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 장성택 같은 사람 물러나는 거까지 보도했다고 이러는 거냐. 의도가 있는 발표 아니냐"
: 언론 발표를 야당 간사가 했다는 점은 차치하고 이런 문제를 생각할 수 있다. 1-2년전만 해도 한때 일부(당시에도 난 아니라고 했지만) 북한 전문가는 장성택이 김정은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앉을 수도 있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했다. 그 정도의 사람이 물러나는 게 순탄할 리가 없다. 아래의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왜 큰일이고 급히 민간에 알려야할 일인지 생각해볼만하지 않을까 싶다. 난 중요한 일같다. 
(1) 국가의 1, 2인자 급의 인물이라면 주변국에서는 그 사람의 주변에 여러가지 파이프라인을 박아두려고 하기 마련이고 당연히 간첩성을 포함할 것이다. 새로운 최고위 권력자가 부상한다면 당분간 정보 라인이나, 연결 라인이 미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 말은 곧 위기 상황이 되었을 때 내밀하게 연락할 핫라인이 없다는 것이고, 위기 상황을 사전에 짐작할 방법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북한이 얌전하고 예측가능하며 열린 사회라면 경제적인 문제 이상의 문제는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호전적인 국가라고 하더라도 십수년 이상 주변국과 물리적 마찰이 없었다면 긴장은 되더라도 위기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가? 난 잘 모르겠다. 
(2) 이번 숙청 규모에 대해서 여러가지 예측이 도는데 가장 급진적인 예측(혹은 내부 정보를 빙자한 루머)은 3, 4만명을 언급한다. 어느나라든 중앙정부에서 3만명이 사라지면 어떨까? (살아남기만 했다면) 외국에서는 알 수도 없었을 중하위급 관료 중 한명이 내년쯤엔 장차관이 되어 있을 것이다. 게다가 여기엔 군이 포함되어 있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승진에 목을 메는 사람은 항상 있기 마련이고 지위가 곧 특권인 폐쇄 사회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다. 게다가 이런 대규모 지위변동의 시대에 일찌감치 고위직을 얻어내면 그 지위는 굉장히 오래 지속될 수 있다. 반대로 말하면 이 기회를 놓치면 한 끗발 차이로 내내 중참 사무관에서 머물러야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당연히 최상층에게 잘 보이고 싶은 자들이 나올 것이다. 아쉽게도 경제 발전이나 기술 개발은 성과가 두드러지지도 않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빠르고 신속하게 두드러진 성과를 보일 방법이 뭐가 있을까? 난 잘 모르겠다.

- 리설주랑 연결된 이슈가 사실일까?
: 알 수 없고 진짜일 수도 있긴 할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이번에 새어나온 루머는 어디까지나 루머일 것 같다. 우리 일반 시민이 대통령이나 총리, 국회의장급 인사들의 사생활에 대해 아는 이야기들은 대체로 루머이고, 그 중 진실이 있을 수도 있지만 아마도 적지 않은 (어쩌면 대부분이) 허위사실일 것이다. 북한 보다 열린 사회인 한국의, 평시인 지금도 그렇다. 3만명 4만명 숙청이 이야기되는 지금 심지어 "김정은"의 아내에 대한 성추문을 외부에 거론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로 강심장이거나 미친 사람일것이다. 애초에 이런 정보(진실이라는 전제에서)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이며, 그런 사람들에 대한 비밀경찰의 관리 감독은 어떨까? 지금 시기에 입을 잘못 놀리면 어떻게 될지 모를까. 물론 당나귀귀에 대한 욕구는 막을 수 없는 것이라곤 하지만(자매품 : 계승되는 의지, 시대의 일렁임, 사람의 꿈) 그래도 이렇게 노골적인 이야기가. 다이애나 왕세자비나 재클린에 대한 이야기나 루머는 아직도 많지만 진실이 뭔지 모르는데 과연 리설주 이야기가. 지난 두달간 리설주가 방송을 안탄게 이례가 아니라 그 이전의 반년간 북한의 퍼스트 레이디가 방송을 탄게 이례라는 것부터 짚어두어야 하지 않나.

- 중국은 이 이슈를 다 알고 있었을까?
: 그게 어려운 것 같다. 숙청 계획을 사전에 말을 할까. 정말로 조기에 사전 통보했다면, 그게 사실이라면 그걸 전재로 거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세가지 사실이다 : 북한은 현재 중국의 사실상의 번국이다. 장성택은 진정한 2인자는 아니었다. 장성택과 중국의 파이프라인은 미약했다. 
숙청은 굉장히 정치적인 싸움이다. 단순히 기업에서 사장 바뀌는 것도 엄청난 암투와 정보전이 전제되는데, "비밀경찰"같은 경찰력이 전제되는 독재국가 내에서 1, 2인자의 암투라면 중국 아니라 옥황상제여도 알릴 수 없는 법이다. 내 짧은 깜냥에 세부 계획의 조기 통보는 굉장히 강한 전제를 갖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사실일 것 같지 않다. 
직전 통보라면 어떨까. 중국이 정말로 북한의 상국이라면 혹여 모르겠지만 지금 보면 (굉장히 무력한 저항이긴 해도) 연하장 안받을 정도로는 북한이 개기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중국은 숙청의 핵심(예를 들어 장성택 해임 동의안 처리) 절차가 집행된 직후에 통보받을 수 있었지 않을까 예측한다. 다만 우리 외부자가 흔히 말해오던 것보다 훨씬 장성택의 권력이 약했다면 (극단적으로 경제적 권한 몇가지 외에 어떠한 무력, 정보력, 인사권이 없었다면) 그렇다면 사전 통보도 있었을 수 있었을 거라고 본다.

- 이건 온건파에서 강경파로의 중심 이동을 의미하는가?
: 아니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대체 누구에서 누구로 권력이 이동했다는 건가? 전에도 설명했듯 북한의 군부는 우리처럼 내츄럴 본 군인으로 구성된 게 아니라, "정치장교"와 군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애초에 당료가 사후에 군으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다. 당최 최룡해는 현장군인 출신인가 정치장교인가? 대놓고 구분하긴 어렵지만 정치장교는 대체로 어떤 보직에 어떻게 구성되어있고, 현재 북한의 정치장교가 강경파인지 여부도 명확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최룡해의 "입대 계급"이 차수(대장의 상위 계급)이다. 만약 김격식 정도 되는 사람이 탁고대신으로서 유일하게 남아잌ㅅ었다면 강경파 득세 내지는 군부 우세라는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최룡해라면야.

- 그럼 장성택이 정말 실권자가 아니었다는 걸까?
위나라 황제 조예가 죽으면서 자기 아들인 신황제의 미래를 사마의와 조상에게 부탁했다. 새황제 조방의 권한을 해체한 건 바로 그 사마의였고, 다른 탁고대신인 조상은 십년이 지나기 전에 사마의에게 숙청되었다. 일본 전국시대를 거의 종식시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으면서 자기 아들 히데요리의 미래를 오대로라는 대영주 다섯명에게 부탁했다. 히데요시가 죽은 3년 후 여전히 대영주 자리를 지킨 사람은 도쿠가와 이에야스 한명이었다. 이런 일이 북한에서 일어나지 않았으리라는 법은 없지 싶다. 실제로 장성택이 최고위층 실권자였다는 징표는 여러가지 있었고 그 중 그 사람의 지위 - 국방위 부위원장이 포함된다.

- 이젠 김정은 유일체계 완성이라고 봐야하는가?
: 그렇다고 본다. 다만 이런 건 있을 수 있다. 위에서 말한 사마의의 대권 획득 이후에도 여전히 밖에서 보기엔 위나라는 조씨의 위나라였다. 김정은이 이런 허수아비화되고 있을 여지는 없나? 사실 미디어 문제라거나, 그런 "권위 자체가 발생시키는 권력"같은 걸 생각하면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하지만 항상 검토는 해봐야할 옵션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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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의 딸로 태어나 자라면서부터 주위로부터 왠지 모를 귀티가 난다, 품위가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듣던 그녀는 자신이 여염의 아낙으로 평생 늙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거기까지는 종종 있을 수 있는 것은데, 그녀는 대담하게도 자신이 옛 왕조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며 대도시의 고위층에게 접근했다. 그 주장 자체는 진짜라는 이야기도 있다. 놀랍게도, 그녀의 말을 믿어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녀는 재산도 없었고 신원을 보증해줄 친인척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일류 사교계에 진출할 수 있었고 거기서 사람들과 교유를 쌓을 수 있었다. 그 뒤부터는 그 교유가 바로 그녀가 백작이라는 증거가 되었다.

그녀는 큰 돈을 얻어낼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다. 대주교에게 접근한 그녀는 자신이 총신 중 한명임을 대주교가 믿게 하는데 성공했고, 최고 권력자와의 탄탄한 끈을 강하게 원하던 대주교는 그녀의 사기에 홀딱 빠져들었다. 하일라이트는 위조한 위임장. 결국 대주교는 엄청난 고가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구입했고, 백작을 자처하는 그녀에게 주어 최고 권력자에게 전해줄 것을 요청했다. 당연히 그녀는 그 목걸이를 전해주지 않았고, 자신이 꿀꺽하고 삼켜버렸다. 대주교는 자신의 목걸이가 아무런 답례도 얻어내지 못하자 직접 탐문을 시작했고, 대주교의 수표가 액수가 부족하다고 생각한 보석상이 최고 권력자에게 직접 불평을 늘어놓았다. 여기서 이 이야기가 세상에 퍼져나가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앙투아네트의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이다.

애초에 처음 루앙의 추기경, 문제의 그 대주교와 라모트 여백작를 조사해 진상을 밝히라는 지시를 내린 것은 루이16세와 앙투아네트 부부였다. 그들은 이 사건이 대체 뭔지 알 수도 없었거니와, 추기경이 제시한 위임장에 써있는 서명(마리 앙투아네트 드 프랑스)이 예법상 말도 안되는(왕족은 서명에 성을 쓰지 않는다) 내용이기도 하니 사건이 자명하다고 생각했을 것이었다. 어쨌든 사건 조사가 마무리 된 뒤에 추기경은 무죄임이 밝혀졌고, 궁정사제장에서 지방의 수도원장으로 좌천되었다. 사기꾼들은 종신형이 언도되었고, 여백작 자신은 창녀를 가두는 감옥에 투옥되었다. 왕가는 사건이 이것으로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염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당시는 끝물이라고는 해도 절대왕정의 시대였고, 감히 왕가를 사칭해서 그런 거액(당시 정부 지출의 1%으로서 오늘날 한국정부로 비례해서 보면 3조원이고, 물가를 기준으로 보면 1.3조원이다)을 사기친 사람들이 국외로 달아나지도 않고 파리 시내에 계속 거주하고 있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보았다. 또한, 시민들은 왕가의 전속 승려인 궁정사제장 보좌에 있는 루앙 추기경이 왕비처럼 꾸민 배우를 보고 왕비인 것으로 속았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왕가에서 조사를 명해 왕가와 루앙추기경(사람들이 보기에 권력자들인) 이들만 무죄로 판결한 재판소가 왕립 재판소인 것도 신뢰를 떨어뜨리는 중요한 문제였다. 대체 1.3조원이나 되는 명품을 선물해서 추기경이 무슨 이익을 얻을 수 있으며 그 이익은 어디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냐는 것도 중요한 관심사였다. 모든 시대에 퍼져있기 마련인 "유명인을 배경으로 하는 찌라시 음란물"에서 앙투아네트와 자주 묶이는 사람이 루앙 추기경이었던 것도 아마 문제를 가중했을 수 있지 싶다. 결국 여염의 사람들은 이 사건 자체가 고가의 다이아몬드를 가로채려는 왕비의 음모로 만들어진 날조였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상식처럼 퍼졌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난 뒤, 시민들이 혁명 법정에 이 문제를 다시 제소했던 것은 무리가 아닌 셈이다. 이 일때문에 앙투아네트가 처형당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처형 죄목 중에는 이것이 포함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판결문을 읽을 능력이 없어서 확인 못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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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 개요) 사주는 역사적으로 보면 대충 송나라(960~1279( 시절에 어느 정도 완성되어서 명, 청 시대(1368~1912)에는 지금의 형태가 개괄적으로 완성되었다. 기본적으로는 주역(BC 12세기~BC 3세기)의 틀 위에서 발전한 것이고, 명나라 청나라 시기에는 거의 태어난 연/월/일/시에 따라서 한 인간의 인생의 흐름과 명운을 알 수 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요새는 사주를 보러가면 그냥 양력으로 몇월며칠 몇시에 태어났다고 말하면 사주를 봐준다고 하는데 양력으로 보는 건 아니고 「만세력」을 기준으로 환산하는 것. 이 만세력은 사주에 쓰이는 음력으로 환산하는 표다.

(음력 개요) 음력이라는 건 오늘 통일된 음력 기준이 있어서 종종 오해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오늘날 우리가 추석 같은 걸 정할 때 쓰는 태음태양력은 사실 시헌력이라고 부르는 역법이다. 한국에는 1896년에 도입되었고, 중국에는 1652년에 도입되었다. 심지어 중국이나 한국에서 만든 역법인 것도 아니고, 중국에 와있던 유럽인인 예수회 신부들이 만든 역법이다. 처음 사주나 심지어 주역의 역법을 만든 시절과는 해와 월을 따지는 방법이 전혀 달라진 것. 사실 음력을 따지는 방법은 매우 다른데 바빌론도 다른 방법을 쓰고 이슬람도 히지리라는 다른 역법이 있으며, 국사시간에 배운 거 기억날테지만 세종대왕이라거나 종종 왕들이 새로 도입했다는 달력이 바로 이 역법을 교정한 것이다. 그 이전시대와 이후 시대는 월과 일을 따지는 방법이 바뀐다. 이 이전에 명나라, 송나라때나 한국의 조선조에 쓰던 역법은 대통력이라고 하는데, 심지어 고려시대에는 다른 역법을 쓰던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있다.

(윤달) 윤달이 전혀 없는 순수음력법인 히지리는 윤달이 아예 없다. 그래서 히지리의 달은 계절과 전혀 상관이 없다. 기본적으로 달의 운동에 맞추면 실제 계절과 다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음력은 윤달을 두어 이 기간을 맞추게 되는데, 이런 방식을 바로 태음태양력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당연히 윤달을 넣는 방식도 여러가지가 있는데, 고대중국의 은나라(BC 12세기 안팎) 무렵에는 메톤주기를 기준으로 19년 주기식을 사용했는데 이런 방식은 중국 한나라시기까지는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무제는 1월을 동지(해가 가장 짧은 날로, 태양력 요소)가 있는 월로 잡는 식으로 하여 동지를 기준점으로 잡는 식으로 개편했고, 이 체제는 큰 틀에서는 유지되다가 청나라 초기에 무중치윤법을 확립하였다. 편의상 이걸 청음이라고 부른다. 오늘날의 음력에도 사용되는 무중치윤법은 춘추전국시대부터 일부에서는 사용된 방식이다. 24절기 중 중기가 포함되지 않은 월을......에이씨 설명 길고 어려우니 넘어가겠음. 여하튼 오늘날 사용되는 무중치윤법은 송나라, 명나라 시기에는 사용되지 않거나 다르게 사용되었다. 이 이전까지는 무중치윤보다는 가중윤이 사용되었는데 이건 명음, 내지는 송음이라고 부르는 방법이다.

(시간) 시간을 12시간제로 할지 같은 건 시대적으로 달라지기도 했을 뿐더러, 하루의 기준인 "자정"을 언제로 보는지도 시대별로 달랐다. 가장 간단한 방법이 만월기준시인데, 매일 달이 가장 높이 뜬 시간을 자정으로 하는 것. 가장 고대에 쓴 것으로 보이는데 당연히 하루의 시간이 일정하지 않아지는(....)문제가 있다. 그 반대 방법이 해가 가장 높이 뜬 시간을 정오로 하여 그 정 반대 시간을 자정으로 잡는 방법인 만일기준시가 있는데 이건 꽤 많이 쓰인 방법이고 심지어 지금도 쓰이는 방법이다. 반대로 춘분(혹은 추분)의 일출과 일몰의 한 가운데를 자정으로 잡는 방법도 있다. 동지의 심야를 자정으로 잡는 방법도 있다. 이 방법들 사이에서의 시간의 차이는 심지어 4시간까지도 차이날 수 있다.

(결론) 이런 시대에 따른 역법 차이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그냥 사주표에 맞춰서 내 인생의 흐름이며 배우자 조건 같은 게 결정될 수 있다는 걸 보면 진짜 오늘날 빅데이터, 정보통합, 이음매없는 업무혁신 같은 이슈에 어울리는 사람들은 사주쟁이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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