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대란이 임박했다고 언급되는 것치고는 분석이나 탐구가 적은 것처럼 보인다. 개인적으로 신경써서 찾아보아도 의사들이 왜 이렇게까지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는 것인지 그 논리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기는 어렵다. 이에 대해 일부 언론이나 인터넷 여론 등은 의사들이 힘이 있기 때문에 이기적인 주장을 밀어붙이는 것이라는 뉘앙스의 논리를 펴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은데 이는 매우 강한 가정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현실적으로 의사들이 우려하는 지점들을 파악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기는 하다.


   따라서 일단 의사들이 합리적 이유가 있어서 반대한다고 가정을 해보고, 관련 논의들을 관련 연구자료(`11. 연세대, `21. 보사연, `23. KDI), 의사협회 임원 등의 발언, 관련 분야 연구 등 바탕으로 추정해보았는데, 다음 취지가 아닐까 싶다. 다시 말하지만 아래 이야기는 내 생각과 무관하며, 의사들이 반대하는 대외 논리라고 추정한 것에 불과하다. 모두 사실과 다를 수도 있다. 



󰋼 목적 관련 : 의사 증원이 필요한지

  의사 증원은 그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고,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성, 의료서비스의 질적 향상, 국민 수명이나 건강의 증진, 국가적인 의료비부담 경감 같은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문제는 한국의 의료서비스 수준이 이미 세계적이라는 점이다. 종합지표를 보자. 단적으로, ‘제대로된 의료 서비스가 있었다면 죽지 않았을 사람’은 10만명당 142명으로 OECD 평균인 239.1명보다 한참 적다(OECD 5위). 기대수명도 매우 높다. OECD 평균인 80.6세보다 상당히 높은 83.6년이다. 반면 외래 진료수는 국민 평균 연 15.7회로 OECD 최고이고, 그러면서 경상의료비는 GDP의 9.3%로 OECD 평균에 하회한다. (OECD Health Statics 2023, `23.7.26 보건복지부) 개별 지표별로도 한국의 의료서비스는 세계 최고수준이다. 예컨대 수술대기의 경우 한국은 백내장 수술은 당일 즉시 수술이 가능한데, 한국 외에는 이런 사례가 없다. 북유럽 국가조차도 44일(스웨덴)~108일(노르웨이)이 소요되고 있다. 영유아사망률, 심근경색 시술, 그 외의 수술, 투석 등등을 보더라도 그렇다. 세계 최고 수준을 이미 달성하고 있다면, 급격한 제도 변화가 정말 개선을 야기할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서 믿을만한 레퍼런스가 없다는 의미일 수 있다. 이미 인구 1천명당 의사수가 훨씬 더 많은 국가들에서도 의료서비스 수준이 한국보다 낮기 때문이다. OECD는(OECD Health at a Glance, `23) 건강상태, 건강위험요인, 의료접근성, 의료의 질, 의료자원 등 5개 지표별로 각각 4개의 하위지표를 설정(총 20개 하위지표)해 선진국 의료 상황을 진단했는데, 한국은 이 20개 하위 지표 중 4개는 우수한 수준(기대수명, 회피가능했던 사망, 비만율, 천인당 병상수), 1개는 개선 필요(의료비 개인부담율)을 달성하고 다른 지표는 모두 평균 정도를 기록했다. 국내 전체 노동시장 중 보건분야 인력의 비중도 한국(9.3%)은 OECD 평균 수준(10.5%)이었다. 의사 수의 증가도 매우 빠른 편이었는데, `11년을 기준으로 `21년을 비교하면 약 31%가 증가하여, 프랑스(+8%), 일본(+14%), 영국(+23%), 그리스(4%)보다 빠르게 증가하였다. 한국보다 증가 속도가 빠른 국가는 호주(+39%), 노르웨이(+35%)에 불과하였다. 이를 고려하면 의사 수 증원의 효과도 신중하게 봐야한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애초에 문제의 초점이 다른데 있을 수도 있다. 이를테면, 너무 많은 환자를 병원에서 보도록 하는 것이 문제라는 가설이 제기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진료 거부를 금지하고 있는데다가(의료법 제15조) 사실상 모든 질환을 건강보험에서 지원하고 있어서(`23.4.4 의료보장혁신포럼, 보건복지부 주관) 의료체계의 양적 부담이 큰 편인데, 그로 인해 의사인력 부족 체감이나, 짧은 진료시간 불만 등이 나온다고 보는 것이다. 모든 나라가 이런 제도를 택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유럽국가들 중 상당수는 주치의제도를 두고 있는데, 이 주치의 승인이 있는 경우에만 별도의 전문의나 상급의료기관에 찾아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 결과 의료체계에서 중증 환자 위주로 운영되어야 맞을 종합병원조차 외래 환자의 18.9%를 경증 환자로 맞고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21년 기준, 국회 최혜영 의원실) 보건복지부는 105개 경증질환을 지정하여 별도로 관리하고 있는데, 상급종합병원에서 105개 경증질환으로 진료받은 진료비 지출은 총 4.79조원(`18년 기준, 보건복지부)에 달하며, 전체 건강보험예산(63.0조원)의 7.6%이다. 의원과 같은 기초의료기관, 2차 의료기관인 일반종합병원을 제외한 수치임에도 그렇다. 같은 해 건강보험 재정의 적자 규모는 3.89조원(`18년 건보공단 재무결산 공시)인데, 그보다 큰 수준인 것이다.


  이와 관련된 사례로 제시되는 것은 예를 들어 주취자 문제가 있다. 주취자가 길에서 자고 있는 것을 누군가 발견해 신고하면, 경찰 또는 119는 이 사람을 응급실로 데리고 가고, 응급실에서는 이 사람이 술에 취한 것인지, 다른 질환이나 상해가 있는지를 검사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22.10.17 의학신문, “의료접근성에 관하여) 경찰은 21개 주취자응급의료센터를 지정하고 있으나, 이 곳의 이용 건수는 연간 6,332명으로 전체 주취자 97.6만건의 0.6%에 불과한데(`22년 기준), 그 외의 의료기관에 이송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주취자 문제를 오히려 병원에 더 많이 부담을 주도록 하는 대안도 상당히 제기되는 모양이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주취자가 발생한 경우 초동부터 의사의 검진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권고(`23.2.27, 입법조사처 이슈와 논점 2064호)하기도 했는데, 같은 보고서에서 검토한 4건의 해외 사례(영국, 호주, 일본, 프랑스) 중 오직 프랑스에만 의사의 검진 의무 제도가 존재함에도 그렇게 제안했다는 점이 이상해 보인다.


  이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지표가 있다. OECD에 따르면 한국은 신기할 정도로 국민 개개인이 본인 건강에 대한 자신감이 낮은 국가이다. 본인이 인식하는 건강상태(Perceived health status, OECD STATS에서 `24.3.2 19:52에 확인)에 대해 `22년 한국인들은 단 49.2%만 건강하다고 응답하여 37개국 중 최하위 수준(34위)였고, 건강상태가 안좋다고 응답한 사람도 14.3%에 달해 37개국 중 5위로 높았다. 이보다 열악한 나라는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크로아티아와 같은 의료접근성이 현저히 좋지 않은 국가나 포르투갈 뿐이었다. OECD 회원국 중 6위의 기대수명, OECD 평균에 하회하는 전염병, 순환계질환이나 암으로 인한 사망률 등을 고려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수치이다. 이는 한국인들이 평시 건강수준이 실제로 낮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으나(장시간 근로 관행이 OECD Review of public health : Korea(`20.3월) 보고서 내에 언급되고 있다), 반대로 건강에 과민하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 한국에서는 일선 의료시스템에 경증환자 부담이 매우 극심하게 체감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고,


  어떤 시각에서는, 한국이 선진국에 비해 진료 대상을 과도하게 넓히고, 의사의 의무를 과도하게 넓혔기 때문에 사람이 부족하다고 볼 여지가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의사들이 지적하는 ”우선 해결해야 하는 구조적 문제“(`24.2.25. 의협 범의료계대책특별위원회, 집회 중 이필수 회장 발언) 중에는 이런 부분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 목적 관련 : 의사 증원으로 기대한 효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인지

  기실 지금 의료분야의 쟁점은 단순히 의료서비스 개선이 아니고, 격차의 해소일 것이다. ①흉부외과와 같은 일부 과와 그 외의 과 간 소득격차가 너무 커서, 저소득 전공에 인력유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②의사들의 서울 쏠림이 커서 지방에서는 매우 높은 보수를 지급한다고 해도 의사를 구하지 못하는 무의촌(無醫村)이 발생하고 있다. ③의사와 그 외의 분야간에 소득격차가 너무 커서 입시단계부터 거의 모든 학생들이 의대진학준비에만 몰입하고 있다.

  의사증원론은 이 격차 해소를 위해 의사를 늘리자는 것이다. 공급이 증가하면 더 많은 수요가 충당되는 것은 기초적인 수요공급이론이기 때문에, 일단 일리는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인력 수급이 개선되기 위해서는 공급 확대가 실제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의사의 수가 경제적 유인을 악화시킬만큼 증가하게 된다면 그것도 문제일 수 있다. 의사의 수 자체는 중요한 게 아니고, “활동의사”의 수가 중요한데, 현재는 의사의 92.5%가 활동의사이므로 의사 면허의 수 증가가 관건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경제적 유인이 크게 악화된다면, 면허수와 활동의사간 괴리가 커질 수 있다. 실제로 그런 면허직종이 존재하는데, 다름 아닌 간호사다. 간호사는 자그마치 27.2%가 비활동 인력이며, 아예 타 직업으로 전환한 경우도 10.2%에 달한다.(`22년 복지부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 기실 이 수치조차도 과대평가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의료기관에 종사하는 간호사의 비율로 따지면 52.8%에 불과하기 때문이다.(`23. 대한간호협회, 활동간호사 중 양호교사 등 다른 기관에 종사하는 경우 제외시) 의사도 충분히 이렇게 될 수 있으며, 정원 확대의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 유인과의 관련성은 낮으나(일 가정 양립을 지적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01년에 비해 `21년 의사 수는 32.9% 확대되었는데, 활동 의사는 오히려 6.7% 감소하여 의료 공급 악화가 있었다는 연구도 있다. (`22.9.19, E.Rhodes, JAMA)

  한편 공급 확대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격차 개선까진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격차가 실제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서울-지방간 의료인력 격차로 보면, 한국은 대도시와 시골간 의사 분포가 인구 1천명당 2.5명 vs. 1.9명인데, 이 0.6명p의 차이는 OECD 평균(1.5명p)보다 훨씬 적은 것이며, 이보다 격차가 적은 나라는 에스토니아, 스웨덴, 일본 등 소수에 불과하다.(OECD Health Statics 2019, 의협 의료정책연구원)

  격차가 실제로 큰 문제라고 해도 다른 구조적인 문제로 공급 확대가 해결방안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우선 해결해야 하는 구조적 문제“(`24.2.25. 의협 범의료계대책특별위원회, 집회 중 이필수 회장 발언)로서 같은 날 집회에 참석한 전남의사회 선재명 의장, 한국여자의사회 홍순원 회장은 그 구조적인 문제가 바로 저수가와 사법리스크라고 짚어 언급했는데, 특정 전공에 치우친 사법리스크는 의사 공급이 확대되더라도 해소되지 않을 문제일 수 있다. `18~`22년간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로 기소된 의사는 하루 3명, 연평균 754.8명에 달하는데(`23.10.24. 의협신문, ”'하루 3명 꼴 형사기소' 의사 사법 리스크 '상상초월'“), 의료분쟁조정법 제46조 1항에서는 보건의료인이 충분한 주의의무를 다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의료사고의 경우를 분만으로만 한정하고 있고, 책임 범위를 넓게 인정하고 있어서 그렇다는 지적이 있다. 외국은 이와는 다르다. 일본은 `11~`15년 동안 연 평균 4.2명의 의사만 기소되었다. 영국은 `07~`18년의 12년간 단 37명의 의사만 경찰에 입건되었고(기소와 다르다) 미국은 의사의 업무상 과실치사상이 인정될 수 있는 행위를 약물과다처방과 같은 사항으로 나열하여 규정하고 있다. (`23.3.3, 의협 의료정책연구원, ”필수의료 활성화를 위한 정책방안 연구“). 의료 분쟁으로 넓혀서 보면 더욱 사례가 많다.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인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20년 한 해에 접수된 의료분쟁은 1,905건인데,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로 기소된 의사 평균의 2.5배가 넘는다. 매년 의사 100명당 1.84건이 접수되는 셈인데, 이 수치는 신경외과(의사 100명당 7.55건), 정형외과(5.79건), 흉부외과(3.22건), 응급의학과(3.02건) 등에서 더욱 높다. 평균 이상인 과 중 이른바 인기과는 성형외과(4.78건) 한 곳에 불과한 실정이다. 평균적으로 건당 1100만원의 중재금으로 합의되고 있는데 위 과들은 대체로 합의금 수준도 높은 편이다. 이같은 구조가 유지된다면, 의사 수를 증원하여 인기과의 수익성이 악화된다고 하더라도 인력수급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는 지적이 가능할 것이다.



󰋼 산출규모 관련 : 증원 규모가 적정하게 산출된 것인지

  연 2천명의 증원 규모의 근거에 대해 보건복지부(`24.2.1.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24.2.6. 의사인력 확대방안 긴급브리핑)는 KDI, 서울대, 보사연 연구를 제안했는데, 정확히 해당 자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엄밀하진 않으나 다음 내용일 것으로 보인다. KDI(`23.6.27. 의사인력 수급추계 전문가 포럼에서 권정현 박사가 발제한 자료), 서울대(`20년 간호대 김진현 교수, ”의사인력의 중장기 수급추계와 정책 대안“, 의대 김윤 교수, `23.10.17. CBS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 각종 포럼 참석 등), 보건사회연구원(`21.12월, ”전문과목별 의사 인력 수급 추계 연구“). 이들 자료는 대체로 `30년 기준으로 의사가 1.4~2.6만명 부족할 것이며, 그 해소를 위해서는 의사 정원을 2~4천명 증원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 중 일부에 대해서는 의사 측에서 이견이 있는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보사연의 자료에서는 의료서비스 공급을 주 40시간 근무, 연 19일 연차 등 휴가 사용 등을 토대로 226일간 근무한다는 전제로 계산했다. (`23.12월 보건사회연구원, 국민신문고 답변). 의사들의 실제 근로시간을 반영한다면(`16 전국의사조사, 연 300일, 주 50시간 근로) `35년 기준으로 오히려 3.5만명의 감원이 필요하다고 계산된다는 문제가 있다.(`23.4.8., ‘공정한 사회를 바라는 의사들의 모임’ 블로그 게시물, `23.4.25 보사연 해명자료)

아울러 `23년 정부 요청에 따라 전국의 각 의대가 있는 대학교에서 제출한 내년 즉시 증원가능한 최소 2,151명에서 최대 2,847명의 의대 정원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어 보인다. 위에서 언급한 ‘공정한 사회를 바라는 의사들의 모임’은 동 수치가 실제 증원이 필요한 의대생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의대생 양성의 손익분기점 달성에 필요한 의대생 수라는 의견이다. (진위 여부는 확인 곤란) 따라서 이걸 근거로 필요 인력을 산출하는 것은 모순적이라는 지적도 있는 상태이다.

  외국 사례를 단순하게 가져와서 비교하는 것이 적절할지도 의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현재 한국의 의사 증원 논리 중 중요한 부분은 OECD 평균 의사수준(1천명당 3.7명)에 한국의 의사(2.6명)가 크게 부족하다는 점인데, 국가별 의료시스템의 차이, 인종 및 민족별 유병률의 차이 등이 고려되지 않은 단순 비교라는 한계가 있다. 기실 이는 매우 중요하다. 예컨대 한국에서는 세계적으로 4400만명이 걸려있고, 매년 11만명이 사망하는 SCD의 유병률이나 사망률이 현저히 낮아서 의료통계에도 드러나지 않는 수준이다. (NIH `21년 통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22년 건강보험통계연보 등) 이것은 한국의 높은 의료수준을 의미하는가? 아니다. SCD(Sickle Cell Disease)는 아프리칸계 인종에게서만 발병하는 유전병인 것 뿐이다. 한국의 성인병(고혈압, 당뇨병 등) 유병률은 OECD 평균과 유사한 수준인데, 이는 한국 의료 수준이 평균수준이라는 의미일까? 그것도 아닐 수 있다. 성인병 유병률이 비만율, 기대수명 등에 복합적으로 관련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은 비만율은 매우 낮고 기대수명은 매우 길다. OECD Health at a Glance, `23) 이같은 차이를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적정 수준을 따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할 수도 있을 법하다.

 

 

 

󰋼 이행가능성 관련 : 인력 양성 및 배치가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레지던트(Resident)는 현대에는 의사 면허를 취득한 자가 구체적 전공과정에 들어가서 수련을 받는 과정에 있는 자로서 대체로 2~5년차인 자를 의미한다. 이 말은 병원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거주하며 의료행위를 하는 자들이라는 의미에서 시작한 표현이다. 대체로는 Osler, Halsted 등에 의해 1889년 존스홉킨스 병원에서 처음 시작한 것으로 보나, 일부(미시간주립대)에서는 1874년경 미시간주립대병원이 더 선도적으로 도입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레지던트 과정의 필수성은 다음의 두 가지로 설명되는 것 같다. ①의사 면허를 취득한 자만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데, 의료행위는 특성상 해봐야 습득할 수 있다는 점이다. ②응급환자의 존재 탓에 병원은 24시간 언제나 열려있어야 하고, 초도 대응단계에서는 중증 환자 외엔 검사행위가 주로 필요한데, 이를 위해 대규모 전문의 인력을 상시 대기시키는 건 효율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이같은 특성에 따라 19세기 말 존스홉킨스대학병원(혹은 미시간병원)에는 상주하는 의사제도를 도입하였고, 신규의사들이 그 대상이 되었다.

  응급환자의 계속성있는 진료를 위해 초기에는 레지던트가 연속 30시간 이상을 근무할 것을 요구했으나, 현대에는 20시간 정도로 조정되었다는 지적들이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연차가 낮은 레지던트들은 주요한 의료행위에 있어서 모두 높은 연차, 혹은 상급자의 지도와 편달을 받아야 하는데, 그것이 수련의 의미인 동시에 잘못된 의료 행위는 환자를 순식간에 장애나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레지던트 양성을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상급자가 이미 존재하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단번에 교육 역량을 넘는 수준의 증원을 할 경우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의사를 양성하게 되거나, 혹은 의료사고가 유발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 사회적 부담 관련 : 증원이 야기할 부차적인 문제는 없는지
  교육체계 부담 외의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재정지출 확대, 그리고 유인수요의 문제로 보인다.

 

  유인수요는 ”전문가는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데, 의사 수 확대가 과잉진료와 과잉치료 유발로 연결될 것이라는 우려가 그것이다. 기실 이 문제는 실존여부, 그 규모 등에 대한 증명이 매우 어려운데, ‘유인수요라고 증명할 수 있었다면 이미 그 나라 건강보험체계가 거부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인수요가 실재한다고 하더라도, 보험심사체계에 대한 의사들의 적응과 함께 발달하기 때문에 그 규모를 추정하기는 어렵다. 경험적 연구가 다수 있는데 이 유인수요의 실존 여부에 대한 판단이 엇갈리는 편이다. 다만 의사의 보수체계를 함께 고려하면 유인수요가 있다는 의견이 우세한 것처럼 보인다. 의사가 제공된 서비스의 양에 따라 보수를 받는 ”행위별 수가제“의 경우 유인수요가 확실히 나타날 수 있다는 견해들이 있다.(`00. Handbook of health economics, McGuire) 이를 함께 고려한 최근 연구에서는 의사수가 1% 증가할 때 사람들의 병원 방문횟수가 0.75% 증가하였고, 처방비용도 0.4% 증가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22 A.Dzampe, ”Competition and physician-induced demand in a healthcare market with regulated price: evidence from Ghana“, NIH) 과거의 유인수요에 대한 연구들(Fuchs(`78), 의사 비율 10% 증가시 수술이용률 3% 증가, Cromwell(`86), 의사증원시 선택수술 선택 비율이 통계적 유의미한 수준으로 증가 등)과 유사한 결론이라고 볼 수 있다.

  재정지출과 관련해서는 영국의 사례를 참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영국은 지금 논란이 되는 한국 수준 이상으로 의대생 정원을 크게 늘린 경험이 있다. 그 이전까지 영국 의대 입학자는 `90년대말 연 5,062명에서 `00년대 초 7,932명으로 급격히 증가하였다. 당시 영국은 `60년대 이후로 의대정원 증가없이도 꾸준히 의사수가 증가하고 있었으나, OECD 당시 평균인 1천명당 2.9에 크게 하회하는 2.3명 수준을 기록하였고, 일과 가정의 양립을 바라는 의사가 늘고 있어 투입근로시간이 줄어드는 추세였던 문제가 있다.(당시 논문에는 ”여의사의 증가“를 지적하고 있기 까지 하다) 이같은 문제의식이 대폭적인 증원으로 연결되었다. 당시 대폭적인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해 일부 논문은 연수에 필요한 병원(아래 수련병원) 신설, 증축 등 사회적 비용은 상당히 늘어난 반면, 수련병원 특성상 효율성은 낮았고, 생산성도 악화된 것으로 평가되었다. (`06.6, K.Bloor. ”Do we need more doctors?“, JRSM) 반면 현장의 분위기는 상반된 것으로 보인다. 단적으로, 영국의 의과대학협의회(MSC)는 `21.10월 영국의 의대 정원을 당시 9,500명에서 14,500명으로 증원할 것을 요청하였는데(The expansion of medical student numbers in the united kingdom MSC position paper), 그러면서 동시에 이 보고서에서는 의사들을 숙련시킬 교육 및 임상체계가 부족하다는 것을 함께 지적하고 있다. 아울러, 5천명의 의대 정원을 늘리기 위해서는 매년 약 10억파운드의 재정지원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요청하고 있는데, 이는 16.8조원에 해당하는 액수이다.



󰋼 단기적 인력 부담 관련

   사실 의사들이 가장 자주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논리가 가장 설명되지 않는 지점은 이 부분 같아 보인다. 정부의 정책대로 연간 2천명의 증원이 있을 경우 흉부외과 등 비인기과의 의사들이 오히려 유출될 것이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일견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주장이 아니다보니 논리가 필요한데, 설명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어디에도 관련 문헌이나 논리를 찾기 어려워서 글자 그대로 추정에 불과한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아닐까 싶다.

- 금번과 같은 고강도의 개편에도 여전히 비인기과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점
- 정원 확대시 7~10년 후에는 의사 수익성 악화가 우려되므로, 비인기과 의사로서는 지금 바로 이탈할 유인이 강해지는 점
- 이번 의료대란으로 전공의 대부분이 이탈해서 재직 중인 전문의의 업무부담이 심각한 수준까지 가중되고 있는데, 과거 경험으로 볼 때 이 조치가 장기화될 것이고, 이를 견디지 못할 것이 예상되는 점.(`00년 의약분업 사태 때는 2~10월간 진행되었고 의료기관별로 기간 중 4~8개월간 전공의없이 업무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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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우크라이나 행정부의 젤렌스키 대통령이 한국 국민을 향해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요지는 '한국도 6.25 때 지원을 받아봤으니, 지원의 필요성을 알 것이다'는 것이었다. 내 생각에 위기를 겪는 나라라면 국제적 지원을 얼마나 간절히 원할지 알지 않냐는 취지로 보이긴 했는데, 이게 인터넷 일부에서는 꽤 반감을 사고 있는 모양이다. 

 

 관련 기사(요지가 잘 드러나진 않았다) :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30530500133&wlog_tag3=naver 

 관련 인터넷 게시글(제목부터 반감이 드러난다) : http://m.slrclub.com/v/free/40124865

 

 아래 글을 쓴 사람들의 반감도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긴 하다. 저 지원을 받은 바로 그 전쟁에서 우크라이나 지역은 분명히 북한을 지원했으니까.

 

 문제는 그 반감이 선진국 관점에서 그렇게 이해가능한 것이 아닐 거 같다는 점이다. 우선 젤렌스키 대통령이 호소한 건 그냥 국가적 경험의 유사성인데, 인터넷 도처의 반발은 굳이 그 경험의 진영을 가르는 것을 근거로 삼는 점이다. 이게 합리적 반론으로 보일 것 같지는 않다. 둘째, 6.25 시점에서 우크라이나에 주권이 없었다는 문제가 있다. 따지고 들자면 6.25 당시 진영에 따른 반론은 오히려 "그럼 2차대전에 일본 식민지로서 참전한 한국은 패전국인가"는 반론에 취약하지 않겠나. 

Posted by Chlo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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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시적에 핵전쟁에 관한 자료를 보다가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전술핵무기 1발을 투발해서 기갑중대 1개를 타격할 수 있다는 부분 때문에 그랬다. 기갑중대면 고작 전차 10대 남짓이고, 국군의 전차는 2천대가 넘는데? 산술적으로 핵무기 200발을 투발해야 한국군의 야전 기갑역량을 뭉갤 수 있다는 건가? 이어지는 내용은 더 놀라웠다. 나가사키와 히로시마를 날려버린 핵무기(15kt)보다 훨씬 강한 핵무기로도 적국의 핵미사일 사일로를 거의 직격하지 못한다면, 적국의 핵무기가 살아남아 반격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그것이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엄청난 정밀도를 갖추도록 진화한 이유라는 것이다. 

 이 분야를 잘 모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당시 나도(그리고 지금도) 핵무기는 최종적인 무기라고 생각했다. 재래전이 한참 오간 다음, 갈등 수준이 고조되고, 그 상승의 끝에서 견디지 못한 일방이 핵무기를 발사하고, 그 보복으로 맞불을 놓으면서 세계적인 멸망의 길을 걷는 것이 핵전쟁에 대한 일반인의 시각일 것이고, 나도 그랬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핵무기가 저렇게 위력이 제한적이라는 것은 놀라운 일 아닌가? 아니 지구를 태울 업화가 고작 탱크 10대와 콘크리트 동굴을 못 뚫어?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상한 것은 더 있었다. 핵무기는 대전략 차원에서 활용되며, 대위력이고, 전장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까지 공격할 수 있는 전략핵무기와 그보단 소형이고 전술적 차원에서 사용하기 위한 전술핵무기로 구분된다. 전술핵무기는 다시 핵포탄, 핵어뢰, 핵 공대공미사일, 핵가방 같은 것이 있는데, 알아보면 핵미사일은 핵미사일로 요격하고, 적의 전투기 편대는 핵공대공 미사일로 요격하는 일상적 핵사용까지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이 무기들은 최소한 이른바 "핵만능시대"에는 분명히 사용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것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끝없이 보복하다가 공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냥 국지적인 전투에서 사용되어 적을 크게 타격하는 정도로 기획된 무기로 보인다. 

 알아 보면 볼 수록 핵무기란 건, 일반적으로 흔히 오해하듯이 최종최후의 무기이자 인류의 끝을 반드시 갖고 오는 그런 무기는 아닌 셈이다. 핵이 인류사의 종언을 만들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 그냥 인류멸망과 무관하게 핵을 군사적으로 쓸 수 있다고 믿던 자들이 제법 있었고, 그런 전략, 전술도 있었으며, 실제 우리 주변에 그런 준비들이 있던 시기도 있었다는 말이다. 

 실제로 그런 사례들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핵전쟁 직전까지 갔던 쿠바 13일간의 위기(`62.10월) 속 일련의 사태는 차치하더라도, 예컨대 이스라엘군이 핵을 실전 배치까지 했고, 미-소 양국이 이스라엘-아랍간 소규모 핵 분쟁이 있더라도 넘어가자고 했던 `73년 욤 키푸르 전쟁 때라거나, 닉슨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핵 공격을 지시했던 `69년 EC-121기 격추사건 같은 때가 분명히 있었다. 훈련 목적이나 오류가 아니라 명백히 핵전쟁을 염두에 둔 사건들이라 할만하다. 

 기실 `50~`80년대 미국이나 소련은 "핵을 사용하는 전쟁"을 염두에 둔 것 같아 보인다. 예컨데 소련군은 `54년에 "눈덩이 훈련"을 통해서 40kt의 핵무기가 터진 직후 그 지역을 4.5만명의 보병, 300대의 항공기, 1,200대의 기갑부대 등으로 구성된 대규모 병력이 훈련작전을 한 적이 있고, 비슷한 시기 미군도 "사막의 바위 작전"으로 유사한 훈련을 실시했다. `50년대 후반부터는 핵무기가 날아다니는 핵 전장 상황에 적응하기 위한 부대 편제 개편("Pentomic Division") 개편과 같은 작업도 이루어졌고, `70년대 정도 되면 작전 시나리오 자체가 전장에 일단 핵무기를 붓고, 그 다음 주력군이 진입하는 식으로 짜이는 사례까지도 있던 모양이다. 소련을 중심으로 한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라인강으로 향하는 7일" 계획에서는 나토가 먼저 핵 공격을 실시하고, 소련이 그에 대해 유럽대륙 서부 전역에 핵을 날리고 재래식 군대가 들어가 9일 내에 석권하는 구조로 있던 것 같아 보인다. 

 요약컨대, 일반인은 (1) 핵의 사용은 곧바로 전면 핵전쟁을 의미하는 것으로, (2) 핵 사용 자체가 매우 예외적이고, 최종적이며, 보완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핵강대국의 국가원수나 군의 지도부 인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느낌이 든다. 

 핵 자체가 갖는 상징성이나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기 때문에 그 사용 및 통제권이 현재 당장 국가원수 아래로 내려오는 일은 없을 것이나, 사용이 그렇게 불가능하거나, 그렇게까지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도 아니지 않을까 싶어서 정리해둔다. 

Posted by Chlo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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