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제국의 미래를 위해 조주 히데키는 생각했다. "언젠가 싸우게 되겠지만, 미국과 영국은 지금 상대할 수는 없다. 대동아공영권을 위해서는 우선 중국을 차지하고 그 뒤에 미국과 영국을 공격한다." 통상 1940년의 대본영이 취하는 선제공격론과는 많이 상이한 전략이었지만, 안전을 위해 차근차근 움직이겠다는 전략 자체는 납득할만했다. 조주 히데키는 대량의 해군을 말레이 인근으로 이동시켰고, 동시에 일본해군 제 1함대를 태평양 중앙으로 진출시켰다. 목표는 진주만, 미국의 태평양 함대를 전쟁 발발시 조기에 격멸하는 것이 목표였다. 조주 히데키는 우선 광둥지역에 전진기지를 세우고, 대규모 관동군을 보충하여 중국대륙을 향해 진군하였다.

중국의 장개섭은 그런 일본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있었다. 일본의 입장에서, 중국 대륙은 항상 최우선 경략대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중국에게도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예측했다고 해서 장개섭이 취할 선택지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국공합작을 했다고는 했지만 중국군은 적극적인 공세를 취할 수준의 숙련도를 가진 병력은 아니었고, 양적으로도 극히 저조했기 때문이다. 장개섭은 영국과의 동맹을 공고하게 유지하는 선에서 오직 버마로드를 지키고 안전 위주로 움직인다는 전략을 세웠다. 영국의 Viceroy인 린리스고 후작 대섭도 같은 생각이었다. 인도는 지키기 쉬우나 인도차이나 지역은 결국 일본의 대군에게 휩쓸릴 수밖에 없다. 지나치게 소극적인 생각이었다는 지적이 태평양 연합국들에게 들어왔지만 그는 굽히지 않았다. 어차피 일본군에게 인도차이나는 멀고 먼 땅이었다. 중국은 지켜야 하지만, 버마로드와 인도 인근에서 방어하면 미국이 참전해 교착을 타개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축차소모를 피하자는 전략 자체는 타당했다. 초기 일본군은 잘 준비되고 조련된 병력으로 보였고 영국군은 약간의 분함대와 전투기가 고작이었다. 중국과 영국은 모두 자신의 병력을 후방으로 이동시켰고 최소한의 병력만을 전방에 배치하였다.

프랭클린 中 루스벨트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전쟁 초기에 일본이 비록 영미 동맹의 위엄을 손상시키지 못하고 있지만, 영미를 폭격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옳았다. 조주 히데키는 극초반의 병력 운용으로 연합군이 기만되는 듯한 기미를 보이자마자 제1함대를 진주만에 급파했다. 루스벨트는 예측하고 있었지만, 예측만으로 전쟁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전쟁은 군화와 강철로 하는 것이고, 그것들은 쉬이 준비되는 것은 아니다. 병력 그 자체가 부족한 진주만은 방어될 수 없었다. 다만 조금 더, 병사들이 각오할 수 있을 따름이었다. 루스벨트는 우선은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조주는 우선 진주만을 공격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 예측은 옳았다.

전함, 구축함, 순양함, 항모, 전투기, 폭격기, 그리고 상륙 병력으로 구성된 대본영의 대 함대가 진주만을 공략했을 때 진주만에는 다만 두어대의 전투기, 서너명의 병사, 한척의 수송선이 있었을 뿐이었다. 전황은 절망적이었고 합중국은 그들을 도울 수 없었다. 날아드는 전투기를 향해 소총을 당기는 병사들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병사보다 전투기가 많았고, 미군의 구명보트보다 일본군의 전투함이 더 많았다. 멀리서 지켜보던 ANZAC의 사령관은 미군이 아무 의미없이 스러져가버리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거기서 기적이 일어났다. 미군은 전멸했지만, 일본군의 전투함과 항공기들을 길동무로 함께 데려간 것. 보병이 하늘에 대고 쏘는 소총에 전투함도, 전투기도 떨어진 것이었다.

실상 조주 히데키의 생각이 틀렸던 것은 아니었다. 일본은 전쟁을 오래 끌 여력은 없었고, 미국은 두려운 상대였다. 관동군으로 충분히 제압 가능한 중국을 처리하고, 곧 이어 추가로 생산된 병력과 함께 버마를 경략하는 것이 첫번째이고, 대규모 함대로 미군을 초전부터 제압하여 생산이 이뤄지기에 앞서 지속적으로 미국 본토까지 타격해 들어가는 것이 두번째였다. 둘 다, 쉬운 목표는 아니었지만 불가능한 목표도 아니었다. 그러나 조주 히데키는 그의 병력이 훈련도, 무기 개발도 부족한 종이 호랑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그의 눈을 막은 것은 아마도 그와는 다른 계파인 조슈번이 지배하던 일본 육군이었을 것이다. 조슈번은 기술 개발비를 착복했고 훈련비를 유용했으며 감사와 관리를 소홀히했다. 그 결과 관동군은 참담한 모습을 계속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세계 최약의 군대로 알려진 중국군을 상대로, 관동군은 2:1의 병력비 상황에서 패배를 거듭했다. 행운의 여신은 조주 히데키를 버린 것만 같았다. 여섯배에 달하는 항공력과 분함대를 조합한 대해군이 영국의 말레이 Z함대를 공격했을 때 조주의 불운은 절정에 다다랐다. 전함, 순양함, 구축함 각 1대로 구성된 말레이 Z 함대를 침몰시키는데 조주의 전함 1대와 전투기 5대, 순양함 1대와 잠수함 1대가 소모되었다. 그런 대규모 해군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육군이 베트남을 다시 회복하지 못한 것은 덤이었다. 그리고, 그러고도 남은 일본 분함대를 안잭의 전투기 사단이 재차 공격하기 시작했다. 자살적인 안잭의 공격은 일본 함대의 남양지역 작전 수행능력을 제약하는데 어느 정도 기여했다.

그렇게 강대해 보이던 일본 해군이 단지 허깨비였다는 것이 드러나자, 안잭은 독특한 전략을 고안했다. 전통적으로 태평양의 주 전장에서 너무 멀어서, 항공 지원에 국한된 역할만 수행하기 나름이던 안잭은 강고한 전함대를 구축할 목표를 세웠다. 안잭의 사령관 이공칠은 우선 전함과 항모를 건함하고 전략폭격기로 이를 지원하는 계획을 강행했다. 항모에 태울 항공기가 없지 않느냐는 미국과 영국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이공칠은 흔들리지 않고 계획을 강행했다. 연합군은 도처에서 일본군을 제약하거나, 심지어 섬멸했다.

일본이 중국을 단지 3년 내로 병합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5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중국 대륙의 서부는 중국의 손에 있었다. 한때 버마로드를 끊고 인도를 위협하던 일본군은, "수세적으로 진군하는" 중국군 보병에게도 밀려서 운남을 다시 내주어야만 했다. 방어적인 영국과 중국의 수장은, 이어지는 우수한 전훈에서 자신감을 얻었고 결국 대규모 탱크, 보병, 전투기가 버마에 모였다. 일본군도 그에 상응하는 병력을 광둥에 모아야만 했다. 버마 로드는 양쪽 모두에게 사활적인 의미를 갖고 있었고, 이번 태평양 전쟁 최대의 전투가 운남에서 벌어졌다. 전력비는 1.2:1 정도로 일본에 우세했지만, 모든 관찰자들은 중국과 영국 연합군의 승리를 어느 정도 예감했다. 그리고 일본군은 2년간에 걸친 경략에 불구하고, 결국 운남을 되찾지는 못했다. 그리고 미국이 대두했다.

초반부터 미국은 전함과 폭격기, 전투기, 항모로 구축된 엄청난 함대를 샌프란시스코에 모았다. 진주만은 전쟁 발발 바로 직후에 탈환되었고, 조주 히데키는 가능한한 많은 병력을 빼내 후방에서 재편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서남부 남양함대가 다시 패잔함과 결합했고, 약간의 위세를 되찾았으며, 이들로 영국군 Z 함대를 제거할 수 있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안잭의 대규모 함대(전함 1, 항모 1, 폭격기 1 끝)가 북상을 시작하는 동시에 미군의 진주만 분함대(전함 2, 항모 2, 구축함 1, 순양함 1, 항공기 다수, 잠수함 1, 상륙부대)가 서진을 시작했고, 이들은 일본군 전체 해군 전력을 제압할 규모였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에서 곧바로 동일한 규모의 함대가 2년 내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 안잭도 6년 내로 동일한 규모의 함대를 재조직할 수 있었다. 동남아시아를 경략하지 못하고서 버마에서 연전 연패를 거듭하는 일본군은, 현재의 함대를 다시 구축하는데 3년 이상이 소요될 것이 뻔했다. 조주 히데키는 마지막 기회인 각개격파를 시도하기로 결심했다.

함대전은 대규모 병력이 압도적으로 유리하기 마련이다. 조주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직은 강력한 안잭의 대규모 전함대가 미군의 분함대와 결집하지 못했고, 미군의 분함대도 샌프란시스코의 제2제대와 합류하지 못했다. 안잭함대, 미군1제대, 미군2제대라는 분단된 각 함대에 대해서는, 아직은 일본이 우세를 갖고 있었다. 조주 히데키는 거기에 걸기로 했다. 우선 가장 강대한 위세를 보이고 있는 안잭의 대함대를 치고, 그 뒤에 미군 1제대를 친다는 전략.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은 관동군 본영으로 운남의 영국/중국 연합군을 격파한다는 전략. 성공한다면 그래도 일본군은 2~3년의 시간을 벌 수 있는 셈이 가능했다. 그리고 불운의 여신은 여전히 조주를 사랑했다. 안잭의 대함대는 모두가 기대한 대로 강력했고, 일본의 모든 해군 항공기를 끌어안고서야 비로소 침몰했다. 운남의 지형은 생각 외로 험준했고, 연합군은 조주의 제 4차 운남 공성을 성공적으로 차단했다. 영국의 전투기와 전차대가 홍콩으로 가는 길이 열렸다. 안잭의 폭격기가 일 본토를 치는 길도 열렸다. 무엇보다, 미군의 분함대가 도쿄만으로 향하는 것을 막을 병력이 조주에게 남지 않았다. 조주 히데키에게는 무조건 항복 외의 옵션이 남아있지 않았고, 전쟁은 끝났다.







Posted by Chlo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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