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최진기씨 강의를 또 걸었는데 난 좀 그렇다. 얼마전까지 정말로 복지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복지 부문 예산에 대해 보이는 태도를 설명할 이론을 내가 갖고 있지 않았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분들 중 일부는 국가가 "사람들에게 삥을 뜯어서 자기들끼리 써버리는 마피아"랑 비슷하다고 보는 거 아닌가 하는 거. 그리고 남은 돈 좀 풀어서 복지하는 걸로 이해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그런 나라도 있다. "중사가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이 된 나라"로 유명한 라이베리아가 그런 재정 운영의 대표적인 사례다. "살아있는 독재자" 로버트 무가베의 짐바브웨도 괜찮은 사례다. 그러나 현대 한국이 그런 나라일 리는 만무하다. 


 애초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닌가 싶은 분들이 이를테면 "대학 적립금이 저렇게 많은데 등록금을 깎아달라!" "기업 이윤이 이렇게 큰데 왜 이렇게 월급은 안올려주냐! 성과급 그거 월급 안올리려는 수작 아닌가?" "커피 그거 단가 1000원도 안되는 걸 5천원 받다니" 같은 말을 많이 하시는 것을 본다. (허수아비 치기일 수도 있겠다는 걱정도 많이 든다) 


 "복지란 건 권리의 문제"라는 것도 좋고 "더불어 사는 세상"이라는 것도 좋은 말이다. 당연히 정말로 좋은 말이다. 그러나 좋은 것만으로 모든 것이 이뤄지지는 않는다. 인간 모두가 서로를 살육하지 않는 세상이 좋은 건 당연하지만 오늘도 중동에서는 포탄이 날아다니고 있고 중서부 아프리카에는 반군이 궐기하고 있다. 선언 만으로 이뤄지는 건 없다는 것이다. 


 복지든 사회인프라든 교육이든 토지공개념이든 뭐든 돈이 든다. 돈은 숫자가 찍혀있고 한국은행 도장이 박혀있는 지폐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건 개개인, 기업 하나하나에겐 돈이지만 우리는 국가 경제를 말하고 있다. 그건 돈이 아니다. 그건 돈을 "표현하기 위한 잣대"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돈은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의 총합을 의미한다. (당연히 많이 다르지만 여러차례 설명을 해보니 이게 그나마 이해가 쉽드라) 거기에 더불어 이미 그 경제에 쌓여있는 자산에 대한 것도 좀 더해서. 자산은 사실 그렇게 많이 거래되는 것도 아니니 일단 빼고 보면 여하튼 돈은 그 종이조각이 아니다. 그 종이조각이 돈이고 돈이면 그냥 물건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돈을 찍어내면 되는데 안하고서 돈이 없다고 하는 거짓말"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정부가 돈을 더 찍는다고 없는 땅이 생기고 부족한 석유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돈만 찍어내면 당연히 돈으로 살 수 있는 재화 양은 그대로이니, 돈의 가치만 떨어진다. 


 그렇게 보면 문제가 좀 더 간명해진다. "복지가 권리"라는 말은 좋지만 나는 이 말을 들을 때 화자가 생각을 그리 많이 하지 않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누구의 권리"인가? 기여자를 위해 쓰는 것이 권리 뭐 이런 차원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후손들을 이야기 하고 있다. 우리는 계속 인구가 줄어가는 세상에 살고 있고 고령화되는 시대에 있다. 우리 시대의 20년 뒤에는 일하는 사람이 지금보다 훨씬 적을 것이고 40년 뒤에는 절반만 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더 오래 살 것이고 더 건강할 것이지만 길어진 삶 때문에 여전히 우리가 죽을 때까지 경험해야 하는 질병과 고통의 양을 현격히 줄이지는 못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걸 위한 의사와 간호사, 병원을 운영하는 각종 서비스, 그리고 우리가 먹을 음식과 쓰고 타고 다닐 자동차며 컴퓨터며 TV를 만들 제조업, 그리고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계속 필요하다. 그들이 우리를 부양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생산성을 보이기도 해야한다. 


 더 많은 저축을 하면 고령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가? 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건 지폐를 돈으로 보는 태도 때문이다. 지폐가 돈이라면 저축을 늘리면 미래에 고령화 문제를 더 대응할 수 있겠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더 많은 재화를 저축해둘 수 있고 더 많은 설비투자를 해둘 수 있지만(더 많은 설비투자는 더 높은 노동생산성으로 돌아와 더 적은 인원의 후손이 지금과 같거나 많은 생산을 할 수 있게 하는, 세대회계와 같은 장기간에서의 진정한 의미의 저축이다) 그걸로 될 정도일까? 미래의 기술 발전은 중요한 과제고 중요한 아담의 조각이며 예측도 어렵지만 그 정도일 거라고 생각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난 레이 커즈와일은 아니라서.. 


 기본적으로 난 이걸 묻고 싶다. 만일 당신이 "한국 땅에 사는 모든 한국인은 매달 남의 서비스를 40시간 어치 살 권리가 있고, 스마트폰을 쓸 수 있어야 하며, 자녀를 명문대학까지 보낼 수 있어야 하고,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될 경우 월 200 정도는 받아야 하며(아마도 이건 200만원에 해당하는 재화, 그러니까 휘발유로 치면 1천리터 정도는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 아닐까 싶다) 해외여행도 가끔 한번은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좋다. 좋은 일이다. 그런데 재원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극단적으로 말해 기업과 전 국민에게 최대한의 세금을 내게 하고 국채를 발행해서 이걸 충당한다면 그럼 이제 태어날 우리 후손들은 같은 혜택을 볼 수 있는가? 지금 우리가 권리라고, 주어야 한다고 하는 혜택은 「지속 가능」한가? 복지 이슈에서의 "단 하나의 질문"이 있다고 한다면 난 권리냐 아니냐 이런 게 아니라 저거 아닌가 싶다. 

Posted by Chlo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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