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게봐도 7일 정도면 2차 발표가 나올 듯 합니다. 정말 그 길던 채점기간이 거의 다 끝나가네요. 발표 생각만 하면 먹은 게 얹히고 마음도 싱숭생숭하고 뭔가 서늘한게 가슴을 쓸고 내려가는 것 같고, 앞으로 올 날들에 대한 계획이라거나 내년에 다시 수험생활 치를 생각에 골머리가 아프기도 하고, 올해 썼던 답안들이나 미친 짓;; 들이 너무 한스럽기도 하고 복잡한 생각이 뒤엉켜서 생각하는 자체가 고통인 것도 같습니다. 아마 다른 수험생들도 비슷하겠지, 생각하다가도 막상 주변에 알고 지내는 다른 수험생들은 다들 똑똑하고 성실하고, 나와서 대화했을 때 듣기로는 답안들도 잘 썼었고... 나만 떨어지면 정말 얼마나 슬플까, 차라리 다 같이 떨어졌으면! 하는 악의적인 생각을 하다가도 차라리 그것보다는 그 사람들이 다 붙는게 인생 전체로는 훨씬 좋은 거야, 라는 이기적인 생각도 하고. 이래저래 정말 온갖 생각이 다 나는 시절인 것 같아요. 막상 보면 주변 다른 수험생들도 서로 저 사람은 붙었겠고 난 안됐겠지, 이런 생각을 서로 간에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자기 답안에 확신을 가진 사람은 하나도 없겠지만 그렇다고 내년 준비를 벌써 할 수 있는 사람도 없는 것 같네요.

혹시나 수험을 접을 거면 올해가 막차라는 이야기도 많이 듣다가, 또 주변에서 직장생활하는 사람이나 그러다 때려친 사람들과 얘기하면 젊을 때 1, 2년 늦는 것이나 혹은 수험에 돈 천 정도 쓰는 건 그렇게 큰 것이 아니라면서 하고 싶고 소신이 있고 언젠가 될 수 있다면 계속 하라는 말도 듣고 그럽니다. 늦깍이로 군대를 갔다가 제대했을 때 이미 동기 상당수가 취업을 하고 있었고, 재작년에 전역해서 수험을 처음 시작해 이제 27개월 됐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수험 기간이 그렇게 길지도 않으니, 게다가 올해 2차가 행시 2차는 처음 본 것이니(작년에 입시만 2차를 봤지요) 아직 난 더 해볼 여지가 있어,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하지만 남들도 2년 정도 했으면 슬슬 붙는다던데 올해 과락사태나고 이러면 정말 난 가망이 없는 것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고. 언제는 올해 그렇게 공부를 했는데 대체 뭘 더 해야할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막상 내가 모르는게 산더미처럼 많다는 절망감이 들기도 하고요. 나같은 위험기피적 성향이 극단적이게 강한사람이 수험이라니, 미친 것 아닐까 싶다가도 신문이나 사람들 말만 들으면 행시 지망이 안정 지향의 극단으로 여겨지는 것 같아서 웃음도 나고 그러네요. 난 지금 이렇게 불안한데 말이죠.;

이제까지는 사회며 정치며 경제에 관심이 많아서 항상 뉴스도 챙겨보고 논평도 항상 붙여두려고 노력하고, 사회 현상이나 혹은 한국사회의 발전방향 같은 거시담론에 공부도 하고 고민도 많았는데 이제는 그런 거 다 귀찮고 내 깜냥에 무슨.. 공부나 해야지 하는 생각도 들고 하네요. 사실 평생으로 적은 돈이라고는 들어도 일단 당장 매달 수십만원 돈이 학원비로 빠져나가고 하는데 지금 공부 혼자 자습이라도 해야 조금이라도 아끼는 것 아닐까 싶고, 내가 매일 하고 싶은 것만 하고 놀면서 자면서 공부 안하는게 참 비합리적인 행동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올해 행정학이나 재정학 답안 생각하면서 그런 사례라도 좀 더 모으고 암기라도 해두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애초에 그런 논평같은 거 달고 하면서 이름팔리는 것이 굉장히 부담스럽기도 하고요. 알려지는 게 싫지요 사실;

혹시 올해 붙는다면 완전 늦깎이긴 하지만 그래도 올해 졸업하는 처지니, 곧바로 들어갈텐데 그렇게 보면 평생에 이런 휴가는 지금이 마지막 아닐까, 싶어서 여름 내내 정말 하고 싶던 것 다하고 살아보기도 했어요. 자전거로 전국 돌기라거나 야구장 쫓아다니기 같은 소박한 것밖에 안했다는 것이 도리어 서글프기도 하고. 어째 하고 싶은 게 딱히 없었구나 싶다가도 그거면 과하지 생각이기도 하고. 뭐든지 일단 다 내년 수험으로 생각이 연결되어서 맘 편하게 놀기도 그렇고 공부는 막상 안되고 하는 우유부단의 극치인 생활이구나 싶지요. 아니 제 성격자체가 우유부단 덩어리인 것도 같고요. 왜 이리 난 무능할까, 효율적으로 공부하지 못했을까 하는 자괴심도 좀 있고 -_-;;

올해 썼던 답안지를 객관적으로 되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머저리같이 공부했구나 중요한 건 다 빼고 혼자 엉뚱한 걸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랬구나, 아 아무래도 한 세과목(경제학, 행정법, 국제경제학)은 과락나지 않을까 싶다가도 작년처럼 아무 것도 모르던 시절에도 과락이 안났는데 설마 올해 과락이 날까, 어쩌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러면서도 합격을 바라는 건 과욕이라는 생각도 들고 한편으로는 그걸 다시 답안을 쓴다고 해도 정말 뭘 수정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게 잘 썼다는 자신감은 아니고 ㅠ 내 한계를 느낀 것 같은 생각이라 참 생각하는 자체가 힘드네요. 막상 7일 뒤부터 다시 수험 시작하면 우선 그것부터 다시 뜯어보고 스스로 공격해봐야겠지요?

주변 사람들하고 대화하고 연락하면 다들 될거야, 네가 안되면 누가 되겠어 같은 덕담을 해주긴 하지요. 그런데 다시 생각하면 그런 말 하나 못듣는 사람이 어딨겠어요. 자기 지인이나 친척애 에게 그렇게 말 안해주면 그게 싸우자는 거지; 사실 수험생의 7, 8할은 그런 얘기 듣고 살텐데 그건 뭐 위로는 커녕 위안도 안되는 것 같다, 결국 기댈건 자기 실력뿐이야, 라는 자각이 매번 그런 얘기를 들을 때 마다 들곤 하지요. 그냥 관심을 안가져서 저 사람들이 내가 행시 본 걸 몰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발표 난 뒤에 쪽팔리지도 않을텐데. 혹시 합격하면 왠지 더 뿌듯할 거 같은데 하는 소심한 생각이 가득하지요. 군대 2년에 수험 2년 치르면서 아는 사람들의 폭이 굉장히 좁아지긴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는 사람은 많은 것 같고. 수험생들이 수험생끼리 알고지내고, 수험생끼리 사귀고 하는 이유를 알 것 같고요. 결국 동병상련하는 사람 말고 편하게 배려해주는 사람이 어디있겠어요. 하지만 막상 수험생끼리는 2차 발표를 기다리면서 되려 연락을 피하게 되고. 이건 제가 굉장히 발표를 의식하는데다가, 의식하는 주제는 항상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못된 성격이라는 점에 좀 더 기인하긴 하지요. 결과적으로 이런 생활이 더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대인기피가 심해질 것 같아요.

그런 고로 그냥 차라리 발표가 안났으면, 발표가 다가오지 않았으면 싶기도 해요.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랬으면 좋겠어요. 정말 이런 중압감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은데 말이죠. 대입할 때 실패한 발표를 보면서 가슴이 짜게 식던 그 느낌을 (재수했지요; ) 매일 꿈꾸면서 다시 느끼고 있고, 꿈자리나 잠자리가 편하던 날이 별로 없었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합격했다는 통보를 받고 나면 지금 느끼는 중압감을 1년치 더 가중해서 느껴야할테니, 정말 죽을 거 같을 듯 하네요. 그래서 발표를 기다리지 않는 동시에 기다리지 않지도 못하겠는, 기괴한 마음 상태네요. 아마 다른 수험생 분들도 같지 않을까. 싶어요.
Posted by Chlo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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