찹쌀을 쪄서 대추, 밤, 기름, 꿀, 간장, 잣 등을 넣어 함께 버무린 것을 약밥이라 하는데 이를 제사상에 올린다. 약밥은 신라때부터 전해내려오는 오래된 풍습이다. 경주부사를 지낸 민주면이 편찬한 "동경잡기"(주 : 신라의 오랜 이름이 동경)를 보면 신라 소지왕 10년 정월 보름날 왕이 천천정에 행차했을 때 왕에게 내전의 승려와 궁주가 간통하는 것을 알려주었다는 고사에 의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풍속에 보름날을 까마귀에 제사하는 날로 정해 약밥을 만들어 까마귀에 줌으로써 그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것으로 인해 생긴 약밥이 오늘날에는 명절음식으로 되었다. 

 시골 농가에서는 정월 보름날 전날인 14일에 짚을 묶어 깃대모양으로 만들고 그 위에 벼, 기장, 조, 피 등의 이삭을 꽂아서 목화송이와 함께 긴 장대에 매단다. 그 장대를 집 곁에 세우고 새끼로 묶어 고정시킨다. 이를 볏가릿대라 하는데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이다. 산간지방에서는 가지가 많은 나무를 외양간 뒤에 세우고 곡식의 이삭과 목화송이를 걸어둔다. 그러면 아이들이 새벽에 일어나 이 나무를 싸고 돌며 해가 뜰 때까지 노래를 부르면서 풍년을 빈다. 

 어린이들은 겨울부터 나무를 콩깍지처럼 만든 호리병을 차고 다닌다. 이 호리병에 청, 홍, 황색으로 칠을 해 색실로 끈을 달아 찬다. 이렇게 함으로써 재화와 질병을 쫓는 액막이가 된다고 한다. 이것을 보름 전날 밤에 떼어 밤중에 길에 몰래 내다버리면 1년 동안 액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정월 보름 전날에 붉은 팥으로 죽을 쑤어먹는다. "형초세시기"에는 정월 보름날 문에다 제사를 지내는데 먼저 버들가지를 문에 꽂은 뒤 팥죽을 숟가락으로 떠서 끼얹은 후에 지낸다고 했다. 오늘날 보름에 음식을 대문 밖이나 길에 가져다 두는 것은 여기에서 연유한 것이다. 

 꼭두새벽에 종각 네거리 흙을 몰래 파다가 집 네 귀퉁이에 묻거나 부뚜막에 바른다. 이렇게 하면 복이 따라와 재물을 모을 수 있다는 풍설이 있고 이를 복토훔치기라고 한다. 

 보름날 아침에 밤, 호두, 은행, 잣, 무 등을 깨물면서 1년동안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않게 해달라고 기원한다. 이것을 부럼이라고 한다. 혹은 부럼을 치아를 단단히 하는 방법이라고도 한다. 의주에서는 젊은 남녀는 이른 아침에 엿을 씹는데 이것을 이굳히기엿이라고 한다. 이것도 부럼과 같은 뜻인 것으로 보인다. 청주 한잔을 데우지 않고 마시면 귀가 밝아진다고 하여 이명주 또는 귀밝이술이라고 한다. "해록쇄사"에서는 봄에 귀밝이술을 마신다고 했는데 요즈음에는 보름날 아침에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박나물, 버섯등을 말린 것과 대두, 조, 순무, 무를 채쳐서 묵혀두는데 이것을 묵은 나물이라 한다. 보름날 이것들을 무쳐서 먹는다. 또 오이껍질, 가지껍질, 시래기 등도 버리지 않고 말려두었다가 이날 삶아먹는다. 이것을 먹으면 1년 내내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한다. 취나물이나 배추잎, 김에 밥을 싸서 먹기도 하는데 이것을 복쌈이라고 한다. "형초세시기"에 보면 인일에 일곱가지 나물로 국을 끓여먹는다고 했는데 이 행사가 요즘에는 정월대보름으로 옮겨왔다. 

 영남지방에서는 보름날 다섯가지 이상의 곡식을 섞어 잡곡밥을 지어 이웃끼리 서로 나누어 먹는데 이것을 오곡밥이라고 한다. 오늘날에는 많은 곳에서 이 풍습을 함께하고 있다. 

 보름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사람을 누구든 보면 재빨리 부른다. 상대방이 대답을 하면 얼른 내 더위 사가라, 라고 한다. 이것이 더위 팔기이다. 그러나 아무리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으면 이것을 실없는 장난이라고 한다. 

 정월 보름날은 개에게 밥을 주지 않고 굶긴다. 이날 밥을 주면 여름에 개가 더위를 많이 타고 마르기 때문이다. 끼니 굶는 것을 개보름쇠듯한다고 하는 속담이 있는 것이 여기서 유래한다. 

 정월보름날 아이들은 연싸움을 하는데 보름날이 지나면 그 해는 다시는 연을 날리지 않는다. 

 정월 보름날 초저녁에 횃불을 들고 높은 산에 올라 달 뜨는 광경을 보는 것을 달맞이라 하는데 남보다 먼저 달을 본 사람이 길하다고 한다. 

 밤에 서울 장안의 많은 사람들이 종각에 모여 보신각 종소리를 듣고 흩어져 한강의 다리위를 걷는데 이것을 다리밟기라고 한다. 이때 다리밟기를 하면 다리와 다리가 음이 같아 1년간 다리에 병이 생기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수표교에서 가장 성행했는데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퉁소며 북을 쳐서 매우 소란했다. 

 "풍기"에 따르면 보름날에는 읍이나 현청의 주무과장(....)이 검은 소를 거꾸로 타고 거문고를 안고 과낭에 들어가 원님에게 절한 후 일산을 받쳐들고 나온다고 한다. 아마도 구복적인 의미의 행사일 것이다. 


-동국세시기, 정월 상원편 

Posted by Chlo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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