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없이 비범한 날이라 하더라도 평범하게 시작될 수 있는 법이다. 비범함만 거듭되면 사람은 견디지 못한다. 어느날과 같이 평범하게 아침에 잠에서 깨어났다. 여느 주말 아침과 같이 적당히 늦잠을 자고,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고 적당히 등을 굴리면서 시간을 보냈다. 오전에 있던 결혼식에 가고, 곧바로 올해 2차에 붙은 이들의 면접 준비를 봐주러 고시촌에 들렀다. 아침에 입고 나온 코트가 부담스럽게 푹한 날씨라고 생각하면서 신림역에서 분임원 둘을 만났고, 함께 연수원 동기들의 밴드 공연을 보러 홍대를 향했다. 모두 미리 잡혀있는 약속들이었다. 아침에 침대에서 눈을 뜬 그 순간 이미 하루가 어떻게 지나갈 것인지를 예상할 수 있었다. 재미없게 재미있는 시간들. 학보 기자를 하면서 2년간 모든 학내 공연 동아리의 공연을 보았다. 기백번은 더 공연을 보았다. 친구들의 공연도 익히 보았다. 코티밴드의 공연은 재미있었고, 즐거웠고, 유쾌하게 즐길 수 있었다. 그 재미와 그 즐거움과 그 유쾌함은 보러 가기 전에 떠올랐던 그 만큼의 상쾌함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공연이 끝나갈 때에는 도리어 기분이 가라앉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낯익은 것을 좋아한다. 사람들이 공연을 하고, 진지함보다는 열정으로 살아가는 시절에 나는 익숙해 있다. 코티 밴드의 공연이 종막을 향해 치달아가면서, 이제 이런 공연과 열정과 풋풋함의 시절이 끝나고 있음을 느꼈다. 아마 앞으로는, 정말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은 다음에는 이런 광경을 보지 못할 것이다. 부처에 들어가서 늦게까지 일하고 책임을 지면서 내 친구들, 내 지인들도 밴드 연습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김건혁이 마감 인사로 20년 뒤에 공연하겠다고 말할 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들 몇몇은 앞으로도 만나서 연습하고 준비할지 모르지만, 단지 관객인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심상한 마음으로 홍대에서 서울대입구까지 쓸쓸하게 귀가하는 것은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몇에게 자리를 제안했지만 모두 바빴다. 주말 저녁에 선약이 없는 것은 지금 나이에서는 그리 흔한 일이 아닌 것은 알고 있다. 고민했다. 홍대니까, 신촌에 있는 Bar TILT를 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Bar TILT는 주영준이 하는 바다. 주영준은 10년을 알아온 사이이다. 처음 대학에 입학해서 교지 연세에서 일하는 녀석은 당시 간혹 있던 사람들처럼 성을 쓰지 않았고 우리는 그를 영준이라고만 알았다. 풍성한 턱수염과 미친 듯이 덥수룩한 머리, 풍모 때문에 우리는 그가 딴지 김어준의 동생이 아닐까하는 의심을 품었고 그는 그런 의문에 한번도 답해주지 않았다. 실명을 써야하는 군 인트라넷에서 마주쳐서야 비로소 그의 성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을 정도의 거리였지만 그럼에도 오래 깊이 알았고 사실 주영준은 지금도 편한 관계라고 느낄 수 있는 녀석이다. 자신이 가진 어떤 천재성의 편린같은 재능들을 몽둥이처럼 휘두르는 녀석이었고, 사회학 석사로 공부했던 그가 바를 연다고 할 때는 상당히 의아했다. 사람들이 흔히 내뱉는 열병같은 농담이 아니었고 그는 정말로 바를 열었다. TILT는 지인들이 찾아들고, 레시피대로의 술을 쓰는 좋은 바로 아직은 남아있다. 공연을 보고 났을 때 채 7시밖에 되지 않은 것을 보고 적당한 위스키 한 두잔, 예컨대 Maker`s Mark나 혹은 포도향같은 착각이 있는 Canadian Club을 오랜만에 조금 마시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틸트로 가자. 문이 열려있는 바에는 여전히 어두운 조명 아래 주영준 혼자서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Maker`s Mark는 생산량과 수입량이 적어 구하기 힘들다거나, 술을 마셔볼수록 이런 날에는 스카치보다는 버번이나 아이리시가 생각난다거나, 요즘의 SK 와이번스는 감독님 이후로 욕하고 보지 않으려고 하는데도 경기를 막상 보게 되면 정이나 대현이 형 얼굴이 짠해서 응원하게 된다는 시덥잖은 이야기들을 나눴다. 며칠동안 모달이 계속 술을 마셨다고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김대현은 제주도에 가 있고, 사람들은 바쁠 토요일 저녁에 누굴 부르고 싶지는 않았다. 구질구질하게 주영준에게 요새 있던 일들을 말했다. 노동일을 하게 될 것 같다고 하니 운명이라는 농담이 돌아왔다. 종종 보면 운명이 있고 우리가 거기 맞춰나가는 것 같다는 쓸데없는 아포리즘을 들어야 했다. 구차하게 반박하느니, 술을 시켰다.
첫 잔은 메이커스 마크로 하고, 그 다음은 온더락으로 Canadian Club을 부탁했을 때 한 여자분이 들어왔다. 처음부터 몹시 신경질적으로 말을 하고, 불만과 화를 허공에 쏟아내던 그 분은 곧 전화를 받아 지금 틸트에 있다고 말했다. 보통은 바에 있다고 하지 않나, 아마 상대방이나 이 사람이나 굉장히 단골인 모양이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주영준의 후배거나 옛날 여자친구거나 그 비슷한 것이겠거니 하고 생각했을 때 다른 여자분이 뛰어들어와 코스트코 조각피자를 바 위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오늘 먹은 칼로리가 2500을 넘는다느니, 자기 담당 교수가 얼마나 싸가지가 없는지 모른다느니, 3년전 헤어진, 이제는 결혼한 남자친구가 생각난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일어와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며 큰 소리로 빠르게 섞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 짜증스러웠다. 조금전까지 고즈넉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시이나 링고의 노래를 큰 소리로 불러대기까지 하는 면면이 그리 즐겁지는 않았다. 김동석 이유진 신혼부부가 그때 틸트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그쯤에서 피로감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왔을 심산이었다. 신혼여행 후에 처음 만나는 그들을 보면서 조금 환담을 나누었고, 그러는 동안 그 두 여자는 네댓잔의 위스키, 진, 칵테일과 한갑은 넘는 담배를 강단지게 소모하더니 돌연 내게 소개팅을 제안했다. 친구는 자기들같은 사람이 아니라 조신하다고 했다.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연수원에서 보고 요새 다시 익숙해진 그런 아가씨들과는 조금 다른 사람들 같다는 생각을 했다. 왠일인지 오늘은 대학 시절로 다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연세대를 다니고 있던 시절에는 사실 마주하는 거의 모든 여자애들이 이런 느낌이었다. 독립적이고 활달하고 주도적이면서 무언가 결핍되어있고 어딘가 이상했다. 갑자기 이야기가 내게 달려들었다. 나도 그들을 마주해 대화를 나눴다. 체격이 크다고 말하고, 너무 컴컴하게 블랙으로만 맞춰입었다고 질책했다. 직업이 무엇이냐고 말했다. 내 직업을 들은 그들은, 자신이 로스쿨 생이라고 말했고 곧 변호사 시험을 보아야 하는데 매번 꼴지에서 맴돌아서 답이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다른 한 명은 자신이 오래도록 사귄 옛 남자친구는 몇년이고 계속해서 시험을 준비한 행시생이었고, 결국 29세까지 안되고 군대를 가버렸다고 말했다. 무슨 말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조용히 벽에 기대 웃고만 있었다. 유다르게 말이 적은 저녁이었다. 로스쿨에 다닌다는 쪽이 다시 소개팅을 제안했다. 얼마전 40이 넘은 남자가 나이를 속이고 만나서 몹시 상처를 받은 아이라는 말을 했다. 속으로 나는 많이들 취한 모양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번엔 괜찮은 남자를 소개해줘야 하는데 다행인데, 자기들은 어떻냐는 말을 했다. 바람 피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한 명이 하고, 다른 쪽은 바람 피우려고 해도 남자친구가 없으니 바람이 안되는 게 우울하다고 폭소를 터뜨렸다. 소개해주겠다는 쪽은 자기도 꾸미면 이쁜데, 오늘 이렇게 이런 자리라서 부끄럽네요, 라고 몇번을 말했다. 조금 취한 모양이었다. 무언가 대답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다들 멋져보인다고 적당히 말을 맞춰주고 주영준을 향했다. 주영준은 내 회피성 대화에 걸려들지 않았다. 치사하게 제 할일만 했다. 작년 3월에 술집에서 옆 테이블 여성에게 헌팅을 받은 일이 있었다. 난 술집의 어두운 조명과 알코올이 없이는 인기 얻기 어려운 모양일지도 모른다. 그때 그 여자분은 마음에 서로 오래 담았던 남자가 연수원에 들어가버리고서 연락이 뜸해지는 상황이 너무 힘겨워서, 그날 밤 아무 남자나 필요했던 것 같다고 느꼈었다. 오늘 이 여자분들도 그런 느낌이었다. 유쾌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불쾌한 감이 더 심했다.
로스쿨에 다닌다는 여자분이 쏜살같이 뛰어나갔다. 그들끼리의 대화는 일어며 영어가 너무 섞이고 말이 빨라서 알아듣기 어렵다. 불쾌했기도 했기에 그리 관심을 갖지도 않았었다. 다만 홀로 남은 쪽이 몹시도 쓸쓸한 표정으로 마티니를 주문해 마시는 것이 안타까워보였다. 술이 과하지 않느냐는 말에 자신의 이야기를 폭음처럼 쏟아냈다. 나이가 25세라고 했다. 나도 25세 때는 저런 것들이 힘들었다는 기억이 되살아났다. 통번역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언어를 물으니 일어만 할 수 있고 살다왔다는 말을 했다. 영어는 회화만할 수 있고 통번역까지는 못한다는, 게다가 전공이 전공이라 일자리를 잡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했다. 여자분의 전화기가 울렸다. 뛰어나간 다른 여자분 같았다. 백양관 어간에서 북과 장구를 들고 당황중이라고 했다. 무엇을 당황하느냐는 말에 이제 술이 깬 모양이라는 웃음이 돌아왔다. 웃음소리는 듣기 좋았다. 정말 꺄하하, 하고 웃는 느낌의 웃음이었다. 그러고보니 연수원에도 이렇게 웃는 동기가 하나 있다. 그 동기 웃음소리를 들으면 정말 꾸밈없이 웃는다는 느낌이 좋았다. 흐린데 없는 웃음을 하면서 무얼 그리 궂은 생각들만 하느냐고 말을 건넸다. 바 위에 놓인 이어폰이 눈에 들어왔다. 커널형태의 자줏빛 이어폰이, 보기 흔한 것은 아닌데, 내것과 같았다. 내 이어폰을 꺼내 보이며 이런 취향 특이하지 않느냐고 하니 언니 것이라고 했다. 뛰어나가서 백양관에서 당황중인 이가 선배 언니라고 했다. 친구같던데 어떻게 된 것이냐고 하니 2년전부터 말을 놓고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그 이는 무슨 일로 북과 장구를 들고 있나요? 술을 마시다보니 풍물 맞춰보고 싶어서 들고 온다고, 자기들은 예전에 단과대 풍물패에서 알게된 사이라고 말했다. 자기가 타령과 북은 참 잘한다는 말을 했다. 언니는 장구를 했다고 했다. 종종 이런 일이 있나보다, 특이한 여자들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안대섭에게 전화를 했다. 이제 잘까 생각중이라고 했다. 안암 근처의 집이라고 했다. 내가 신촌 틸트에 정말 오랜만에 왔는데 지금 잔다니, 아깝다고, 나도 늦게까지 있겠으니 굳이 오라고 말했다. 오겠다고 했다.
소설에서나 영화에서 바에 앉은 옆자리 예쁜 여자와 대화를 트게 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공통점들을 발견하고, 그런 생각지 못한 만남과 즐거움을 갖는 것은 거의 보편적인 남성들의 로맨스일 것이고, 그렇기에 평생에 한번도 겪기 힘든 일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그런 여자들이 학교 후배에, 북과 장구를 치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은 정말 초현실적이었다. 땀 범벅이 되어서, 시험 기간의 중도 앞을 도저히 지날 수가 없어서 뒷길 생과대 쪽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왔다는, 자기 몸 만한 북과 장구를 짊어진 여자분을 보면서 오랜만에 폭소를 터뜨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낯선 이에게 술을 한잔 샀다. 진토닉이 좋다고 했다. 주영준이 쉽사리 토닉워터를 부어 진토닉을 만들었고 내가 건넸다. 구두와 양말을 벗고 맨 바닥에 북과 장구를 끌어안고서 두 사람은 장단을 맞추기 시작했다. 3년만에 처음 장구와 북을 잡는다고 했다. 나는 그게 왜 하필 오늘이냐고 했다. 석달만에 틸트에 온 내가 3년만에 풍물을 하는, 그것도 바에서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처음엔 내 귀에도 엇박이 많이 나더니, 조금 하니까 빠르게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처럼 하면 자기들 선배가 들으면 죽는다고 하면서 굉장히 빠르고 유쾌하게 타령이며 박자를 맞추기 시작했다. 상쇠가 없어, 라고 토라진 소리를 계속 하면서 구슬 굴러가는 웃음소리를 계속 터뜨렸다. 30분 정도가 지나니 안대섭이 왔다. 분위기를 잡더니 바에 앉아서 조용히 주영준과 이야기를 나눴다. 여자분들이 꽹과리가 없어서 박자 진도를 못내겠다고 계속 말했다. 쇠가 없어, 쇠가 없어, 쇠가 필요해. 모달이 생각났다. 전화를 걸어 간단히 상황을 말하니 쇠를 챙겨 오겠다고 말했다. 근처에 사는 모달은 곧 틸트에 들어섰다. 안대섭과 나는 따로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모달은 두 여자분과 소리를 맞춰가기 시작했다. 들어서자마자 모달이 연상 쪽 여자분을 알아보았고, 호구조사를 금방 끝냈고, 29세와 25세가 손쉽게 말을 놓고 서로를 평대했다. 2시간을 북과 장구를 쳤다. 다른 테이블에 따로 들어온 남자 둘이 끼어와서 북을 치고 놀기 시작했다. 약간의 안주를 내가 밖에서 사와서 주영준과 함께 먹고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눴다. 부에나비스타 풍물클럽이라는 이야기를 주영준이 했다. 훌륭한 작명이라며 한참을 허리를 꺾고 웃었다. 여자 분 한 분이 전화 통화 중에 나를 바꿔주었다. 소개해주겠다는 여자분이라고 하면서 이야기해서 당황하면서 대충 전화를 받듯 하였다. 모두 지쳐서, 각자 이래저래 앉아서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두 남자가 두 여자분에게 달라붙어 작업을 거는 것 같아 보였다. 안대섭과 나는 마주보고 한참을 웃고, 굳이 방해하지 말고 나가자고 하면서 틸트를 나섰다. 주영준도 오랜만에 즐거워보였다.
복받은 날이라고 택시를 타고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생각보다 많이 썼지만 유쾌했다. 많은 것이 이제 고정되었다고 생각했고 예측 가능한 일들이 너무 늘었고, 대학 시절이 너무 다 닫혀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울했고, 아마추어 공연을 다시 보는 날은 앞으로 여간해서는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생각은 2시간만에 깨졌다. 인기없는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술김에 낮은 명도의 조명 아래라고는 해도 좋은 이야기를 들었다. 상식을 깨는 공연을 보았다. 신은 이렇듯, 우리가 확신할 때 그 확신을 비웃는 경험을 선사하는 악취미를 가졌다고 생각했다. 연수원에서의 마지막 주말을 나는 그렇게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