으로 평생 늙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거기까지는 종종 있을 수 있는 것은데, 그녀는 대담하게도 자신이 옛 왕조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며 대도시의 고위층에게 접근했다. 그 주장 자체는 진짜라는 이야기도 있다. 놀랍게도, 그녀의 말을 믿어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녀는 재산도 없었고 신원을 보증해줄 친인척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일류 사교계에 진출할 수 있었고 거기서 사람들과 교유를 쌓을 수 있었다. 그 뒤부터는 그 교유가 바로 그녀가 백작이라는 증거가 되었다.

그녀는 큰 돈을 얻어낼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다. 대주교에게 접근한 그녀는 자신이 총신 중 한명임을 대주교가 믿게 하는데 성공했고, 최고 권력자와의 탄탄한 끈을 강하게 원하던 대주교는 그녀의 사기에 홀딱 빠져들었다. 하일라이트는 위조한 위임장. 결국 대주교는 엄청난 고가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구입했고, 백작을 자처하는 그녀에게 주어 최고 권력자에게 전해줄 것을 요청했다. 당연히 그녀는 그 목걸이를 전해주지 않았고, 자신이 꿀꺽하고 삼켜버렸다. 대주교는 자신의 목걸이가 아무런 답례도 얻어내지 못하자 직접 탐문을 시작했고, 대주교의 수표가 액수가 부족하다고 생각한 보석상이 최고 권력자에게 직접 불평을 늘어놓았다. 여기서 이 이야기가 세상에 퍼져나가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앙투아네트의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이다.

애초에 처음 루앙의 추기경, 문제의 그 대주교와 라모트 여백작를 조사해 진상을 밝히라는 지시를 내린 것은 루이16세와 앙투아네트 부부였다. 그들은 이 사건이 대체 뭔지 알 수도 없었거니와, 추기경이 제시한 위임장에 써있는 서명(마리 앙투아네트 드 프랑스)이 예법상 말도 안되는(왕족은 서명에 성을 쓰지 않는다) 내용이기도 하니 사건이 자명하다고 생각했을 것이었다. 어쨌든 사건 조사가 마무리 된 뒤에 추기경은 무죄임이 밝혀졌고, 궁정사제장에서 지방의 수도원장으로 좌천되었다. 사기꾼들은 종신형이 언도되었고, 여백작 자신은 창녀를 가두는 감옥에 투옥되었다. 왕가는 사건이 이것으로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염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당시는 끝물이라고는 해도 절대왕정의 시대였고, 감히 왕가를 사칭해서 그런 거액(당시 정부 지출의 1%으로서 오늘날 한국정부로 비례해서 보면 3조원이고, 물가를 기준으로 보면 1.3조원이다)을 사기친 사람들이 국외로 달아나지도 않고 파리 시내에 계속 거주하고 있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보았다. 또한, 시민들은 왕가의 전속 승려인 궁정사제장 보좌에 있는 루앙 추기경이 왕비처럼 꾸민 배우를 보고 왕비인 것으로 속았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왕가에서 조사를 명해 왕가와 루앙추기경(사람들이 보기에 권력자들인) 이들만 무죄로 판결한 재판소가 왕립 재판소인 것도 신뢰를 떨어뜨리는 중요한 문제였다. 대체 1.3조원이나 되는 명품을 선물해서 추기경이 무슨 이익을 얻을 수 있으며 그 이익은 어디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냐는 것도 중요한 관심사였다. 모든 시대에 퍼져있기 마련인 "유명인을 배경으로 하는 찌라시 음란물"에서 앙투아네트와 자주 묶이는 사람이 루앙 추기경이었던 것도 아마 문제를 가중했을 수 있지 싶다. 결국 여염의 사람들은 이 사건 자체가 고가의 다이아몬드를 가로채려는 왕비의 음모로 만들어진 날조였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상식처럼 퍼졌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난 뒤, 시민들이 혁명 법정에 이 문제를 다시 제소했던 것은 무리가 아닌 셈이다. 이 일때문에 앙투아네트가 처형당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처형 죄목 중에는 이것이 포함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판결문을 읽을 능력이 없어서 확인 못했음)


Posted by Chlo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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