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가 최소한 1회는 임대계약을 갱신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그 경우 임대비 상승폭도 5% 이내로 제한하는 법률이 재산권의 본질적 부분을 침해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는 모양이다.

 

법률에서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 대한민국 헌법에서 정하고 있는 침해에 해당하지 않으려면 본질적 부분이 아니어야 하기 때문에 본질적 부분에 대한 논의가 있는 모양인데, 본질적 부분에 대한 침해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이번 법개정 특성상 조만간 누군가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할테니 헌재의 판단이 나올 것이고, 좀 다른 측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 제13조 ②모든 국민은 소급입법에 의하여 참정권의 제한을 받거나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

 

제37조 ②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일제 강점기의 수탈행위 중 대표적인 사례로 알려져있는 것이 토지조사사업이다. 당시 조선인들이 갖고 있던 토지를 강제로 빼앗기 위해 진행되었다고 알려져있기도 한데,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연계되어서 조선에 이주하는 일본인들에게 땅을 주기 위한 정책들로 알려져있기도 하다. 다만 이는 초기의 연구 등에서 주로 주장되던 논의였고, 근자에는 말 그대로 소유권을 조작한 사례는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오히려 근래의 연구에서는 토지조사사업이 다른 맥락에서 수탈적이었다고 주장되고 있는데 바로 '소작권'의 부정이다.

 

조선시대까지는 토지에 대한 재산권은 다층적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먼저 산의 소유는 대체로 금지되어 있었다(「경국대전주해」 형전 추관사구 금제, 「추관지」 등). 논 밭의 경우에는 당연히 소유권이 있었는데, 여기에 관습적으로 도지권 賭地權이 인정되었다. 도지권이란 '그 땅을 사용할 권리'로 요약할 수 있는데, 작물을 무얼 심고, 토지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등을 정할 수 있는 배타적 권리였다. 도지권은 토지소유권자가 토지를 매매나 증여해도 소멸되지 않았으며, 도지권 자체도 상속하거나 거래하는 경우마저도 있었다고 한다. 현대적 의미에서 부동산에 대한 '재산권'은 소유권과 사용권의 병합이며, 부동산임대계약은 일정 기간 동안의 사용권의 제공이라고 본다면 조선시대에는 부동산 재산권 자체가 이분화되어 있던 셈이다.

 

그런데 토지조사사업으로 일제가 전국 토지를 조사하면서 이 구조를 바꿨다는 것이 문제였다. 첫번째로 임야의 소유권을 정해줬다. 무주공산은 국유지로 편입했고, 특정 가문이 선산으로 사실상 관리되던 산은 그 가문의 소유권을 인정해줬다. 두번째로 소작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토지소유권을 일원화하여 이른바 일물일권 一物一權을 실현했는데, 이에 따라 일본인이 안정적으로 지주로부터 토지를 구입하여 임의로 소작인을 변경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기존 소작인들은 사실상 매년 소작계약을 갱신해야 했고, 경제적 상황이 보다 불안정하게 되었다.

 

토지조사사업의 결과로서 일제에 의한 수탈이 용이해진 것도 사실이지만, 이로 인해 한반도의 토지가 자본화 capitalization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진 것도 사실일 것이다. 에르난도 데 소토 hernando de soto의 「자본의 미스터리 - 왜 자본주의는 서구에서만 성공했는가」에 따르면 자본주의의 맹아기에 반드시 필요한 건 일종의 유동화한 자산 Asset Securitization, 즉 자본이다. 생산체계 확충 등에 투입될 수 있는 매개체로서의 자본이 필요한데, 서구든 비서구든 전근대에 이미 방대한 양의 자산(특히 부동산)이 존재하고 있지만 법제도적으로 비서구 지역에서는 이를 동원할 수가 없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비서구지역에는 자산의 소유권을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기반으로서의 법제도가 아예 없거나, 혹은 하나의 자산에 다층적인 권리가 동시에 존재해서 거래 가치가 사실상 없어서 자본화가 어려운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발달에는 어떤 의미로는 일물일권 一物一權적 방식의 재산권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경제학자가 있다, 라고는 할 수 있지 싶다.

 

그런데 현대 대한민국 수준의 경제상황을 갖춘 사회에서도 그럴지는 의문이다. 한국의 주택 시가총액은 약 5,056조원(`19년 기준)이고, 전체 국부 National Wealth는 1경 6,621억원 규모다. 주택 자산으로 대표되는 부동산의 다층적 재산권화로 인해 자본화가 설령 어려워진다고 하더라도 그 외의 자산 규모가 이미 적잖이 있다는 의미이다. 이미 2년 관행으로 이뤄지고 있던 부동산임대계약을 4년으로 하는 것이 본질적 부분을 훼손하는 것인지 의문이 있는 점, 부동산 거래를 제약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경제성장에 따른 이익을 부동산 소유주가 대부분 가져가는 것이 위험감수자가 이익을 가져야 한다는 '자본주의 원칙'과는 상이한 점이 많다는 주장도 있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않더라도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꼭 내가 세입자라서 하는 말은 아니다.

Posted by Chlo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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