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TV에서 "왕이 된 남자, 광해"를 하길래 보고 잤는데, 좀 궤가 안 맞는다 싶었다. 내가 뭐 사학 전공자는 아니니 잘은 모르지만 복식이나 가구들은 굉장히 고증을 잘한 거 같은데, 거기에 비하면 이렇게 정치나 사회적 배경 검토를 제대로 안했나 싶;; 아니면 제대로 한 것인데 걍 평 들이 그걸 제대로 못 읽고 엉뚱하게 반응한 걸지도?

혹시 아직 안봤는데 추후 볼 양반이 계시다면 스킵해주세여...

1. 굳이 유교적 관점에서 평을 내린다면 짭광해가 폭군이고 진광해는 폭군이 아니라고 보는 게 타당할 것 같다. 짭광해는 어쨌든 토의와 협의라는 과정이 없이 부르짖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고, 자기 주장만 강행했고, 애초에 다른 거 다 떠나서 유생들 밟으면서 지나간거 하나만으로도 왕망, 동탁 수준 아닌가... 진광해는 그런 거에 비하면 협의도 하고 절차 밟을 거 제대로 밟았고...

2. "역모"가 연루된 점 하나를 빼면 중전의 거취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신하들이 저렇게 강하게 말할 수가 없다. 실제 조선 역사에서도 중전 문제와 같은 "왕의 사생활"에 대한 문제에 대해 신하들이 강경한 말을 많이 뱉긴 했는데, 왕도 또한 "나의 집안" 문제로 간주하고 강하게 대응한 편이다. 저건 신하들이 중전 폐위하러 내몰라 말한다고 왕이 반드시 받아줄 이유도 없다. 다만 문제는 역모... 국문장에서 그냥 역모꾼을 풀어놔줘버리면 근데 그걸...

2-1. 아니 근데 세상 어떤 외척이(정의상 외척은 아니고 처가..지만..) 왕을 내몰려고 그래?;

3. 서인들이 나중에 들고 일어서려는 부분에서 보면 꽤 의아한 구석이 좀 있다. 대신급의 신하를 다짜고짜 왕이 잡아가두고 주리를 틀었다면 당연히 그건 신하들이 들고 일어날 수 있는 건이다. 이건 조선 아니라 명나라였어도 그럴 건데, 그게 쿠데타의 명분으로는 약간 약하다. 하물며 왕의 수라간에서 바로 시비 한명이 피를 토하고 쓰러졌는데, 명분으로 보면 짭광해가 다짜고짜 상궁 한명의 자백만으로 대신 가둔 것도 문제는 있긴 해도 그래도 짭광해가 좀 더 많이 갖고 있는 거 아닌가.

3-1. 그러므로 가짜 왕이므로 처단한다, 라는 게 중요한데 그건 대신들 몇만 공유하고 말 일이 아니라 같이 쳐들어갈 병사들, 그리고 궁을 지키는 시위들에게도 공유되어야만 성사가 될 그런 종류의 일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언론전이 그 앞에 오갔을테고 그 언론전에서 싸우는 게 먼저였어야 하는 거 아닌가?

4. 명분론, 사대론이 논란의 여지가 많긴 한데 외교적 타당성 이런 건 다 떠나서, 광해군 집권기 시절에 놓고 보면 명나라 편을 드는 게 반드시 실리를 버린 것만은 아니었다. 광해군이 파견한 강홍립의 2만 조선군이 참전한 전투의 이름은 사르후 전투이다. 누르하치의 후금은 이 전투에서 압승함으로써 만주 지역의 패권을 쥐었고 나아가 중국 전토를 장악했다. 달리 말하면 이 전투에서 후금이 졌다면 후금은 그런 입지를 차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르후 전투에 투입된 전력이나 전략적 상황은 후금이 압도적으로 불리했고, 후금은 당시 멸망을 생각해야할 상황이었다. 심지어 사르후 전투의 승리로 만주 지역을 후금이 병탄한 뒤에도, 명나라가 멸망하는 바로 그 날까지 후금은 산해관(산후이관, 북경에서 300km 가량 떨어져있는 만리장성의 한 부분)을 한번도 넘지도 못했다. 만일 조선이 당시에 후금 편을 들거나 엄정 중립만을 외쳤다가 전쟁이 끝나고 명나라가 패권을 잡으면 어떤 후폭풍이 닥칠줄 알고 그러나. 다만 현실적으로 명나라가 재정상 위기였던 것은 보이는 현상이었고, 내홍(각종 반란군. 이자성의 반란군이 바로 명나라를 멸망시켰다)이 이는 것도 사실이었으니 최소한 만주는 후금이 장악할 것으로 볼 수도 있었고, 그런 관점에서 후금에게 기우는 정책을 어느 정도는 펴야만 한다는 것이 바로 실리론이다. 다른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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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의 영토 최서남단에 가까운 지역에 섬 몇개가 모인 군도가 있다. 심지어 오키나와에서도 비행기로 한시간은 더 들어가야(250킬로미터 거리)하는 이 곳은 단 10.5만명이 거주하는 사키시마 제도이다. 그야말로 일본의 최고벽지라고 할만한데, 초고대문명설 이야기를 많이 본 사람이라면 알만한 "요나구니 해저유적"이 바로 이 제도 중 한 섬인 요나구니의 인근에 있다.


이 제도 내에는 인구 1천명 이상 거주하는 섬이 총 8개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활주로도 8개가 있다. 이 중에서 단 한개를 제외한 나머지 7개는 활주로 길이가 1500m(사실 2000m 이상) 이상의 대형 활주로. 심지어 3000m이상 활주로도 있다. 이론적으로는 광동체 항공기 중에서도 최대급인 에어버스 A380도 착륙할 수 있는 것. A380 착륙 필요 길이는 2900m이다.


이들 공항은 당연하겠지만 그다지 활성화되어서 사용하고 있지 않다. 인구 1300명 당 활주로가 하나 있는 셈인데, 사실 인구대비 활주로 비율로 보면 한국의 전투비행단 기지 내부보다도 과밀인 셈이기 때문이다. 이들 시설이 지어진 건 오직 이런 이유다 : 버블경제와 확장적 재정정책.


버블기에 남아도는 경제력이 "스쿠버다이빙을 할 사람들을 위해" 같은 이유로 두개의 활주로를 만들었고, 버블 붕괴 이후에는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규모 공공투자의 일환"으로 일본 각지에서 엄청난 토목공사를 벌이는 과정에서 이런 식의 과잉 공사가 나타난 것이다. 일어를 못해서 정확히 검증을 못했는데, 심지어 인구 2500명이 사는 섬에 보잉 777이 착륙할 수 있는 활주로를 90년대 후반에 닦을 때는 환경단체도 반대하지 읺았다고 한다. "어차피 비행기가 안다닐테니 버드 스트라이크가 없을 것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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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옛날에도 많았는데 묻혔던 게 요새는 나오는 것 뿐이다. 옛날에도 많았다."
- 예전 지금 4, 50대 분들이 학창시절에 비해 지금 현격히 늘었는가? 아니면 그냥 공론화되어서 나오는 정도로만 늘었는가? 이도 저도 아니면 줄었는가? 여기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는 것이 질문의 한계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교편을 잡은 이들은 답할 수 있겠지만, "인간은 항상 지금이 가장 힘들게 느낀다"는 격언을 고려하면 그들의 증언 역시 신뢰성이 그렇게 높진 않을 것이다.

2. "맞는 애도 문제가 있다."
- 무슨 문제가 있을까? 군대에서 자살하는 고문관도 자신이 문제가 있는 건 맞지만, 그 문제가 정말 자기 자신을 죽일 정도로 문제가 있었던 건가?

3. "교사의 수가 부족한 것이다" 
- 교원 1인당 학생수는 김영삼 정부 시절인 93년 초등학교 1:32, 중학교 1:24, 고등학교 1:22에서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초등학교 1:17, 중학교 1:17, 고등학교 1:15까지 낮아졌다. 이 정도로도 감소폭이 부족하다면 어느 정도로 더 내려가야하는가? 시비성 질문이 아니라 정말로 어느 정도 선이 적당하다고 보는지를 알고 싶다. 특히 학급당 학생수는 같은 시기를 기준으로 초중등 학교는 25% 이상 저감이 이뤄졌다.

3-1. "교사의 업무가 과중하다" 
- 교사의 업무가 과중할 것이다. 이것은 의심치 않는다. 의심치 않는 이유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직무는 과중하다고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군 시절에 PX병이나 군종병도 자기의 "빡센 과업 때문에" 힘겨워하는 걸 본 적이 다수 있다. 그리고 내가 그 입장이었어도 난 나의 업무가 과중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계열사 직원 중 내 위치보다 야근 시간이나 책임이 훨씬 적은 자리로 간 동기들도 여전히 업무가 힘들다고 말하는 것을 본다. 모든 입장은 각자 자신의 관점에서 판단하기 때문에, 그리고 노동은 누구에게나 힘들기 때문에 그 업무가 과중할 것이다. 이건 논쟁의 여지가 없는 내용이다. 비꼬는 게 아니라 정말로. 문제는 교사의 업무가 예컨대 OECD 다른 회원국의 교사들이나, 혹은 다른 유사한 업종(예컨대 학원 교사) 종사자에 비해 과중한가 여부일 것이다.

한국은 지난 10여년간의 개혁을 통해 교사의 업무를 정말로 저감했고, 상당수 업무를 행정직으로 돌렸다. 그러나 그 결과 학교 행정직들의 업무가 과중해졌고, 둘째로 여전히 교사의 행정 업무가 OECD 타 국가에 비해 과중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유럽권 국가는 거의 전인적인 형태로 아이들의 인성이나 학력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일선 교사들은 그런 업무를 수행할 여력이 없다는 점에서만 보더라도 한국의 교사의 업무가 과중한 것 자체는 맞다.

문제는 학내 폭력에 대응할 역량이 없을 정도로 업무가 과중하냐는 것이다. 이것은 판단이 어렵다. 어떻게 보면 전인적 교육을 행할 수 있어야만 대응 가능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떻게 하면 그렇게 심도있지 않아도 관리가능한 일인 것인데. 이건 전문가들이나 판단 가능할 일이겠지 싶다.

4. "교사의 권한이 부족한 것이다" 
- 법적으로 볼 때 교사의 권한은 오직 한 가지에서만 감소했다. 학생인권조례. 교육학적 관점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여전히 부족하다거나, 혹은 교육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할 수는 있지만 명시적으로 교사의 권한 자체가 감소한 것은 여하간에 아니다. 그 전에도 교사의 (교육상이든 아니든) 폭력은 금지적인 행동이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과거와 현재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교사의 권한의 명료한 차이는 체벌권 하나인데, 교사의 권한이 땅에 떨어졌다는 건 내가 놓치고 있는 다른 권한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체벌권을 말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예컨대 프랑스의 교육법에 준하는 법률이 Les textes fondateurs du système éducatif이 맞는지 잘 모르겠는데(번역기 돌림), 이걸 보더라도 외국 교사들이 이보다 더 강력한 권한을 부여받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체벌권이라면, 유럽 계통의 학교에 비해 한국이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어쩌면 이 문제는 과거 시절부터 한국의 교사들이 받은 권한이 부족했는데도 불구하고 과거에는 관용적인 어법으로 인해 체벌로 그 권한의 공백을 메꾸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또한 외국처럼 교육 기법을 선진화해서 해결해야 하는데 그걸 편한 체벌이라는 방법으로 메꾸고 있다가 이제 문제가 된 것일 수도 있다. 이도저도 아니면 체벌은 그냥 중요한 팩터가 아닐지도 모른다.

5. "교사의 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 사교육 시장이라는 것은 "남들보다 조금 더"를 추구하는 시장이고 특히 내신이라는 팩터가 개입되고 보면 "내 옆에 있는 애보다 조금 더"를 추구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렇게 보면 '누구나 받는' 공교육은 당연히 기본 값으로 자리잡게 되기 마련이고 그보다 더 강력하고 더 효율적인 교육을 추구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당연할 것이다. 이런 식의 경쟁이 본격화된 뒤에 교사의 능력일 짚는 게 당연한 것인지, 혹은 개선 가능한 것인지 난 좀 의심이 든다. 폭력 문제라고 다를 것인가? 아닐 것 같다.

6. "교사 개인의 책임으로 만드는 것이 부적절한 것이다" 
- 배움터 지킴이 사업이라는 것이 있다. 교육부 예산사업으로 시행중인 사업인데, `13년 기준으로 644억원을 동원해서 약 9천명을 고용해서 각급 학교에 1명씩 배치하는 류의 사업이다. 전직 경찰이나 전직 교사들을 학교 마다 배치하고 생활 속에서의 폭력 배제를 목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스톱불링이라는 사업은 교육부가 운영 중인 무기명의 신고 시스템이다. 각급 경찰서에는 이를 상담할 수 있는 직원들이 배치되어 있고, 그밖에도 교육청이나 시민단체 등에도 학교 폭력을 저감하기 위한 각종 대책들이 있다. 이것들이 다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가능한 지적이고, 이런 제도들로도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도 역시 가능한 지적이다. 그렇지만 학교 폭력이 발생했을 경우 그것을 교사 개인의 책임으로 만들고 있다, 는 비판은 조금 제 자리가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는 되는 것 같다. 특히 교사라는 직위는 공무원으로 보호받고 있어서 교육공무원법에 따라 해임이나 정직 등의 강력한 제재를 하기 위해서는 법률상 기준에 따른 행위를 해야하는데, "실질적인 제재"는 제해둔다 한다면 교육공무원법 제50조 제1항의 기준은 금품수수 행위, 시험문제 유출 및 성적조작 등 학생성적 관련 비위 행위, 학생에 대한 신체적 폭력 행위로 여튼 학급 내 학교폭력행위로 제한될 수 있는 건 아니지 싶다. (실질적인 제재야 뭐 그보다 경한 행위에서도 가능하겠지만.. ) 이것이 "학교 폭력을 교사 개인의 책임으로 지우는 것"이라고 볼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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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장성택 같은 사람 물러나는 거까지 보도했다고 이러는 거냐. 의도가 있는 발표 아니냐"
: 언론 발표를 야당 간사가 했다는 점은 차치하고 이런 문제를 생각할 수 있다. 1-2년전만 해도 한때 일부(당시에도 난 아니라고 했지만) 북한 전문가는 장성택이 김정은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앉을 수도 있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했다. 그 정도의 사람이 물러나는 게 순탄할 리가 없다. 아래의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왜 큰일이고 급히 민간에 알려야할 일인지 생각해볼만하지 않을까 싶다. 난 중요한 일같다. 
(1) 국가의 1, 2인자 급의 인물이라면 주변국에서는 그 사람의 주변에 여러가지 파이프라인을 박아두려고 하기 마련이고 당연히 간첩성을 포함할 것이다. 새로운 최고위 권력자가 부상한다면 당분간 정보 라인이나, 연결 라인이 미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 말은 곧 위기 상황이 되었을 때 내밀하게 연락할 핫라인이 없다는 것이고, 위기 상황을 사전에 짐작할 방법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북한이 얌전하고 예측가능하며 열린 사회라면 경제적인 문제 이상의 문제는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호전적인 국가라고 하더라도 십수년 이상 주변국과 물리적 마찰이 없었다면 긴장은 되더라도 위기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가? 난 잘 모르겠다. 
(2) 이번 숙청 규모에 대해서 여러가지 예측이 도는데 가장 급진적인 예측(혹은 내부 정보를 빙자한 루머)은 3, 4만명을 언급한다. 어느나라든 중앙정부에서 3만명이 사라지면 어떨까? (살아남기만 했다면) 외국에서는 알 수도 없었을 중하위급 관료 중 한명이 내년쯤엔 장차관이 되어 있을 것이다. 게다가 여기엔 군이 포함되어 있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승진에 목을 메는 사람은 항상 있기 마련이고 지위가 곧 특권인 폐쇄 사회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다. 게다가 이런 대규모 지위변동의 시대에 일찌감치 고위직을 얻어내면 그 지위는 굉장히 오래 지속될 수 있다. 반대로 말하면 이 기회를 놓치면 한 끗발 차이로 내내 중참 사무관에서 머물러야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당연히 최상층에게 잘 보이고 싶은 자들이 나올 것이다. 아쉽게도 경제 발전이나 기술 개발은 성과가 두드러지지도 않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빠르고 신속하게 두드러진 성과를 보일 방법이 뭐가 있을까? 난 잘 모르겠다.

- 리설주랑 연결된 이슈가 사실일까?
: 알 수 없고 진짜일 수도 있긴 할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이번에 새어나온 루머는 어디까지나 루머일 것 같다. 우리 일반 시민이 대통령이나 총리, 국회의장급 인사들의 사생활에 대해 아는 이야기들은 대체로 루머이고, 그 중 진실이 있을 수도 있지만 아마도 적지 않은 (어쩌면 대부분이) 허위사실일 것이다. 북한 보다 열린 사회인 한국의, 평시인 지금도 그렇다. 3만명 4만명 숙청이 이야기되는 지금 심지어 "김정은"의 아내에 대한 성추문을 외부에 거론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로 강심장이거나 미친 사람일것이다. 애초에 이런 정보(진실이라는 전제에서)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이며, 그런 사람들에 대한 비밀경찰의 관리 감독은 어떨까? 지금 시기에 입을 잘못 놀리면 어떻게 될지 모를까. 물론 당나귀귀에 대한 욕구는 막을 수 없는 것이라곤 하지만(자매품 : 계승되는 의지, 시대의 일렁임, 사람의 꿈) 그래도 이렇게 노골적인 이야기가. 다이애나 왕세자비나 재클린에 대한 이야기나 루머는 아직도 많지만 진실이 뭔지 모르는데 과연 리설주 이야기가. 지난 두달간 리설주가 방송을 안탄게 이례가 아니라 그 이전의 반년간 북한의 퍼스트 레이디가 방송을 탄게 이례라는 것부터 짚어두어야 하지 않나.

- 중국은 이 이슈를 다 알고 있었을까?
: 그게 어려운 것 같다. 숙청 계획을 사전에 말을 할까. 정말로 조기에 사전 통보했다면, 그게 사실이라면 그걸 전재로 거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세가지 사실이다 : 북한은 현재 중국의 사실상의 번국이다. 장성택은 진정한 2인자는 아니었다. 장성택과 중국의 파이프라인은 미약했다. 
숙청은 굉장히 정치적인 싸움이다. 단순히 기업에서 사장 바뀌는 것도 엄청난 암투와 정보전이 전제되는데, "비밀경찰"같은 경찰력이 전제되는 독재국가 내에서 1, 2인자의 암투라면 중국 아니라 옥황상제여도 알릴 수 없는 법이다. 내 짧은 깜냥에 세부 계획의 조기 통보는 굉장히 강한 전제를 갖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사실일 것 같지 않다. 
직전 통보라면 어떨까. 중국이 정말로 북한의 상국이라면 혹여 모르겠지만 지금 보면 (굉장히 무력한 저항이긴 해도) 연하장 안받을 정도로는 북한이 개기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중국은 숙청의 핵심(예를 들어 장성택 해임 동의안 처리) 절차가 집행된 직후에 통보받을 수 있었지 않을까 예측한다. 다만 우리 외부자가 흔히 말해오던 것보다 훨씬 장성택의 권력이 약했다면 (극단적으로 경제적 권한 몇가지 외에 어떠한 무력, 정보력, 인사권이 없었다면) 그렇다면 사전 통보도 있었을 수 있었을 거라고 본다.

- 이건 온건파에서 강경파로의 중심 이동을 의미하는가?
: 아니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대체 누구에서 누구로 권력이 이동했다는 건가? 전에도 설명했듯 북한의 군부는 우리처럼 내츄럴 본 군인으로 구성된 게 아니라, "정치장교"와 군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애초에 당료가 사후에 군으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다. 당최 최룡해는 현장군인 출신인가 정치장교인가? 대놓고 구분하긴 어렵지만 정치장교는 대체로 어떤 보직에 어떻게 구성되어있고, 현재 북한의 정치장교가 강경파인지 여부도 명확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최룡해의 "입대 계급"이 차수(대장의 상위 계급)이다. 만약 김격식 정도 되는 사람이 탁고대신으로서 유일하게 남아잌ㅅ었다면 강경파 득세 내지는 군부 우세라는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최룡해라면야.

- 그럼 장성택이 정말 실권자가 아니었다는 걸까?
위나라 황제 조예가 죽으면서 자기 아들인 신황제의 미래를 사마의와 조상에게 부탁했다. 새황제 조방의 권한을 해체한 건 바로 그 사마의였고, 다른 탁고대신인 조상은 십년이 지나기 전에 사마의에게 숙청되었다. 일본 전국시대를 거의 종식시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으면서 자기 아들 히데요리의 미래를 오대로라는 대영주 다섯명에게 부탁했다. 히데요시가 죽은 3년 후 여전히 대영주 자리를 지킨 사람은 도쿠가와 이에야스 한명이었다. 이런 일이 북한에서 일어나지 않았으리라는 법은 없지 싶다. 실제로 장성택이 최고위층 실권자였다는 징표는 여러가지 있었고 그 중 그 사람의 지위 - 국방위 부위원장이 포함된다.

- 이젠 김정은 유일체계 완성이라고 봐야하는가?
: 그렇다고 본다. 다만 이런 건 있을 수 있다. 위에서 말한 사마의의 대권 획득 이후에도 여전히 밖에서 보기엔 위나라는 조씨의 위나라였다. 김정은이 이런 허수아비화되고 있을 여지는 없나? 사실 미디어 문제라거나, 그런 "권위 자체가 발생시키는 권력"같은 걸 생각하면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하지만 항상 검토는 해봐야할 옵션 아닌가 싶다.

Posted by Chlo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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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의 딸로 태어나 자라면서부터 주위로부터 왠지 모를 귀티가 난다, 품위가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듣던 그녀는 자신이 여염의 아낙으로 평생 늙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거기까지는 종종 있을 수 있는 것은데, 그녀는 대담하게도 자신이 옛 왕조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며 대도시의 고위층에게 접근했다. 그 주장 자체는 진짜라는 이야기도 있다. 놀랍게도, 그녀의 말을 믿어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녀는 재산도 없었고 신원을 보증해줄 친인척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일류 사교계에 진출할 수 있었고 거기서 사람들과 교유를 쌓을 수 있었다. 그 뒤부터는 그 교유가 바로 그녀가 백작이라는 증거가 되었다.

그녀는 큰 돈을 얻어낼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다. 대주교에게 접근한 그녀는 자신이 총신 중 한명임을 대주교가 믿게 하는데 성공했고, 최고 권력자와의 탄탄한 끈을 강하게 원하던 대주교는 그녀의 사기에 홀딱 빠져들었다. 하일라이트는 위조한 위임장. 결국 대주교는 엄청난 고가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구입했고, 백작을 자처하는 그녀에게 주어 최고 권력자에게 전해줄 것을 요청했다. 당연히 그녀는 그 목걸이를 전해주지 않았고, 자신이 꿀꺽하고 삼켜버렸다. 대주교는 자신의 목걸이가 아무런 답례도 얻어내지 못하자 직접 탐문을 시작했고, 대주교의 수표가 액수가 부족하다고 생각한 보석상이 최고 권력자에게 직접 불평을 늘어놓았다. 여기서 이 이야기가 세상에 퍼져나가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앙투아네트의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이다.

애초에 처음 루앙의 추기경, 문제의 그 대주교와 라모트 여백작를 조사해 진상을 밝히라는 지시를 내린 것은 루이16세와 앙투아네트 부부였다. 그들은 이 사건이 대체 뭔지 알 수도 없었거니와, 추기경이 제시한 위임장에 써있는 서명(마리 앙투아네트 드 프랑스)이 예법상 말도 안되는(왕족은 서명에 성을 쓰지 않는다) 내용이기도 하니 사건이 자명하다고 생각했을 것이었다. 어쨌든 사건 조사가 마무리 된 뒤에 추기경은 무죄임이 밝혀졌고, 궁정사제장에서 지방의 수도원장으로 좌천되었다. 사기꾼들은 종신형이 언도되었고, 여백작 자신은 창녀를 가두는 감옥에 투옥되었다. 왕가는 사건이 이것으로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염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당시는 끝물이라고는 해도 절대왕정의 시대였고, 감히 왕가를 사칭해서 그런 거액(당시 정부 지출의 1%으로서 오늘날 한국정부로 비례해서 보면 3조원이고, 물가를 기준으로 보면 1.3조원이다)을 사기친 사람들이 국외로 달아나지도 않고 파리 시내에 계속 거주하고 있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보았다. 또한, 시민들은 왕가의 전속 승려인 궁정사제장 보좌에 있는 루앙 추기경이 왕비처럼 꾸민 배우를 보고 왕비인 것으로 속았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왕가에서 조사를 명해 왕가와 루앙추기경(사람들이 보기에 권력자들인) 이들만 무죄로 판결한 재판소가 왕립 재판소인 것도 신뢰를 떨어뜨리는 중요한 문제였다. 대체 1.3조원이나 되는 명품을 선물해서 추기경이 무슨 이익을 얻을 수 있으며 그 이익은 어디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냐는 것도 중요한 관심사였다. 모든 시대에 퍼져있기 마련인 "유명인을 배경으로 하는 찌라시 음란물"에서 앙투아네트와 자주 묶이는 사람이 루앙 추기경이었던 것도 아마 문제를 가중했을 수 있지 싶다. 결국 여염의 사람들은 이 사건 자체가 고가의 다이아몬드를 가로채려는 왕비의 음모로 만들어진 날조였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상식처럼 퍼졌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난 뒤, 시민들이 혁명 법정에 이 문제를 다시 제소했던 것은 무리가 아닌 셈이다. 이 일때문에 앙투아네트가 처형당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처형 죄목 중에는 이것이 포함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판결문을 읽을 능력이 없어서 확인 못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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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 개요) 사주는 역사적으로 보면 대충 송나라(960~1279( 시절에 어느 정도 완성되어서 명, 청 시대(1368~1912)에는 지금의 형태가 개괄적으로 완성되었다. 기본적으로는 주역(BC 12세기~BC 3세기)의 틀 위에서 발전한 것이고, 명나라 청나라 시기에는 거의 태어난 연/월/일/시에 따라서 한 인간의 인생의 흐름과 명운을 알 수 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요새는 사주를 보러가면 그냥 양력으로 몇월며칠 몇시에 태어났다고 말하면 사주를 봐준다고 하는데 양력으로 보는 건 아니고 「만세력」을 기준으로 환산하는 것. 이 만세력은 사주에 쓰이는 음력으로 환산하는 표다.

(음력 개요) 음력이라는 건 오늘 통일된 음력 기준이 있어서 종종 오해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오늘날 우리가 추석 같은 걸 정할 때 쓰는 태음태양력은 사실 시헌력이라고 부르는 역법이다. 한국에는 1896년에 도입되었고, 중국에는 1652년에 도입되었다. 심지어 중국이나 한국에서 만든 역법인 것도 아니고, 중국에 와있던 유럽인인 예수회 신부들이 만든 역법이다. 처음 사주나 심지어 주역의 역법을 만든 시절과는 해와 월을 따지는 방법이 전혀 달라진 것. 사실 음력을 따지는 방법은 매우 다른데 바빌론도 다른 방법을 쓰고 이슬람도 히지리라는 다른 역법이 있으며, 국사시간에 배운 거 기억날테지만 세종대왕이라거나 종종 왕들이 새로 도입했다는 달력이 바로 이 역법을 교정한 것이다. 그 이전시대와 이후 시대는 월과 일을 따지는 방법이 바뀐다. 이 이전에 명나라, 송나라때나 한국의 조선조에 쓰던 역법은 대통력이라고 하는데, 심지어 고려시대에는 다른 역법을 쓰던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있다.

(윤달) 윤달이 전혀 없는 순수음력법인 히지리는 윤달이 아예 없다. 그래서 히지리의 달은 계절과 전혀 상관이 없다. 기본적으로 달의 운동에 맞추면 실제 계절과 다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음력은 윤달을 두어 이 기간을 맞추게 되는데, 이런 방식을 바로 태음태양력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당연히 윤달을 넣는 방식도 여러가지가 있는데, 고대중국의 은나라(BC 12세기 안팎) 무렵에는 메톤주기를 기준으로 19년 주기식을 사용했는데 이런 방식은 중국 한나라시기까지는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무제는 1월을 동지(해가 가장 짧은 날로, 태양력 요소)가 있는 월로 잡는 식으로 하여 동지를 기준점으로 잡는 식으로 개편했고, 이 체제는 큰 틀에서는 유지되다가 청나라 초기에 무중치윤법을 확립하였다. 편의상 이걸 청음이라고 부른다. 오늘날의 음력에도 사용되는 무중치윤법은 춘추전국시대부터 일부에서는 사용된 방식이다. 24절기 중 중기가 포함되지 않은 월을......에이씨 설명 길고 어려우니 넘어가겠음. 여하튼 오늘날 사용되는 무중치윤법은 송나라, 명나라 시기에는 사용되지 않거나 다르게 사용되었다. 이 이전까지는 무중치윤보다는 가중윤이 사용되었는데 이건 명음, 내지는 송음이라고 부르는 방법이다.

(시간) 시간을 12시간제로 할지 같은 건 시대적으로 달라지기도 했을 뿐더러, 하루의 기준인 "자정"을 언제로 보는지도 시대별로 달랐다. 가장 간단한 방법이 만월기준시인데, 매일 달이 가장 높이 뜬 시간을 자정으로 하는 것. 가장 고대에 쓴 것으로 보이는데 당연히 하루의 시간이 일정하지 않아지는(....)문제가 있다. 그 반대 방법이 해가 가장 높이 뜬 시간을 정오로 하여 그 정 반대 시간을 자정으로 잡는 방법인 만일기준시가 있는데 이건 꽤 많이 쓰인 방법이고 심지어 지금도 쓰이는 방법이다. 반대로 춘분(혹은 추분)의 일출과 일몰의 한 가운데를 자정으로 잡는 방법도 있다. 동지의 심야를 자정으로 잡는 방법도 있다. 이 방법들 사이에서의 시간의 차이는 심지어 4시간까지도 차이날 수 있다.

(결론) 이런 시대에 따른 역법 차이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그냥 사주표에 맞춰서 내 인생의 흐름이며 배우자 조건 같은 게 결정될 수 있다는 걸 보면 진짜 오늘날 빅데이터, 정보통합, 이음매없는 업무혁신 같은 이슈에 어울리는 사람들은 사주쟁이들이 아닌가.


Posted by Chlo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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