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적에 핵전쟁에 관한 자료를 보다가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전술핵무기 1발을 투발해서 기갑중대 1개를 타격할 수 있다는 부분 때문에 그랬다. 기갑중대면 고작 전차 10대 남짓이고, 국군의 전차는 2천대가 넘는데? 산술적으로 핵무기 200발을 투발해야 한국군의 야전 기갑역량을 뭉갤 수 있다는 건가? 이어지는 내용은 더 놀라웠다. 나가사키와 히로시마를 날려버린 핵무기(15kt)보다 훨씬 강한 핵무기로도 적국의 핵미사일 사일로를 거의 직격하지 못한다면, 적국의 핵무기가 살아남아 반격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그것이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엄청난 정밀도를 갖추도록 진화한 이유라는 것이다. 

 이 분야를 잘 모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당시 나도(그리고 지금도) 핵무기는 최종적인 무기라고 생각했다. 재래전이 한참 오간 다음, 갈등 수준이 고조되고, 그 상승의 끝에서 견디지 못한 일방이 핵무기를 발사하고, 그 보복으로 맞불을 놓으면서 세계적인 멸망의 길을 걷는 것이 핵전쟁에 대한 일반인의 시각일 것이고, 나도 그랬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핵무기가 저렇게 위력이 제한적이라는 것은 놀라운 일 아닌가? 아니 지구를 태울 업화가 고작 탱크 10대와 콘크리트 동굴을 못 뚫어?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상한 것은 더 있었다. 핵무기는 대전략 차원에서 활용되며, 대위력이고, 전장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까지 공격할 수 있는 전략핵무기와 그보단 소형이고 전술적 차원에서 사용하기 위한 전술핵무기로 구분된다. 전술핵무기는 다시 핵포탄, 핵어뢰, 핵 공대공미사일, 핵가방 같은 것이 있는데, 알아보면 핵미사일은 핵미사일로 요격하고, 적의 전투기 편대는 핵공대공 미사일로 요격하는 일상적 핵사용까지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이 무기들은 최소한 이른바 "핵만능시대"에는 분명히 사용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것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끝없이 보복하다가 공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냥 국지적인 전투에서 사용되어 적을 크게 타격하는 정도로 기획된 무기로 보인다. 

 알아 보면 볼 수록 핵무기란 건, 일반적으로 흔히 오해하듯이 최종최후의 무기이자 인류의 끝을 반드시 갖고 오는 그런 무기는 아닌 셈이다. 핵이 인류사의 종언을 만들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 그냥 인류멸망과 무관하게 핵을 군사적으로 쓸 수 있다고 믿던 자들이 제법 있었고, 그런 전략, 전술도 있었으며, 실제 우리 주변에 그런 준비들이 있던 시기도 있었다는 말이다. 

 실제로 그런 사례들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핵전쟁 직전까지 갔던 쿠바 13일간의 위기(`62.10월) 속 일련의 사태는 차치하더라도, 예컨대 이스라엘군이 핵을 실전 배치까지 했고, 미-소 양국이 이스라엘-아랍간 소규모 핵 분쟁이 있더라도 넘어가자고 했던 `73년 욤 키푸르 전쟁 때라거나, 닉슨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핵 공격을 지시했던 `69년 EC-121기 격추사건 같은 때가 분명히 있었다. 훈련 목적이나 오류가 아니라 명백히 핵전쟁을 염두에 둔 사건들이라 할만하다. 

 기실 `50~`80년대 미국이나 소련은 "핵을 사용하는 전쟁"을 염두에 둔 것 같아 보인다. 예컨데 소련군은 `54년에 "눈덩이 훈련"을 통해서 40kt의 핵무기가 터진 직후 그 지역을 4.5만명의 보병, 300대의 항공기, 1,200대의 기갑부대 등으로 구성된 대규모 병력이 훈련작전을 한 적이 있고, 비슷한 시기 미군도 "사막의 바위 작전"으로 유사한 훈련을 실시했다. `50년대 후반부터는 핵무기가 날아다니는 핵 전장 상황에 적응하기 위한 부대 편제 개편("Pentomic Division") 개편과 같은 작업도 이루어졌고, `70년대 정도 되면 작전 시나리오 자체가 전장에 일단 핵무기를 붓고, 그 다음 주력군이 진입하는 식으로 짜이는 사례까지도 있던 모양이다. 소련을 중심으로 한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라인강으로 향하는 7일" 계획에서는 나토가 먼저 핵 공격을 실시하고, 소련이 그에 대해 유럽대륙 서부 전역에 핵을 날리고 재래식 군대가 들어가 9일 내에 석권하는 구조로 있던 것 같아 보인다. 

 요약컨대, 일반인은 (1) 핵의 사용은 곧바로 전면 핵전쟁을 의미하는 것으로, (2) 핵 사용 자체가 매우 예외적이고, 최종적이며, 보완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핵강대국의 국가원수나 군의 지도부 인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느낌이 든다. 

 핵 자체가 갖는 상징성이나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기 때문에 그 사용 및 통제권이 현재 당장 국가원수 아래로 내려오는 일은 없을 것이나, 사용이 그렇게 불가능하거나, 그렇게까지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도 아니지 않을까 싶어서 정리해둔다. 

Posted by Chlo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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