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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2.28 자기비하와 자기애 2. 3
  2. 2010.12.28 잡담.
  3. 2010.12.28 [재펌] 속죄
  4. 2010.12.27 소설 무제.
  5. 2010.12.25 [09.10.09] 발표를 기다리는 마음 1
  6. 2010.12.25 목민심서 이전육조 察物편
  7. 2010.12.11 심심풀이 땅콩 1
  8. 2010.12.03 페이스북 쓰기 시작했어요. 1
  9. 2010.11.28 가짜양주 가짜맥주 2
  10. 2010.11.27 잡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는 하지만 모든 사람이 온전히 자신을 사랑하는 것 같지는 않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학대하고 어떤 이는 자신을 비하한다. 우리는 하나 뿐인, 확장 불가능한 우리 몸과 우리 자아를 지나치게 학대하는 것 같아 보인다. 우리는 왜 자신을 비하하는가. 우리는 어떤 때에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가.

이런 상황을 가정해보자. "나"라는 개인이 나와 완전히 같은 사고 패턴과 취향, '내가 이 사람의 인생을 살았다면 이렇게 되었을 것이다'라고 느껴지는 풍취의 이성과 마주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우리는 자신과 닮은 이에 안도하고 닮은 점들은 신뢰를 부여할 근거처럼 느껴질 것이다. "나"는 그녀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랑은 전제에서 출발했듯이 바깥을 향하는 사랑이 아니라 도리어 나 자신을 향해 돌아오는 사랑이다. 클라인씨의
병처럼 사랑은 끊임없이 그녀를 향해 그리고 나를 향해 돌아온다. 그때의 "나"는, 맙소사, 나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깨닫지 못했다면 그런 사랑도 의미가 있겠으나 깨달은 뒤에는 의미가 없다. 사랑은 서로 다른 인격체간의 대립과 다툼이 동일 공간 내에서 지속될 것이라는 약속이다. 그러나 완벽한 이상형, 나 자신과의 연애는 그런 공간을 창출하지 않는다. 어느 순간 몹시도 자신이 싫어질 수도 있음을 알고, 그 만남은 그때 그 순간 깨어질 것이다.

자기애와 자기비하는 그런 관계를 갖는 것이다. 우리는 타자를 향하는 사랑과 타자로부터 외삽되는 사랑을 느낄 때 책임을 느끼고 자아의 껍질 밖의 세상에 자신을 포함시킨다. 자아 내에 갇혀있는 모습으로는 세계에 포함될 수 없고 우리는 이런 "나"를 유아병적이라 부른다. 이런 나의 자기애는 그리고 필연적으로 자기비하적이다.

왜 그럴까. 무인도에 갇힌 내가 아닌 나는 자폐의 늪에 빠져있지 않은 이상 성숙해가고 타인의 안에 자신을 반영시킴으로서 더 크게 자신을 확장하는 ㅡ 자아의 깊이와 면적을 서로에게 넓히는 이들을 비리본다. 소아병적 "나"는 그런 그들을 질투한다. 그러나 자아의 껍질 내에서 그 안의 "나"의 순수성을 사랑하는 자부심은 내가 그들같은 길을 걷도록 놓아주지 않는다. 내가 바라는 내 모습이 있지만 내가 부족한 부분들 ㅡ 그 부분이 소아들의 자기비하의 초점이 된다. 자신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모든 경우 그래서 그들은 자기를 비하한다. 비하는 그러나 타인을 향해있는 대화 중에서만 나타날 수 있다. 자기 비하는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과 현실의 나 사이의 간극이다. "나"는 비하하고 있는 그 순간에조차 완전히 타인과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밀도 높게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렇기에 자기비하하는 이의 자기비하는 역설적으로 가장 강고한 자기애라는 것은 그것이 자신이 가진 이해못할 부족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비하하는 이들에게 자기비하를 멈추라고 조언하는 것은 따라서 그들의 자아를 소아병이라는 늪에서 구해내는 일이다. 그들은 오직 자신을 감동시킬 때에만 자기애를 드러낼 수 있다. 그들이 외따로 떨어진 삶을 지향하더라도 실제 그런 삶을 현실에서 직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과 온전히 다른 누군가의 존재에 자신을 투사하고 투사되는 기쁨을 경험하는 것 뿐이다. 그들이 자신에게 감동하지 않는 이상 그들의 자기비하는 끝없이 자아를 자해할 것이다. 그러나 감동할 가장 쉬운 길은 외삽임을 그들은 경험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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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hlo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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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카테고리 없음 2010. 12. 28. 01:59

People are often unreasonable, irrational, and self-centered.
Forgive them anyway.

If you are kind, people may accuse you of selfish, ulterior motives.
Be kind anyway.

If you are successful, you will win some unfaithful friends and some genuine enemies.
Succeed anyway.

If you are honest and sincere people may deceive you.
Be honest and sincere anyway.

What you spend years creating, others could destroy overnight.
Create anyway.

If you find serenity and happiness, some may be jealous.
Be happy anyway.

The good you do today, will often be forgotten.
Do good anyway.

Give the best you have, and it will never be enough.
Give your best anyway.

내가 진심을 다해 사랑을 했을 때에, 상대가 간혹 내 사랑을 받아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진심으로 사랑하자.

Posted by Chloey
,

[재펌] 속죄

카테고리 없음 2010. 12. 28. 00:37


 한가로운 하오의 햇살이 질끈 감은 두 눈 위로 흔들렸다. 사내의 눈꺼풀 안을 붉게 물들인 햇빛은 다시금 흩어져 흐르는 강물을 반짝였다. 조심스레 불어온 바람에 임진의 강물이 조금 출렁였다. 너른 강 가운데에 물결 따라, 햇살 따라 흐르는 거룻배에 홀로 앉은 초췌한 복색의 사내는 나른한 오수에 빠져있었다. 부딪혀 오는 강물에 출렁, 거리는 거룻배의 움직임은 도리어 잠을 부르는 자장가와 같았다. 언제까지고 깨지 않을 듯 깊이 잠든 사내는 그러나 왜인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깊은 고뇌와 고통에 시달리고 흩날려 풍화된 얼굴을 하고는. 그러나 그런 사내에는 관심도 주지 않은 채, 늙은 사공은 그저 상앗대를 강바닥에 꽂고 미는 단순한 동작만을 반복할 따름이었다. 무심한 햇살과 무심한 물결과 무심한 사공 가운데에서 고통의 나른함으로 잠든 사내를 흐르는 바람은 지켜보고, 서쪽으로 사라져갔다.
 이순은 족히 되지 않았을까. 상앗대를 쥔 주름지고 갈라진 사공의 손을 또 다른 바람이 스쳐갔다. 북녘에서 불어오는 삭풍의 새끼리라. 사공은 삭풍을 싫어했다. 차가운 대지의 기운이 섞인 광막풍이 북에서 불어올 때면 사공의 표정은 여지없이 굳어졌다. 곧, 가을이 지나가겠지. 삭풍을 느낀 늙은 사공의 몸짓은 여전히 고요했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조금 신경질적으로 바뀌었다. 사공에게서 차가운 쇳내를 맡은 아직 어린 삭풍은 거룻배에서 떨어져 남으로 달아났다. 삭풍이 사라지자 어느새 사공의 상앗질이 다시 차분해졌다.
 오직 사공과 상앗대만 고요히 저어지며 때로는 흐름에 따라, 간혹은 흐름에 거슬러 거룻배는 나아갔다. 강을 거슬러 물살을 따르지 않을 때면 거룻배가 휘청 흔들렸지만 사내는 그때마다 눈꺼풀만 조금 떨고는 깨어나지 않고 깊이 잠든 채로 물길을 흘러갔다.

 
 몇 번인가, 귓전을 타고 고요한 소음이 스며들었다. 잠기운에 지친 머리는 그 소음을 아직 자신을 부르는 소리라 알지 못했다. 
 “내리지 않으실 거요?”
 좀 더 명확히 들려온 재촉에 어설피 깃든 잠기운이 설핏 흔들렸다. 잔잔히 흔들리던 배에 따라 어느새 잠이 들었던 건가. 사내는 언제 잠이 든 것인지, 기억하질 못했다.
 “다 왔소이다. 내리시구려.”
 왠지 불만감이 가득한 듯한 목소리. 무엇이 불만인지 건너는 동안 내내 한마디 말도 없이 마뜩찮은 표정을 짓고 배만 다루더니 아직도 마음이 안 풀린 것일까. 사공은 태어날 적부터 그랬었을 듯한 완고하게 찌푸린 얼굴을 하고는 흔들리는 뱃전 끝이 평지인양 꼿꼿이 서서 이쪽을 바라본다.
 사공의 어깨 너머로 나루가 보였다. 노인 두엇이 버드나무 아래서 장기를 두다 말고 물끄러미 사내를 보았다. 어디에도 마을도, 집도 보이지 않건만. 사내도 노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날씨가 꽤 쌀쌀해 졌는데도 무얼 기다리느라 강가 나루터까지 나와 있는 것이려나.
 “........내리지 아니하실 것이면 다시 돌아가오리까?”
 농지거리에 불만이 섞여든 말일 터이나 사내는 예사롭게 넘기지 못했다. 갈등에 잠긴 사내를 다시 못 마땅히 보던 늙은 사공의 입술이 조금 비틀릴 즈음에서야 사내의 입이 열렸다.
 “그럽시오. 다시 남 쪽 나루로 돌아가 주옵시오.”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을 줄 알았건만. 늙은 사공은 그냥 무심히 사내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무 이유도 묻지 않았다. 아예 별 관심 없다는 듯이 돌아서서 뱃꽁지 위에 감긴 새끼줄만 풀어 뱃머리만 남쪽으로 돌렸다. 사공이 남으로 뱃머리를 돌리자 약속이나 한 것처럼 둘 사이에선 말이 사라졌다. 나처럼 하릴없는 사람이 평소 많은 건가. 무어, 모를 일이다. 원하는 대로 되었음에도 사내는 왜인지 다시 뜻 모를 갈등에 잠겼다. 자면서도 신산에 젖은 내색을 비추던 사내의 얼굴은 깨어서도 그다지 변화가 없었다.
 “뭐하시오, 내리시지 않고.”
 어느새 황포를 다 갈무리한 사공이 이번엔 사내 앞에 다가와 다시 말을 붙였다. 아니, 말을 붙였다기보다는 던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대답도 듣지 않고 다시 돌아서 버렸으니. 나루에 고물을 향하게 한 사공은 풀쳐낸 새끼의 한 끝을 잡고는 강어귀로 뛰어 내렸다. 사내의 말은 아예 듣지도 않았다는 오불관언한 태도. 오랜 세월 홀로 강 위에서 바람을 견뎌낸 사람다운 완고한 태도라고 해야 할 것이려나.....
 이런 저런 생각에 사내가 빠져 있는 동안 사공은 하오 내내 물 위를 같이 걸어온 길다란 상앗대를 부여잡아 배 위로 끌어올렸다. 한자, 두자, 석자. 고작해야 열자 남짓할 것 같던 상앗대는 스무 자도 넘게 긴 제 모습을 물 밖으로 드러냈다. 휘청거리는 약한 모습도 물 위로 드러난 부분 뿐, 상앗대는 탄탄하고도 질겨 보이는 젖은 나신을 햇볕 아래 과시했다. 상앗대를 끌어올리는 사공의 걷은 소매로 탄탄한 팔뚝이 검게 드러나 보였다.
 왠지 부럽고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것을 사내는 지울 수 없었다. 한갓 뱃사공마저 저리 당당하게 살건만, 나는 왜 이리 고뇌에 잠겨 있는 건가. 문득 사공의 뒤로 동편으로 널리 내달려 펼쳐진 임진강과 언저리 마을들이 한 눈에 들어와 보였다. 너른 강어귀마다 흩어진 언덕배기와 나루터. 아직 낙조가 멀다는 듯 활기차게 움직이는 강변의 사람들. 강, 그리고 강역(江域), 강역(疆域).
 어디선가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나가 아니라 수십, 수백에 달하는 진동으로 달려드는 소리가 사내의 귀를 찢듯이 울렸다. 멀리 눈 닿는 지평 끝에서 이리로 내닫는 기백의 야수들, 쇳내 나도록 날카로운 그들의 이빨이 사내의 눈가를 선연히 비췄다. 온몸이 산산이 발기어질 거대한 돌진 앞에서 사내는 도리어 눈을 감아버렸다. 강철의 몸도 부서질 진동이 두려운 건 아니었다. 사내의 얼굴 위로 선연히 떠오른 것은 오히려 공포가 아닌 고통이었다.
 버혀진 강역. 그 때, 그 때는, 그랬다.
 허망한 공상에 잠긴 것도 잠시 뿐, 힘겹게 눈꺼풀을 든 사내의 눈에 다시 임진의 물과 바람이 비췄다. 지축을 울리며 달려오는 그들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십년의 방랑은 기억의 공황을 쉽게 떨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사내의 눈가로 물색 안개가 비췄다. 바람이 이제 아마도 차가워지는 모양이지. 눈가를 세게 문지르며 사내는 그렇게 생각했다.
 물을 닦아낸 사내의 눈에, 이번엔 상앗대와 노를 배에 다 묶고는 손을 털고 일어서는 사공의 모습이 비쳤다. 늙은 사공은 아무래도 다시 돌아가지 않을 듯했다. 더 이상 사내에게 신경조차 쓰지 않아 보였다. 결국 사내가 침묵을 먼저 깨고 사공에게 말을 걸었다.
 “... 다시.. 돌아간다 하잖았소”
 배를 묶은 말뚝 앞에 막 일어선 사공이 사내를 응시했다. 무관심한 표정으로, 사공이 말을 이었다.
 “마음대로 하시구려. 난 오늘 일 접을라오. 밤새 앉아 계시려든 그렇게 하오. 난 상관없으니.”
 무심한 사공의 말에 왠지 벋대고 싶은 홧기가 울컥 솟구쳤다. 퉁명스레 사내가 대꾸했다.
 “그렇소? 난 그럼 그냥 여기 앉아서 밤을 나겠소.”
 말을 내뱉은 순간 후회감이 몰려왔다. 철부지처럼 뭐하는 짓인지. 고작 늙은이의 주책일 뿐이지 않은가. 공연히 나이 먹어 말실수나 한 게지.... 사내는 속으로 혀를 찼다.
 아니나 다를까 내내 무심한 표정만 짓던 사공이 사내의 말을 듣더니 실쭉해진 표정으로 사내를 바라보았다. 돌연 홱 돌아서 뱃전에 얹힌 봇짐을 성큼 메어 챙기는 풍이 정말로 사내를 놓고 내릴 기세다. 이미 내리지 않겠다고 말한 사내는, 당황스런 표정으로 사공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공은 훌쩍 뛰어 포구에 발을 디뎠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사내가 사공에게 소리쳤다.
 “배 삯을 더 많이 쳐 주겠소. 해도 아직 온전하잖소. 돌아갑시다.”
 그러나 사공은 이미 사내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 휘적휘적 길을 짚어나간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이젠 할 수 없이 내려 돌아가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동쪽으로 따라 올라 다시 거룻배를 잡아야 할런지.... 뱃전에 힘없이 걸터앉은 사내는 어찌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앞으로의 행보를 고민하는 찰나에 돌연 사공의 말소리가 들렸다.
 “호란 끝난지 십년이 지났건만. 정처 없이 떠도는 이들은 여전히 많더이다.”
 늙은 사공은 주름진 이마에 흐른 땀을 닦으며 혼잣말처럼 말을 이었다.
 “노에서는 여전히 삭풍이 불어오건만, 그때나 지금이나 바람 맞길 싫어하는 이들은 여적 제 자릴 찾지 못하는구만.”
 정신이 확 들었다. 내내 고뇌와 번민으로만 채색됐던 사내의 얼굴에 이번엔 당황의 색조가 물들어갔다.
 사공은 그러나 사내의 반응에는 관심 없다는 듯 무심히 말을 이어나갔다.
 "오늘이 마침 요 앞마을에 장시가 서는 날이외다. 내 이리 강 노 쪽에 머물게 될 때면 자주 가는 술막이 하나 있다오. 갈 곳 찾지 못해 방황하는 당신만 괜찮다면 내가 탁주라도 한잔 건넬까 하는데.“
 그 말을 끝낸 사공은, 사내야 오건 말건 상관없다는 식으로 다시 젖은 발을 옮겼다. 늙은 사공의 말에 놀란 것인지, 사라지는 사공의 뒷모습만을 멀거니 바라보던 사내는 곧이어 사공의 뒤를 따라 걸음을 나섰다.


 주막의 방은 좁지만 둘이 밤을 지새우기엔 충분히 안온했다. 서쪽을 향하고 서있는 건너채의 방이라 장지문 너머로 혼모의 늙은 햇살이 누렇게 내비쳤다. 사내의 맞은 편 벽에 기대어 사공은 막걸리 잔을 다시 입에 대었다. 주막에 들자마자 부엌을 부비고 들어간 사공은 꼭 제 것인 양 한 동이의 탁주와 두 개의 사발을 걸머쥐고 방에 돌아왔다. 늙은 사공은 자리를 펴고 앉아서는 사내에게 술을 청하지도 않고 혼자 거듭 사발을 들이켰다. 술을 청한 건 아니었지만, 멋쩍게 된 사내는 벽에 느슨하게 기대여 누운 채로 말없이 닫힌 장지 틈으로 시장을 바라보았다.
 장돌뱅이가 빠져나간 저녁의 장은, 그러나 조용히 쉬기에는 여전히 소란했다. 장돌림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앉아 하루치 벌이를 깜냥껏 헤아리거나 노냥 술이나 퍼마시며 지새는 주막의 밤은 더욱이 번잡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초저녁임에도 닫힌 문틈 사이로 새어드는 우풍 속에는 장꾼들의 얼큰한 고함과 거나한 탁주에 젖어든 술주정이 흥건히 녹아있었다. 때로는 주정과 폭언에 눈살 찌푸려질 지라도 본연은 흐뭇한 생기와 활력이 저잣거리의 본색이다. 그런 활기찬 소리를 듣는 사내의 얼굴은 그럼에도 여전히 고통스러운 표정 그대로였다.
 그날도 이리 소잡했더니. 이리도 소란한 날이면 생각지 않으려 해도 그때 그날의 기억은 스스로 떠올랐다. 용천에서 의주를 향하는 대로 언저리의 고갯마루에서 그들 열한명은 땀에 젖은 얼굴과 지저분한 옷차림으로 그리도 흥분해 있었다. 이미 무너진 흙더미를 성벽이라 믿고 한 치 한 푼이라도 더 솟은 흙더미를 망루라 여겨야할 만큼 괴락한 칠곡보 위에서 그들은 다가오는 죽음과 공포를 넘어선 열정으로, 분노로, 절망으로 함께했다. 십년을 맞아온 바람에도 흩어 떠나지 않는 고통의 기억. 반드시 올 것이지만 언제 올지 모르기에 더욱 공포였던 요퇴의 철기, 지평선 저 너머서 다가올 약속된 죽음을 서약하고 그들은 그렇게 그곳에 있었다.
 “술 안 좋아하시오?”
 정적을 깨고 사공의 말이 방안에 울렸다.
 “맘 편히 들라고 통째 집어왔건만. 싫은 거요, 눈치를 보는거요.”
 빈정이는 듯한 말이 끝나더니, 늙은 사공은 이번엔 보다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이 주막 탁주가 특히 맛있다오.”
 “그렇소?”
 사내가 말을 받았다.
 “음. 저승사자 받은 늙은이가 사자한테 막잔은 끝내자면서 건넨다고까지 하더니.”
 그 말과 함께 사공은 입끝에 슬쩍 미소를 걸쳤다. 홀로 반 넘어 술동이를 비우더니 조금 취한 것일까.
 “아무리 저승이 코앞이더라도 이 맛이라면 한 잔 해야겠지. 드셔보소..”
 그 말과 함께 사공은 다시 사발을 푹, 동이에 담가 술을 퍼내 마셨다. 시원스러운 사공의 주도를 보던 사내도 한참 전부터 쉬고 있던 사발을 들어 술을 한잔 들이키며 생각을 이었다.
 확정된 죽음은 사람을 삐뚤어지게, 왜곡되게 만든다. 수년 간 그리도 가까이 지내던 그들의 관계도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쉽게 틀어지고 다툼을 낳았다. 너의 활을 만졌다고, 나의 칼집을 건들고 지나갔다고, 혹은 말을 걸었다고.... 칠곡보에 그저 머무는 이레 동안 그들은 그리도 부스러지고, 어긋나가기만 했었다. 번갈아 망루에 올라 남녘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다가올 죽음을 헤아렸다. 봉화를 올린 그 순간 아마 그들은 엇갈려 조여오는 철쇄의 틈새에 바스러져 죽으리라. 팽팽한 활줄보다 더 극한까지 차오른 긴장감의 홍수 속에서 처음의 각오와 의지는 슬며시 흐려져 갔다. 북에서 밀려오는 얼음 같은 바람을 등으로 맞고 내리치는 눈발을 가릴 것 없는 맨 바닥에 누워 맞으면서 비참해졌고 모든 게 흐려져만 갔다. 거듭 각오를 분노로 되새기고 다잡아도 피로와 허기로 흐려진 눈은 트이지 않았다. 죽음을 각오했으나 죽음은 감당하기 너무 거대했다.
 “술 맛 어떠오. 술 한 모금 못하고 달포는 방랑한 사람 같으오만. 잘못 보았소?”
 고개를 든 사내는 사공을 한 번 흘깃 바라보았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쓴 웃음을 지으며 사발을 집어든 사내는 동이에 푹 담가 술을 떠내었다. 길게 한 모금, 술을 머금으며 사내가 답했다.
 “아니, 고맙구려. 요 근래 술이 그리도 그리웠는데. 노인장 말대로 정말로 좋구려.”
 그러고는 다시 사발을 들어 술을 마셨다. 말을 들은 사공이 다시 슬쩍, 웃음을 걸쳤다. 거듭 사발을 들어 길게 한 사발, 마시는 모습이 우스워 보였을 테지. 사발, 다시 한 사발의 술이 뱃속에 들어갈 때마다 느껴지는 찌르르한 저림과 차가운 막걸리 한 사발만큼의 해갈이 그토록 그리웠던 그동안이었다. 다시 사발을 비워낸 사내는 사공을 보며 마주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본 사공은 그러나 다시 굳은 얼굴로 막걸리를 한 사발, 퍼냈다.
 “바람이 불어오는 게 겨울이 되려나 보오.”
 “그렇구려. 추워지겠소.”
 “마자수 강 너머는 더 추울 게요.”
 "그렇겠지요."
 그러고는 약속이라도 한 듯 다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사내도, 사공도 무언가 깊은 생각에 빠졌다. 마루로 전해진 은은한 진동에 흔들린 사발이 술동이 안에서 시리도록 맑은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장지 밖으로 비쳐오던 누런 황혼의 흔적도 거진 사라져 어둠이 밝혀왔다. 고래고래 떠들던 주정뱅이도, 쌈지를 풀어 돈을 세던 장돌림도 각자의 짐을 챙겨 슬슬 방으로 들어갔다. 아귀나 야차 가운데 한 토막 같은 그들이라도 시간에 맞춰 다음 장으로 꼬박 세워 길을 걸으려면 잠시 눈을 붙여야할 터였다. 장내가 고요해진 것을 느낀 사내는 장지를 열었다. 차가운 저녁 공기가 방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아직은 이를 터인데, 마당 안쪽에 싸락눈이 조금 깔려있었다. 어느새 내린 것일까. 이미 그친 것일까. 화악 하고 다시 밀려온 공기의 흐름에 사내는 가볍게 턱을 쓰다듬었다. 사내는, 추위가 정말 싫었다.
 바람결에 얼굴로 달라붙는 흙먼지는 그들이 누운 맨 흙바닥만큼 차가웠었다. 허물어진 흙벽은 북에서 내려오는 삭풍을 막아주지 않았다. 간간히 섞어 내리는 눈은 그저 그곳에서 기다려야하는 그들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그나마 그들이 기다리는 것은 죽음이었다.
 마실 물도 부족해 씻지도 못한 나날 속에서, 그들은 칼과 활을 계속 갈고 벼렸다. 숫돌이 닳도록 갈고 가져온 기름이 떨어질 때까지 닦았다. 흙과 기름에 절어 얼굴은 시커멓게 변했고 그들의 마음도 어둠에 잠겨갔다. 겨우 사흘 치 챙겨온 건량은 애저녁에 바닥났다. 그러나 고라니가 숙영지 바로 옆을 지날 때에도 그들은 창을 빼들지 않았다. 죽으러 온 것이다. 그렇게 되뇌었다. 섬전같이 빠르고 벼락같이 날카로워 화살도 피하고 수백을 능히 물리친다는 팔기(八旗)의 소문을 힘겹게 머릿속에서 밀어냈다. 활은 오랑캐를 거꾸러뜨리기 위해 든 것이다. 다시 다짐했다. 수백의 기병 앞에 그들의 무기가 너무도 초라하다는 불안감도 애써 접었다. 그들의 칼은 그들의 마지막 마음 둘 곳이었다. 그렇게 되새겼다.
 오로지 남으로 뻗은 길만 바라봤다. 간혹 날이 맑은 날이면 칠곡보 서편으로 압록강도 내다보였지만 그들은 끝까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오로지 남으로 뻗은 길만 바라봤기에.
 사흘째 낮부터는 수마가 몰려들었다. 둘씩 조를 지어 잠을 자기 시작했다. 닷새째 저녁부터는 배고픔이 밀려왔다. 저항할 수 없는 물결 앞에서 그들은 오직 인내할 따름이었다. 동료의 배에서 울리는 소리에 눈을 흘기고 한마디씩 불평을 토로했다. 그러나 자신의 배에서도 똑같은 소리가 나고 있다는 건 모두 애써 무시했다. 지나치게 일찍 왔다는 후회는 하지 않았다. 우리가 있어 중군이 대비한다는 각오와 복수심만 되새겼다. 오랑캐에 부모를, 자식을, 형제를 잃은 그들이었기에. 죽기 참 힘들다는 농담이 흘러나왔다. 언제고 웃음을 잃지 않던, 의주부 영내에서 가장 젊었던 현호는 그러나 동료들 틈에서 은은히 배어나오는 살기에 곧 입을 다물었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그들은 점차 더 예리하게 벼려진 한 자루 칼날이 되어갔다. 그때 그들은 그렇게 칠곡보에서의 이레를 보냈다.


 “사공 일을 하다보면 소문에 좀 빠른 법이라오.”
 어느새 새로 한 동이의 술을 가져온 사공은 한 사발의 술을 숨쉬듯 마신 다음 다시 말했다. 사내가 대답했다.
 “아무래도 오가는 이를 많이 보지 않겠소. 이렇게 객이랑 같이 머무는 일도 많을 터이고.”
 “아니, 손은 바람일 뿐이지. 같이 머물 일은 그리 많지 않다오."
 사내는 말없이 다시 한 사발, 술을 떠내어 입으로 가져갔다. 사내를 물끄러미 보던 사공이 다시 말을 이었다.
 “마자수 너머에서 임 장군께서 청과 이토록 싸우고 계신다 하더이다.”
 “...........”
 사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사공이 술동이와 같이 집어온 보시기에는 김치에 부추전 한 장이 소복하게 올려있었다. 보시기 가득 담긴 김치를 뒤적이며 사공이 다시 말했다.
 “십년이 지났구려.”
 “............”
 찬바람이 계속 열린 문으로 들어왔다. 얼굴과는 달리 별로 주름지지 않은 탄탄한 손을 든 사공은 장지를 닫아걸었다. 사내는 여전히 묵묵히 고개 숙이고 대답하지 않았다. 번뇌에, 고통에 찬 얼굴로. 그러나 사공은 괘념치 않고 계속 말했다.
 “내가 사는 아랫마을에선 아직도 끌려간 딸을 그리는 노인네 부부가 있다오. 그 이엄댁은 장성한 아들 셋이 죄 그때 난중에 죽었다오. 난리가 끝난지 십년이 지났건만, 그 이들에겐 지난 일이 아닌게요.”
 “그랬구려.”
 “그렇다오. 요동에는 아직도 임경업 장군이 오랑캐를 휘몰아치고, 나루터에선 지금껏 딸이, 아들이 돌아오지 않을지 아침마다 나오는 노인네들이 있다오.”
 “.......................”
 “오랑캐가 내달린 길목이던 이곳 언저리는 젊은 아이들의 씨가 말랐소. 쉰, 예순 먹은 노인네들이 소를 끌고 밭을 매는 걸 보면 목이 멘다오. 그나마 요 1, 2년 새 삼남에서 사람들이 올라와서, 그나마 살만해졌소. 그 전까지 이곳은, 지옥도 그 자체였다오.”
 말을 잇던 사공은 그새 목이 마른 듯 다시 한 모금 들이켰다. 사공의 주름진 얼굴에도 고통과 고뇌의 빛이 떠올랐다. 닮아져버린 듯한 두 사람은 처음으로 서로를 마주보았다. 사공이 말했다.
 “그런거요.”
 다시 한 모금.
 “그런 거외다.”
 이번엔 한 사발 모두 단숨에 들이켰다. 사내도 같이 한 모금 들이켰다. 텁텁하게 목을 메는 막걸리가 도리어 개운했다.
 “그런 모습을 십년을 옆에서 보면서, 오가는 사람들의 비애와 회한을 보면서, 가슴에 피맺혀 흐르는 눈물에 내 가슴에도 피멍이 풀릴 날이 없었다오.”
 “.............”
 “그날 이후로 사람들 가슴엔 모두 구멍이 뚫린 것 같다오.”
 “이해하오. 그 고통을.”
 “그런 얼굴이오. 당신의 걸메진 겨리도 남 못잖게 굵고 무겁겠구려.”
 “..................”
 “그런 얼굴을 한 사람은 영락없이 호란 중에 무언가 잃은 이였지.”
 “................”
 “당신에게도 지난 일이 아닌가보구려.”
 사공은 할 말을 다한 듯 느슨하게 풀린 표정으로 벽에 기대어 사발을 들어올렸다. 어지간한 장정도 이미 곤드레가 될 주량이었건만, 사공은 아직 취기를 내비치지 않았다. 그저 많아진 말과 다시 바닥을 드러낸 동이만이 사공이 마신 주량의 깊이를 보일 따름이었다. 아마도 늙은 저 이의 마음에 들어박힌 분노의 말뚝만큼의 깊이이겠거니, 하고 사내는 생각했다.
 방 한 켠에서 온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게으른 주모가 때 이른 추위에 놀라 뒤늦게야 불을 땐 탓이리라. 점차 따뜻한 기운이 방안에 퍼지기 시작했다. 하루 동안의 긴 여정으로 피로했던 사내의 몸이 삐걱이며 휴식을 앙망하는 외침이 들리는 듯 했다. 하지만 사내는 끝내 몸을 누이지 않았다. 쉬기는커녕 사내는 감은 눈을 뜨고 장지를 다시 열었다. 더운 방 공기 속으로 서늘한 저녁 공기가 스며들었다. 깊이 숨을 들이쉬며, 사내는 밤의 향기를 맡았다. 밤바람을 따라 하늘에선 다시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아까보다 굵어진 눈발에 마당은 금세 희끗하게 덮이기 시작했다. 그나마 몇 남았던 장꾼들은 눈발을 피해 방 안으로 올라섰다. 마당 한 편에서 웅크리고 졸던 누렁이도 머리 위로 쌓이는 눈발이 시린지 고개를 불쑥 일어나 마루 밑으로 숨었다. 눈발은 금방 거세어져 갔다.
 흩날리는 눈발 아래 그토록 추웠던 그 날, 비보를 접했었다. 전령을 건네자마자 가슴을 내리치고 머리를 땅에 찧으며 자학하는 선전관을 막으려 애를 쓰며 그들은 눈에서 흐르는 하염없이 흘리는 눈물을 막지 못했다. 온 피가 쏠려 터질듯한 장군의 얼굴을 보며 솟구치는 울분을 털지 못해 거꾸러졌다. 상감이, 상감께서, 어찌 오랑캐에 절을 한단 말인가. 그토록 많은 산하의 백성이 마을을 잃고 목숨마저 앗기었단 말인가. 갈 곳 몰라 몰아치는 분노로 장군은 말했다. 친다. 오랑캐를 친다. 우리 강역이 피눈물 흘리며 복수하라 한다. 쳐야만 한다. 선진으로 삼전도에서 출발한 요퇴와 삼백의 철기가 있다고 알려온 건 이미 기진해 쓰러졌던 선전관이었다. 우리의 아들들, 조선의 오누이들을 수백이나 데리고 청으로 돌아가는 오랑캐들이 있다고 피를 토하는 울분으로 알려왔다. 장군. 장군. 그들을 구해주소서. 능욕당하고 노예로 팔릴 운명에서 우리의 백성들을 구해주소서. 장군이 조선의 마지막 희망이외다. 의주부의, 그리고 백마산성의 모든 이들이 선전관과 같이 앙청했다. 장군이 조선의 마지막 희망이외다. 네들이 죽느네라. 삿기치는 진눈깨비 속에서 장군의 눈에도 물이 맺히고 그들의 눈에도 물이 흘렀다. 죽어도 좋소이다, 복수를 하옵소서. 오랑캐 황제에게 혈육을 잃는 슬픔을 알려주소서. 전투를 막으러 온 선전관의 비통한 부름 속에서 복수를 갈구하는 부하들의 통한의 고간을 받으며 장군은 그저 하염없이 눈을 감았다. 네들은 죽는다. 죽어도 좋소이다. 터져 오르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죽어도, 좋소이다. 차갑게 내리는 눈발을 맞으며 그때 그렇게 모두 부복하고 눈물을 흘렸다.
 눈발이 내리치던 어느 봄 날, 장군의 명에 따라 칠곡보로 열한명의 자원자가 달려 나간 것은 그 직후였다.
 “눈이 내리는 구려.”
 “그렇구려.”
 사내는 장지문 밖을 계속 내다보며 말했다. 다시 돌아오는 말이 없었다. 쉬익 하며 바람 빠지는 듯한 거센 소리가 들려왔다. 취기가 오른 사공이 배를 풀어헤치고 아랫목에 누워있는 것이 보였다. 사공이 마시던 사발도 바닥에 아무렇게나 팽개쳐져 있었다. 붉게 상기된 코끝에 물방울이 맺혔다. 깊고 크게 내쉬는 호흡에 따라 물방울은 흔들렸다. 목에서 쇳소리가 나는 것이 너무 취한 모양이었다. 사내는 동창 아래 개켜진 이불을 폈다. 펼쳐진 이불 가운데 군데군데 구멍이 뚫리고 헤진 모습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모두 펼친 이불을 네 단으로 접어 헤진 부분을 가린 사내는 사공의 배 위에 가볍게 덮었다. 머리가 아찔해졌다. 따뜻한 훈기에 술기운이 화악하고 도는 느낌이었다. 지펴오는 술기운을 따라 억눌러온 고통이 되살아났다. 머리를 가볍게 짚고 문질렀다. 아팠다. 사내는 움켜쥔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세게 내리쳤다. 아팠다. 눈앞에 물방울이 맺혔다. 아파서 그런 것이다. 마음속으로 그렇게 말하고 또 말했다. 십년동안 되뇌었듯이 그렇게.
 장지문 너머로는 아직도 눈이 내리고 있었다. 첫눈치고는 대설이 될 듯한 기세로 계속 눈발이 굵어졌다. 사내는 댓돌에 올린 신을 다시 갖춰 신고 마당으로 나와 섰다. 이슥 깊어진 밤인데, 하늘은 도리어 붉고 희었다. 하늘을 바라보는 사내의 얼굴 위로 눈이 떨어져 녹아 흘렀다. 그렇게 젖은 얼굴을 사내는 씻어내지 않았다. 눈을 피해 다시 방으로 들어가지도 않았다.
 그저 달아나면 될 일이었다. 단지 봉화를 피우고 곧바로 달아나면 임무는 다한 것이었다. 그저 전초였으니까. 하지만 아무도, 달아날 준비는 하지 않았다. 극한에 몰린 뱀처럼 독을 품고 웅크리고 있었다. 하나라도, 자기 손으로 적의 멱을 따낸다는 각오로 기다렸다. 친지의 생명을 걷은 오랑캐의 배를 가른다는 일념으로 기다렸다.
 모든 게 이레째까지였다.
 나흘이면 올 거라던 적은 여드레째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압록강에서 한강까지 한나절에 내달렸다는 오랑캐는 출발한지 열흘도 더 넘어서도 오질 않았다. 분노는 풀어졌고 각오는 휘지비지하게 풀어졌다. 지쳤다. 점점 자는 시간이 길어졌다. 주린 배와 타는 목으로는 더 이상 밤을 지샐 수 없었다.
 창을 쓰는 현호가 결국 허방을 놓아 고라니를 잡았다. 고기를 썰고 피를 나눠 마셨다. 가죽을 덮었다. 하급이긴 해도 군관인데다가 나이도 가장 많은 명보가 직접 고기를 익혔다. 배불리 먹고 갈증을 달랬다. 포만한 배를 두드리며 오랜만에 그들은 편히 잘 수 있었다. 쌓인 피로와 긴장도 풀어졌다. 잠에서 깨어난 그들은 다시 모두 함께 밤을 샐 수 없었다. 아무리 치떠도 떨어지는 눈꺼풀을 막을 수 없었다. 그저 돌아가며 남쪽을, 지쳐가는 서로를 감시할 수밖에 없었다.
 휴식이 늘자 생각이 많아졌다. 언제까지 기다려야할까. 다른 지역에서 노략질이라도 하는 거 아닌가. 다른 길로 간 것은 아닐까. 선전관이 잘못 말한 건 아니려나. 혹시 여기 오기 전에 의병들이 들고 일어나 처리한 건 아닐까. 마자수가 넓어서 두만강으로 간 것일지도 몰라. 입 밖에 대놓고 말을 하진 않았지만 서로의 마음속에 의혹이 피어났다. 고통과 시련 속에 생활하면서 도리어 죽음에 대한 공포도 자라났다. 언제까지? 마음속에 키워온 분노와 복수심은 같은 크기의 추가 되어 고통의 늪으로 그들을 끌고 들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주체할 수 없었다.
 “웃방 손님이시쥬?”
 기분 좋은 찬 바람 사이로 뒤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사내는 놀라 뒤를 돌아봤다. 비쩍 마른 여인네의 모습이 낮에 봤던 주모였다. 피곤에 젖은 얼굴의 주모가 다시 말했다.
 “먼 길 하셨나봐, 이 동니 사람 아니죠?”
 “그렇소.”
 갈 곳 모르는 분노는 자신을 찔러댄다. 차라리 그때 요퇴가 나타났다면. 그런 때늦은 기대를 품어본 게 몇 번이던가. 철기의 물결이 아직 푸르게 날이 서있던 그때에 그들을 휩쓸어냈다면. 십년간 방황하며 후회해도 회한은 가슴을 찔렀다.
 “워메, 딱 맞았네. 어쩐지 냄새가 다르더니. 아재비가 울 술막 문간을 넘어서자마자 알았다우. 내가 워낙 그런 걸 잘 맡어. 타향 사람은 냄새가 다른 거 아시우?”
 “몰랐구려.”
 “사공 아재랑은 아는 사이요?”
 “오늘 만났다오.”
 “그렇고마. 하긴 그 아재 강 건너 동니에 산 10년 동안 친구라고 누구 데려오는 걸 한번도 못봤수.”
 “.......”
 “죄를 씻는다던가.. 외톨이로 살아야할 한이 많은 아재구나, 그냥 그리 여겼지비.”
 “.......”
 아마 사공도 사내처럼 업을 이고 살아가는 이려니. 사내는 그렇게 생각했다. 같이 업을 지고 걸어가는 이이니 나를 알아본 게지. 문득 사내는 오만했던, 하지만 한가득히 주름을 짊어진 사공의 얼굴을 떠올렸다. 왠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나저나 이 늦은 저녁에 안주무시고 뭐하시우? 피곤하잖우?”
 “밤새우기에는 이골이 나서. 괜찮소.”
 바람막이 없는 노지에서 이레간의 밤새움은 급격한 피로와 고통을 초래했다. 찌들은 악취와 피고름내가 칠곡보를 진동했다. 하지만 지치고 피로한 그들은 맡지도 못했다. 고요한 지옥이었다. 장승처럼 그저 하염없이 바라볼 뿐인 시간이었다.
 현호의 실언 이후 오래도록 지속된 침묵을 깨고 명보가 말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곳에 있어야 하는가. 이곳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기력이 너무 없어지지 않았는가. 짐승이라도 잡아먹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아무 말도 돌아오지 않았다. 명보도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이러다 금구를 범할까 두려웠으니까. 하지만 이미 말해버린 것과 다름없었다. 훌쩍, 훌쩍. 울음소리가 들렸다. 현호였다. 현호가 울었다. 남에게 들릴까 두려워 입을 막고 눈을 씻으며 울고 있었다. 현호를 외면하고 모두, 못 본 척 돌아섰다. 목이 마른 것 같았다. 그렇지 않다면 이리도 목이 메어올 리가 없으니까. 누군가 현호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함께 울먹이면서. 누군가가 나지막이 말했다. 우리의 임무는 그저 봉화를 피우는 것만이야. 아무도 그 말을 듣지 못했다.
 “낫살도 들어 뵈는데 무슨 영광을 볼라구 이리 돌아 댕기슈? 가족은 뭐하우?”
 “없소.”
 “가족이 없을 수가 있나 그래?”
 “그렇다오.”
 낯선 여인의 관심이 귀찮다는 듯, 사내는 말을 짧게 끊었다. 눈치를 못 챘는지, 주모는 여전히 무언가 궁금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데런. 난리 때 일 치르셨나 보구만. 쯧쯧. 안되셨수. 우리 작은 애도 난리통에 떠나 보냈다우. 내가 그 맘 알지, 내가 정말 그 맘 알아.”
 “.................”
 사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을 긍정으로 오해한 주모는 계속 말을 이었다.
 “사는 집이 어디시유?”
 집은 없었다.
 “없소.”
 “그럼 고향은 원래 어디유?”
 고향도 없었다.
 “없다오.”
 “데런. 고향이 없다는 게 말이나 되나.”
 “..........”
 사내는 아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난리가 끝날 무렵, 사내는 떠돌기 시작했다. 평안도, 황해도 할 것 없이 마을은 한 줌 재로 변했고 농토는 숲이 되어 버렸다. 젊은 남자는 젊은 여자만큼 보기 힘들었다. 늘어난 건 무덤밖에 없었다. 여기저기 배고픔에 주린 애들이 길거리에 나 앉아 울고 낮에도 야수가 마을에 뛰어들었다. 행인지 불행인지 조선이 저항하지도 못할 속도로 청의 팔기병들이 치고 내려간 덕에 도리어 산골이나 길에서 멀리 떨어진 마을들은 그나마 살아남았다. 그러나 그곳에도 젊은이들은 없었다. 사내는 의주를 향한 길목에서 바라본 공녀들의 기나긴 행렬을 기억했다. 피눈물 흘리며 행렬을 지켜보던 장군을 추억했다. 온통 벗기운 채로 나무에 묶여 죽은 여인들의 시신에 경악했던 안주 근방의 산은 계속 회고됐다. 깊고 깊은 절벽 아래 가득히 메워진 시신의 산과 피의 강이 솟아난 사리원의 악몽은 사내의 뇌리에서 떠나가지 않았다. 난리 후 조선 땅에 유일하게 늘어난 것이라는 무덤의 떼 옆에서 무릎 꿇었던 그날도 계속 떠올랐다. 이미 말라붙은 사내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오롯한 악의에 의해 부서지고 망가진 나라였다. 가도 가도 끝없는 파괴와 학살의 흔적이었다. 고통의 기억이 하나씩 늘어갈 때마다 사내는 고통 속으로 침잠해갔다.
 사내는 갈 곳이 없었다. 머무를 곳도 없었다. 돌아가서도 안 되고 머물러서도 안됐다. 서북도의 모든 곳은 칼날이 되어 사내의 상처를 후벼댔기에. 그저 떠돌 뿐. 길이 집이고 가는 곳이 고향인 생활. 구걸은 하지 않았다. 비럭질만은 할 수 없다는 자존심에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부질없이 살아남은 주제에, 동정으로 명을 이어서는 안 된다는 자각이 사내를 가로 막았기에. 날품을 팔고 짐을 옮겼다. 가진 짐을 하나씩 팔았다. 단련해둔 육체 덕에, 노역도 할만했다. 젊은 사람이 부족해져, 일거리도 충분했다. 노자 벌이엔 모자람이 없었다. 우스웠다.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난리 덕으로 먹고 사는 것이. 그렇게 번 끼니는 먹어도 배부르지 않았다. 객점의 따뜻한 온기는 가시가 되어 사내를 찔렀다. 시체를 뜯어 연명하고 시신을 태워 온기를 쬐는 게다, 사내는 그렇게 눈물 흘렸다.
 일부러 서북을 나섰다. 삼남의 길은 낯설고 외로웠다. 전화를 덜 입은 삼남의 길 위에서 사내는 떠돌았다. 사라지지 않는 기억에 사내는 몸서리쳤다. 사내를 괴롭힌 차가운 북풍도, 무덤 떼도 삼남에도 그대로 있었다. 편히 머물 수 있는 곳은 아마도 조선 천지에 없었다. 외로움만이 마음의 병으로 울부짖는 사내의 마지막 보루였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마음껏 울고 아파하며 사내는 십년을 주유했다. 결코 서북도로도, 경기로도 올라가지 않았다. 홀로 맞는 바람 속에서만 조금이나마 절망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 바람을 맞으며 흐른 십년이었다.
 기억의 갈피 속에서 헤매느라 사내는 주모의 말을 흘렸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뭐라고 하시었소? 아, 미안하오. 다시 말해줄 수 있겠소?”
 “에구. 그 소식을 못 들었나요? 임 장군님이 명나라에서도 장군이 돼서 오랑캐 놈들하고 싸우고 있답디다. 시상에나, 정말 못 들으셨수?”
 “아, 그렇구려. 지금 처음 들었소.”
 못 들었을 리가 없다.
 “오랑캐 놈들에게 당한 걸 생각하면 십년이 지났는데도 여적 눈물이 난다우. 그 악다귀같은 놈들이, 사람 새끼 같지도 않은 그 놈들이 그....”
 주모는 옷고름을 들어 눈을 닦았다. 아마도 떠나간 작은 아들의 생각이 난 듯했다. 오십이 넘어 육십 줄을 바라보는 늙은 여인의 눈물을 보면서 사내는 여전히 떨리는 가슴을 느꼈다.
 “임 장군님이 있으니 난 정말 살맛이 난다우. 원수를 갚아주신다니 얼마나 고마우.”
 주모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사내는 위로할 수 없었다.
 “난리 때 장군님이 오랑캐를 박살을 냈다는 얘길 들었을 때 어찌나 기쁘던지, 말할 수가 없더만요.”
 “..................”
 사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장군님이 어찌나 고맙던지... 그 놈들이 애초에 들어올 때 임 장군님이 물리쳐줬으면 오죽 좋았을까...”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도 여인의 눈에서는 눈물이 거듭 새어나왔다. 지난 십년의 세월에도 삭혀지지 않는 슬픔일 터였다. 사내도 그 마음을 너무도 잘 알았다.
 “군졸들도 정말 고생이 많았을 게지.... 그 먼 타지에서 여적 싸우고 계시다니 장군님도 오죽이나 외로울까... 나랏님이 왜 장군님한티 도움을 안주는지 당췌 모르겠수... 도움 줄 사람만 좀 있어도 이렇게 맘이 애롭진 않을 터인데...”
 그렇게 주모는 계속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 눈은 이제 완연한 함박눈으로 변했다. 마당 곳곳에, 지붕 처처에 눈이 쌓였다. 사내의 머리에도, 얼굴에도 눈이 쌓이고, 녹아 흘렀다. 얼굴에도 눈물이 흘렀다.


 열이튿날, 해가 질 무렵에 더 가까운 낮의 어느 시간. 그들은 타성으로 더러는 앉아서, 더러는 누워서 남쪽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현호는 바위 틈새에 들어가 세 마리째 잡은 고라니의 고기를 굽고 있었다. 불길에 솟은 티끌이 눈에 들어갔는지, 흘리는 눈물을 닦는 모습을 명보는 지켜보았다. 남 쪽 멀리에서는 흙먼지가 솟았다. 남쪽을 보던 명보는 요의를 느끼고 흙벽 아래로 내려섰다.
 너무나 기다렸기에 도리어 알아채지 못하는 일은 흔히 있는 법이다. 적의 도래를 알아챈 것은 이미 흙먼지가 한참 가까워진 뒤였다. 거의 동시에, 열한명이 일제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널려둔 무기, 손질 중이던 창칼을 집어 들었다. 흙담 위에 대궁을 올렸다. 칼집에서 칼을 뽑았다. 창을 꼬나 잡고 웅크리고 앉았다. 바쁘게 싸울 준비를 하는 통에 봉화는 도리어 늦게 올렸다. 부싯깃에 화도를 내리치는 소리가 뒤늦게야 들렸다. 멀리서 철기병이 나타났다. 삼백기가 아니라 천은 넘어보였다. 천천히 걸으며 칠곡보를 향해 다가왔다. 요퇴는 칠곡보를 알지 못한다. 칠곡보 위의 열한명은 어깨를 긴장시켰다. 활시위가 팽팽히 당겨졌다. 활대가 부러질 듯 휘어졌다. 쏘시개에 불이 붙어 화악하는 소리가 들렸다. 관솔에서 연기가 뿜어 올랐다. 뭉클거리며 회백색 연기가 솟아올랐다. 멀리 등 뒤에서 우는 살이 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임무는 다 했어, 다 한거야. 하늘을 찢으며 날아오르는 효시의 울음을 듣고 누군가 그렇게 절규했다.
 대부분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
 뒤돌아보지도 않고 뛰었다. 터질 듯한 심장의 박동을, 미친 듯이 내달려 돌부리에 채이고 찢어진 발의 아픔을 느낄 틈도 없었다. 그저 뛰었다. 의주부를 향해 오로지 뛰었다. 뒤에선 말발굽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차근차근 걸어오던 소리가 이젠 내달아오는 소리로 바뀌었다. 그제야 봉화를 본 모양이었다. 탕탕탕하고 활대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피잉하고 화살이 나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비명소리가 들렸다. 귀를 막고 계속 뛰었다. 가치작거리는 전통을 풀어 내 던졌다. 활은 어디로 갔는지 사라져 이미 보이지도 않았다. 절그럭거리며 다리에 걸리는 칼도 버렸다. 천둥처럼 가까이서 발굽소리가 들렸다. 착각이라고, 공포라고 진정할 시간도 없었다. 괴성이 들렸다. 아아아아 하는 고함소리가 들렸다. 황급히 좌우를 살폈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 괴성이 지금까지 자신의 목에서 새어나오고 있는 소리임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한참을 더 내달린 뒤였다. 천지를 울리고 산을 깨는 거대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폭발음이 들렸다.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고 계속 뛰었다. 쇳소리도 들렸다. 고함과 비명이 들렸다. 결코 뒤를 보지 못했다. 털썩, 하고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이미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뒤돌아 볼 수 없었다. 아무도 없었다. 그 혼자만 뛰어온 것이다. 신호를 올렸으니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해봤다. 결코 칠곡보를 되돌아보지 않았다. 볼 수 없었다. 말발굽 소리가 다시 들렸다. 천천히 걷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 지나지도 않았었다. 그 순간을 위해 그들은 열이틀을 지옥과 같은 시간 속에서 보내야 했다. 명보는 울음을 터뜨렸다. 장군이 이끄는 본군이 청 황제의 조카 요퇴를 버히고 팔기병 삼백을 격멸하여 그들이 끌고 가던 우리 백성들 수백을 구해냈다는 이야기를 명보는 정주에서 들을 수 있었다. 어디에도 칠곡보의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아무도 열한 명의 죽음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한번 터진 눈물은 끝나지 않고 계속 흘렀다. 명보는 떨리는 주모의 등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눈이 많이 내렸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명보는 뒤로 돌아섰다. 어느새 마당 위로 소복이 새로 쌓인 눈 위로 첫 발자욱이 길게 남았다. 대문 밖에 걸린 등롱의 붉은 빛이 푸른 빛 눈 위에 흔들렸다. 북풍이 불었다.
 늙은 사공은 여전히 배를 드러내고 자고 있었다. 어느새 덮어준 이불은 옆에 구겨져 밀려 있었다. 명보는 사공의 배에 남은 흉터를 보았다. 깊게 할퀴어진 자상의 흉터였다. 옆에 구겨진 이불을 다시 잘 편 명보는 사공의 배에 이불을 덮어 주었다.
 사공은 곧바로 다시 이불을 걷어냈다. 사공이 명보의 눈을 바라보았다.
 “언제부터 깨어 있었소?”
 “당신이 나가고 곧 깼다오.”
 사공은 헝클어진 머리를 한번 쓸어내리고는 자리에 앉아 명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명보는 사공의 충혈된 눈을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명보가 사공에게 물었다.
 “술독은 괜찮소? 많이 자셨소.”
 “기어코 마자수를 넘을 생각이오?”
 “..............”
 급작스런 사공의 질문에 명보는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알았느냐 묻지도 않았다. 명보는 그저 말없이 압록강만 생각했다. 이제는 넘어야할 그 강을. 사공이 말했다.
 “죽지 않은 것은 죄가 아니오."
 "죄일 수도 있지요.“
 "살아서 헌신하는 것이 속죄일 거요..“
 “난 큰 죄인이오.”
 “나도 죄인이었소. 죽어야할 때 죽지 못한.”
 “..................”
 둘 사이에서 잠시 정적이 흘렀다. 문 밖으로 눈 내리는 소리가 부드럽게 들렸다. 사공이 다시 말했다.
 “죄인이던 나도 이렇게 살고 있소. 살린 목숨 뜻있게 쓰는 것도 바른 것이 아니겠소.”
 “살아선 안 될 몸이라오.”
 “살아선 안 될 사람이 어디 있소.”
 “난 속죄를 해야만 하오. 죽을 자리를 찾기 위해 살았다오.”
 “꼭 마자수 너머 임 장군께 가야만 속죄가 아니지 않소.”
 “이미 한 번 때를 놓쳐 10년을 후회했다오.”
 “............”
 “이번엔 영원히 후회할거요.”
 “............”
 사공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명보도 대답을 바라지 않았다. 명보는 조용히 장지문 건너 하늘을 바라보았다. 물끄러미 명보만 바라보던 사공도 따라 하늘을 보았다. 하늘에는 흰 눈이 내리고 있었다. 붉게 물든 밤하늘에서 시리도록 하얀 눈이 계속 내렸다. 추위와 주림에 떨던 십년 전 그날의 하늘도 지금처럼 붉었다. 명보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공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효홍의 첫 햇살이 한 가닥 동창을 비췄다. 밤새 내리던 눈도 잦아들었다. 명보는 벽에 기대 잠든 사공을 바라보았다. 사공의 주름 사이에 깊이 스며있는 고뇌와 시름을 읽었다. 전후의 고통과 시련을 자기처럼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 짊어진 고통의 나날은 그대로 이마에 앉아 주름이 되었다. 걷어 차버린 이불을 다시 덮어주지 않았다. 그저 먼저 간 사람들을 슬퍼하는 사공의 괴로움을 느꼈다. 스물은 더 늙어보이는 사공의 주름진 얼굴을 더 이상 지켜보지 못했다. 고개를 돌렸다. 얼굴 곳곳에 배어 있는 고통의 흔적에서 눈을 돌렸다. 가슴을 쓸어 내렸다. 마자수라는 옛 이름으로만 압록을 부르던 고집 세던 아이의 눈물을 너무도 지쳐버린 그 얼굴에서 읽었다.
 명보는 객잔의 대문을 소리 없이 밀었다. 아무도 깨어있지 않았다. 밤새 눈바람에 시달린 등롱도 차갑게 식은 채 잠들어 있었다. 아무도 깨지 않은 새벽의 동녘이 보랏빛에 물들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길 위로 새파랗게 눈이 쌓였다. 잠시 제자리에 서서 방향을 가늠한 명보는 북쪽을 향해 걸어갔다. 눈 위로 첫 발자국이 뚜렷이 새겨졌다. 어느새 길게 멀어진 발자국 위로 눈이 덮였다. 오랑캐와 싸우고 있다는 임경업 장군을 따라서. 그렇게 명보는 지평선 밖으로 사라져갔다. 하염없이 내리는 눈발에 발자국도, 슬픔도 모두 덮여 사라져갔다.
 벽에 기댄 채로, 사공의 눈에선 말없이 눈물이 흘렀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창 밖에는 하염없이 눈이 내렸다. 온 세상을 덮어버릴 것처럼.

 

 현호야, 이 난리가 끝나면 무얼 할 것이더냐?
 업을 이고 나르고 싶사옵니다. 세상에 업이 남질 않도록, 세상에 한이 없도록 제가 다 나르고 싶사옵니다.
 눈이 내리는 구나.
 나리, 눈이 내립니다.

Posted by Chlo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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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무제.

카테고리 없음 2010. 12. 27. 03:52
  근자에 새로 쓴 소설은 도저히 공개할 수 없는 사정에 의해 삭제했고, 내용이나 방향은 다르지만 취지는 유사한 이전에 썼던 소설로 대체함. 아래 소설의 평은 ::: 저자가 너무 전면에 드러나서 말하고 있다. 이것은 소설의 흐름을 해치고 내용과 독자 사이의 간격을 방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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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서 말갛게 피어오른 분홍빛 아지랑이를 나는 손을 흔들어 헤집어냈다. 꿈일 것이다. 그저 환상일 것이다. 내가 이런 홍복을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단지 백일몽에 빠져 나무 그루터기를 베고 잠든 불운한 청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런 행복의 포만감이 나를 찾아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 명백히 무언가 실수가 있었을 것이다. 이럴 수는 없을 것이다. 여우라도 나타나 나를 홀리는 것은 아닐까. 이건 정녕코, 너무도 환상적이었다. 내 평생 단 한번이라도 꿈꿀 수 없었을 정도로. 봄날의 따뜻한 기운에 환상을 보는 것이라고 믿기엔 공기는 너무 차가웠고 미등은 너무 어두웠다. 연둣빛 스커트, 개나리빛 블라우스의 향연이 어지러이 눈을 괴롭혔다. 아니, 그 찬연한 파스텔 톤의 아름다운 옷보다 그 아래 그녀가 더더욱 나의 가슴을 크게 울려냈다. 믿기가 힘들 정도로 어지럽게.

 

지나치게 진부하게도, 결국 나는 피할 수 없는 욕망에 눌려 두 눈을 세게 비볐다. 내친김에, 두 뺨도 세게 꼬집어 비틀어보았지만 고통은 너무 분명했고 환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꿈이 아니던가. 꿈일 수는 없는 것일까. 그래. 진짜일지도 몰라. 정말 이 모든 게 내 머리 속 꿈이 아니고 내가 잠든 것이 아니라면 이 어쩌면 나는. 말을 잇기 힘들었다. 머리 속이 그저 희게 비어버린 것처럼. 아니, 차라리 다홍빛으로 붉게 물들어 버린 것처럼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벌판에 피어나는 아지랑이처럼 그저 사라질 꿈은 아닐까. 그저 설령 꿈이면, 아니 혹시 이게 환상이라면. 아니, 아니, 아니, 그럴 수는 없었다. 인생에 한번 찾아올지 모를 그런 행운을 환상처럼 흘려보낼 수는 없다. 차라리, 차라리 한번 확인이라도 해보자. 정말, 정말 그녀인가? 아니다. 그러나 차마 이마 위로 뻗은 머리카락 한 올마저 나는 건드릴 수 없었다. 설혹 환상 일까봐, 아지랑이 피어나는 가을바람 위로 떠오른 그저 환상 일까봐, 나는 건드릴 수 없었다. 사라져버리면, 사라져버리면.

 

순간 정녕코 견디지 못할 강렬한 욕망에 나는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릿결을 살짝 어루만졌다. 주의 깊게, 건드린 덕에 그녀는 깨지 않았다. 나는 범죄를 저지른 듯한 가책에 할 말마저 잊어 버렸다. 그녀의 촉감이 너무도 생생했다. 그녀는 살아있고 내 앞에서 생생히 숨쉬고 있었으니까. 정녕코 그저 살아있는 존재였으니까. 차라리 기분이 가라앉았다. 확실했다. 그녀는 확실했다. 내 옆에서 그녀가 앉아 있는 것이 확실했다. 손을 내리고 나는 최대한 잠든 그녀가 불편하지 않을 수 있게 조심해서 자세를 고쳤다. 조용히, 몸이 약간 위로 들리는 느낌이 그때 들었다. 자리에 앉아마자 덮개를 들어 두었던 창 밖을 내다보았다. 날씨가 좋지는 않았다. 천장에 붙은 디스플레이는 출발한지 2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는 고작 러시아 상공에 머물러 있다고 나지막이 말했다. 대륙의 기상답게, 막 찾아온 봄은 겨울의 난동 같은 폭풍 속에 실종되어 있었다. 검푸른 구름과 창연한 벼락의 향연이 창 밖을 혼란스럽게 수놓고 있었으니까. 아니, 어쩌면 이것이 대륙의 봄일런지도 몰랐다. 한국과는 다른 그런 대륙의 봄. 한국 시간 밤 12시 44분 21초. 시속 924km. 발밑이 조금 붕 뜬 느낌. 무게를 느낄 수 없으리만큼 가벼운, 내 어깨 위에 얹힌 저 아름다운 얼굴만큼이나 비행기 승객석은 환상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여행의 시작이 이토록 환상적일 줄이야. 비일상의 환각을 그리며 떠난 것이긴 했지만 이토록 아름다운 시작일 줄이야. 차라리 그리도 기대했던 여행 자체가 퇴색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스러울 만큼이나 신비로웠다. 어깨로 느껴지는, 지나치리만큼 보드라운 두 뺨의 무게는 너무도 가벼웠다. 붉은 향기가 감도는 그 뺨 위로 흐르는 머리칼을 만지기 전엔 그저 꿈이라고 믿을 만큼이나.

 

그 확인만으로도 어떤 말도 할 수 없으리만큼 가슴이 북받쳐 올랐다. 슬픈 것인지, 도리어 기쁜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행복한가? 지금 나는 행복한가? 분명코 원해오던 상황이고, 더 이상 기쁠 수 없을 정도로 황홀한 지금 이 순간에 행복하냐고 되묻고나 있다니, 대체 나는 정신이 제대로 박힌 놈인가. 실소만 새어나왔다. 그저 말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볼을 조심스레 내려다보았다. 그녀가 깨지 않도록 나는 조심하여 그녀를 바라보았다. 박수라도 치고 싶었지만, 어깨를 움직일 수 없었으니 그럴 수는 없었다. 피식. 나지막하게, 하지만 소리 내어 나는 처음으로 웃어냈다. 꿈에도 그리던 그런 순간이 이뤄지고 보니, 도리어 행복한지 알 수 없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이를테면, 도리어 저주라도 받은 것인가.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그녀가 내 옆에 있다는 것 뿐 이었다. 그것도 지금 내 어깨에 기대어서. 환각에 몸을 맡기어, 비일상적인 꿈을 꾸면서 나를 잊고자 했던 여행의 목적은 출발만으로 충족된 느낌이었다. 가장 아름다운 극한으로서.

 

희디 흰 벼락이 꽤나 가까이에서 내리꽂혔다. 어두운 기내에 창백한 빛이 새어들었다. 깨지 않았으려나.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리어 어깨를 내려다보았다. 깨지 않았다. 왼손으로 창 덮개를 내리 덮었다. 히터는 너무 덥지 않았다. 왠지 너무도 멀리 떨어져 아스라이 흔들리는 것 같은 오렌지색 미등 사이로 승무원들이 다니며 자는 이들의 가슴 위로 모포를 덮어주는 모습이 보였다. 이쪽으로 오는 이는 아직 없었다. 조용히 손을 들어 그녀에게 모포를 하나 덮어주고 나는 맥주를 한 캔 받았다. 이상하게 알싸한 향이 났다. 달콤한 그 향내는 맥주에서 난 것일까? 알콜의 맛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희한하게 한 잔 만으로 붉게 술기운이 달아올랐다. 기분이 좋았다. 따스한 오른편 어깨만큼 온몸이 포근했다. 그녀는 나의 어깨와 시트가 정녕코 편한 듯, 깊이 잠들어 깨지 않았다.

 

좁은 비행기의 좌석에서 머리를 어깨에 기대이려면 꽤나 목을 길게 빼야 할 텐데, 이 사람은 지금 외간 남자, 그것도 처음 보는 이의 어깨를 자연스레 무단 점유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고, 연예인 직업특성상 꽤나 신변관리에는 철저할 텐데도 그러는 걸 보면 꽤나 피곤한 모양인데, 목을 너무 길게 늘이고 있는 것이라면 도리어 깨어났을 때 더 피곤한 상황에 처해버릴지도 모르니까. 조심스레, 1분에 1센티미터라는 소심한 생각으로 조금씩 그녀 쪽으로 어깨를 밀었다. 차츰, 밀려나는 그녀의 무게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을 생각하면 소심한 걱정이 그래도 맞아떨어진 모양이었다. 잠에서 깬 그녀가 근육통을 호소하느니, 내 쪽이 무례한 소리를 듣는 것이 낫겠지. 그런 생각에, 조금 더 나는 몸을 오른쪽으로 밀었다. 아마 그녀는 꽤 편한 자세가 된 모양인지, 가볍게 한숨쉬더니 다시 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행복했다.

 

왜 그녀는 이곳에 있는 것일까. 꽤나 이르게 나는 탑승한 편이었고 자리에 앉자마자 곧 곯아떨어졌으니 그 뒤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당연히 기억해낼 수 있을 리 없었다. 헌데 마땅히 있어야할 매니저도 보이질 않고, 그녀가 왜 비즈니스나 퍼스트 클래스가 아닌 이코노미 클래스에 앉아 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남들에겐 비밀로 해두고 짧은 휴가라도 떠나는 것일까? 단출한 차림에 단지 눌러쓴 모자와 그녀의 작은 얼굴을 반도 넘게 가려버린 선글라스 하나만 믿고 떠날 수 있을까. 아무리 그래도 그토록 얼굴이 알려진 연예인이. 제대로 몰라서 그리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긴 하지만, 보통 연예인이 혼자 돌아다니면 아무래도 위험하거나 하지 않을까? 곰곰이 생각을 곱씹어 보았다. 아무래도 사람들도 몰려들 테고, 그런데서 실수라도 한다면 이미지에도 좋을 것 같지는 않은데. 흔히 말하듯, 이미지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려나.

 

으음, 하고 가벼운 신음성이 들렸다. 희한하게도 기대어 자는 것이 편한 모양인지, 그녀는 이젠 완연히 미소까지 띄면서 조금 더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하기사, 중요한 건 그런 것이 아니었다. 얼마 전 촬영을 마치고, 또 다음 촬영의 계획까지 잡혀있는 이가 홀로 비행기를 탄 거라면 그녀 스스로에게 퍽이나 중요한 일이 있을 터였고, 그런 중요한 일을 앞두고도 처음 보는 사이에서 연인 같은 포즈를 자연스레 취할 정도로 피곤한 상태라면 퍽이나 강행군의 일정을 수행하고 있을 터인데. 눈가에 어린 검은 기운이 안쓰러웠다. 너무나도. 빛을 발하지만 자신은 아무 것도 받지 못하고 결국 이리도 피곤에 지치는, 그런 것일 뿐이려나. 따뜻한 연둣빛 긴 스커트 자락을 흐르는 주름을 따라 눈길을 돌리다 너무도 가녀린 그녀의 손을 바라보았다. 애욕에서가 아니라, 같은 인간이기에 정녕코 두 손으로 부여잡고 눈물 흘리고 싶을 정도로 메마른 그 손은 시릴 만큼 창백했다. 연둣빛, 봄의 향연 위에 가로 얹히어 이유 없이 슬펐다. 저리도 여윈 손이라니. 저리도 창백한 손이라니. 따스한 봄볕을 맞으며 쉬지도 못하고 그리도 항상 웃어야만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었을까. 이 사람은 그러면서 행복했을까. 행복했다면 그는 왜 지금 이리도 피곤하게 비행기를 타고 있는 것일까.

 

어쩐지 매체를 통해 그녀를 접할 때 상상하던 것만큼의 애정은 솟아오르지 않았다. 만나는 것만으로, 한번이라도 접해보는 것만으로 환희의 희열에 차오를 것이라는 생각은, 그때에도 이미 알고 있었듯 당연하게도 부정되었다. 그녀도 인간이었고 피곤에 지쳐 쓰러져 잠이 든 사랑스런 고양이일 따름이었다. 영상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창백하고 마른, 그래서 동정심이 이는 그런 가엾은 소녀. 환상적일 정도로, 나는 필생의 소원을 우연히도 이뤄냈지만 그러나 나는 내가 행복한지 알 수 없었다. 복 받쳐 올라 이미 숨소리마저 가로막은 알 수 없는 설레임도 그것이 과연 행복인지 장담하지 못했다. 나는 행복한가.

 

행복하지 않을 리 없다. 정녕코 내 어깨에 기대어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 어찌 내가 이 여성을 더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던가. 아름답고, 자는 모습마저 흐트러짐이 없는 이런 단아한 여인을 어찌 그 누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비록 잠시뿐이지만, 내 옆에 잠시 같은 시간을 했다는 것만으로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 나는 왜 행복함을 고민하는가. 느껴지지 않아서? 혹은 지금의 벅차오른 감동은 지속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나는 착각했을 뿐인가. 이미지에 포장된 그녀만을 보면서, 단순히 나는 그저 내 안에 담겨진 어떤 미감의 충족을 느끼면서 그 획득을 곧 행복이라고 착각한 것이려나.

 

깜빡, 앞 선반에 가로 놓인 모니터 화면이 변했다. 영하 22도. 결코 봄이라고 믿을 수 없는 온도. 계절을 뜻하는 것은 수도 없이 많겠지만 온도는 그 가장 큰 상징이라고 쉽게 믿었다. 혹은, 그 날짜가 그 계절을 상징한다고 믿었다. 지금은 봄이 아닌가? 곤한 잠을 이루는 그녀의 연둣빛 스커트만큼이나 내 곁의 봄은 너무도 명료한 것으로 느꼈기에 나는 길을 바잡았다. 영하 22도. 봄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그토록이나 맑은 하늘색의 구름들 사이로 이토록이나 매서운 혹한이 지금껏 남아있었을까. 화면은 다시 변했다. 쓰읍, 하는 가벼운 마찰음이 오른쪽 귀를 간질였다. 향긋한 소리. 창 덮개 사이로 흰 빛이 예리하게 파고들곤 사라졌다. 밖에서는 아직도 폭풍이 몰아치는 것이려나. 봄인데도, 겨울이 사라진 봄인데도 시베리아이기 때문에 그저 추운 것뿐일까. 엷은 하늘색 청명한 구름 사이로도 이토록 시린 냉기가 그대로 남아있던 것일까. 흰 빛이 사라져 봄을 노래하는 것 같았던 그때 신촌의 하늘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무엇을 보고 봄을 노래했던 것일까. 아니, 어떤 봄을 노래했던 것일까, 나는.

 

어슴푸레한 미등을 가리고 승무원이 나를 바라보았다. 필요하신 것이 있나요. 미등을 꺼드릴까요. 독서등이 필요하시다면 여길 누르시면 됩니다. 자는 이의 귀를 괴롭히지 않도록 나지막이 말하는 훈련을 받았겠지만, 그래도 피곤한 그녀가 혹여 깰까 걱정스러워 나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미소 한 모금, 친절 한 꺼풀을 걷고 뒤돌아선 승무원은 다른 깨어있는 누군가를 향해 걸어갔다. 비행기에 오르기 전 듣던 CD 플레이어의 이어폰을 다시 왼쪽 귀에만 꽂았다. 플레이를 누르지는 않았다. 그저 이어폰을 귀에 꽂아두고 싶었을 뿐이었다. 험히 쓰는 탓에 항상 망가지는 다른 한쪽은 꽂지 않았다. 왜 꽂지 않았을까. 가슴 앞 켠에 덜렁이는 오른쪽 이어폰을 촉각하며 디스플레이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행복한 여행되시길 바랍니다. 가는 길까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행복한 여행이라. 어떻게 하면 행복한 여행이 될까.

 

진부한 질문이었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인데도 부끄러울 만큼이나. 행복 따위, 무언지 알 수 있을 리가 없지 않던가. 행복은 그저 행복일 뿐이고 그 외의 언어로 규정하려는 시도의 실패는 행복의 모호성이 아니라 언어의 모호성에 기인하지 않던가. 그저 나는 그토록 원하던 독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타있고 우연히도 내 옆엔 아름다운 그녀가, 정말 우연히도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자고 있다. 간단했다. 이게 행복이었지. 매체를 통해 볼 때마다 그 단아하고 기품있는 모습, 천박하지 않고 우아한 그녀를 바라보면서 철모를 사랑의 꿈에 나는 얼마나 젖어들었던가. 이뤄질 수 없는 꿈을, 그 어떤 초월자는 이런 식으로 일시적으로나마 충족시켜준 것이라 나는 믿기로 했다. 행복이었다. 이것이야말로. 하지만

 

나는 내가 지금 행복하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행복은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물상이 아니라고 자위하면서도, 난 스스로 꿈에서나 바라던 지금 이 상황에서 도대체 왜 내가 행복하지 않은 것인지 어느새 자신에게 되묻고 있었다. 과연 행복한가. 매체나 일상에서 본 숱한 또래 여자애들 중에 기품이 있다, 혹은 우아하다고 말할 만한 몇 되지 않는 이였기에, 눈물 흘리지 않으면서 그토록 고통스러운 단장 斷腸의 슬픔을 역력히 보여줄 수 있는 기품있는 사람이었기에, 그 어떤 일상이나 심지어 걸음걸이에서도 단아한 매력으로 자신을 감싸고 있던 사람이기에 사랑하던 사람 아니던가. 그저 한번 가까이 할 수 있는 것만으로 행복할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을 하던 이가 아닌가. 소망의 달성은 곧 행복의 성취가 아니던가? 혹은 행복의 절정에서 차라리 행복을 느껴내질 못하는 것인가. 이도저도 아니라면 단지 나 자신의 소심함이 마음껏 기뻐해낼 자유를 스스로 막아서고 있는 것뿐인가.

 

행복하고 싶다고 느끼면서 진정 행복해하지 못하는, 아니 스스로 자신의 행복을 남에게로 돌리면서 그것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그 수많은 사람들을 경멸해본 적이 있었다. 복도 건너편에서 사이좋게 손을 맞 잡은 노부부도 아마 수십년의 시간을 자식을 위해, 직장의 동료들을 위해, 나라를 위해, 그들이 행복해지는 것을 자신의 행복이라 믿고서 살아왔을 것이다. 눈물나게 아름답고, 눈물나게 비참한 그런 식의 생활을. 도리어 자신이 행복해지는 것이 못내 못 견디게 즐거워서, 차라리 슬퍼지고 마는 길을 택하는 그런 사람들. 지독하게 슬퍼서 도리어 기쁘게 살아가는 그런 많은 이들. 내 안에서 행복과 의미를 이끌어내겠다고 나는 서원했고 그 길이 이기적인 욕망으로 뒤덮이지 않게 주의하려 했었다. 이 아름다운 여인과의 기묘한 하룻밤이, 비행기 위의 환상같은 단잠이 어찌 아니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일까. 아직도 충족되지 못한 갈망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상상한 행복이 채 행복이 아닌 것인가.

 

어둡게 가라앉은 디스플레이가 다시 시간선 하나를 더 지났음을 알렸다. 결국 나는 다시 손을 들어 맥주 한 캔을 다시 청했다. 세 시간, 앞으로 비행하는 세 시간은 아마도 내 인생에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되리니. 잠으로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기엔 너무나도 감동스러운 시간이었으니까. 맥주를 다시 청했다. 술이 요새 조금 빈번하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설마 맥주 서너 캔인데. 애주나 대주가를 자처하지는 않지만 기념할만한 순간에는 항상 한 잔의 위스키를 나는 갈망했다. 지금 이 순간을 더 뇌리에 깊이 남기기 위해. 보다 더 명료한 행복의 기록을 위해. 건배.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가벼이 올려든 캔을 나는 입으로 가져다 대었다. 아까처럼, 두번째 캔에서도 알싸한 향기가 났다. 설레도록 기품있는

 

확신할 수 있어?

 

무슨 확신 말이야.

 

정말로 지금 행복하니?

 

그래. 행복해. 아니, 행복해야해. 행복하다는 걸 스스로 너무도 잘 알잖아.

 

정말 행복하니 지금?

 

왜 그래 진짜. 행복하다니까. 너도 알잖아. 내가 이 여인을 얼마나 사모했는지. 우연이지만, 그리고 잠들어 있지만 난 지금 그녀와 같이 있어. 신기루 같은 기분이지만, 환상의 여인에게 적절한 시간이라고 생각해. 행복해 그래서.

 

그래서, 정말 행복하니?

 

귀찮게 굴지 마. 행복해. 지금은 네가 나설 때가 아니야. 행복해. 어떻게 행복하지 않을 수 있어? 몇 년을 꿈 속에서나 마주하던 상황이고, 그녀는 내 어깨를 베고서 향기를 온통 흩뿌리고 있고 난 조용히 맥주나 기울이고 있잖아. 행복해. 행복해. 말할 나위 없이 기뻐. 다시 행복하냐고 물을 생각이라면, 꺼져. 네게 허비할 시간이 없어. 이 기쁨을 되씹고 그녀의 우아한 모습들을 그려보면서 보내기에도 3시간은 너무 짧아. 사라져. 귀찮게 하지 마. 지금 이 행복한 시간을 너와 투닥거리며 허비할 여유는 내게 없어. 지금처럼 행복할 수가 없기 때문에.

 

아니, 넌 행복하지 않아.

 

뭐라고?

 

넌 행복이 뭔지도 몰라.

 

목소리는 사라졌다. 퍼뜩, 눈을 떴다. 디스플레이는 여전히 새벽 1시 11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고작해야 이삼분쯤 잠든 건가. 그녀는 여전히 내 어깨를 베고 향긋한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었다. 편한 모양이었다. 마음이 놓였다. 평소처럼 화들짝 놀라 잠에 깨었다면 자칫 깨버릴 수도 있었을 텐데. 다행이었다. 정말로. 검게 가라앉은 그녀의 앞에 가로 놓인 디스플레이 화면 위로 그녀의 얼굴이 비췄다. 너무나도 자그마한 얼굴에 지나치게 크게 보이는 검은 안경이 밀려 내려와 있었다. 그녀의 그 두 눈을 덮은 눈꺼풀 위로 미등의 오렌지색 빛이 부드럽게 내리비추는 것이 느껴졌다. 공항을 들어서던 그때 보았던 노란 팬지나 하늘거리는 부드럽고 작은 꽃잎을 가진 개나리같은 그녀의 얼굴이 그립도록 아름다웠다. 그러나 나는 알 수 없었다. 잠깐 눈을 붙인 새에 들려온 그 말들이 여전히 귓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지독하게도 밝은 그 목소리는 저주처럼 귓속을 떠나지 않으면서 계속 되묻고 있었다. 너는, 행복하냐고.

 

행복하지 않다니. 사실 자신이 없었다. 비록 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그녀였지만, 그래도 지금 내 어깨를 베고 잠든 이 여인은 내게 너무도 각별한 사람이었다. 그 걸음 하나, 목소리 하나까지 기품과 우아함을 느끼게 해준 그녀는 내가 닿고픈 지향점 그 자체였다고 해야 할까. 단아함을, 꿈꾸고 천박하지, 않은 내 자신이 되길 원하지만 언제나 너무도 비루한 내 자신을 나는 너무도 경멸했다. 그리고 그녀는 오로지 우아했다. 인터뷰에서, 혹은 영화 속에서 한 마디 말을 하는 목소리, 손놀림 그 끝마저도 단아했었다. 내가 닿을 수 없는 그 너머에서 그녀는 서 있었다. 그녀의 생활과 일상 속에 녹아있는 기품은 향기가 되어 매체 밖에 서있는 나의 마음을 감싸 안았고 나는 순수하게 절망했다. 깔깔거리며 밝게 웃는 모습에 마저 비루함은 없었고, 지극히 슬픈 모습의 연기에서 눈물 없이도 한을 표현하는 그녀의 깊은 감성의 발로를 보면서 나는 따를 수 없는 깊은 그녀의 내면을 보았고 나는 패배했다. 그녀의 기품은 일상에 녹아있었고 곧 나의 지향점이 되었다. 그녀는 내가 원하는 나의 이상형에 다름없다.

그런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가능하려나. 나는 곧 내가 단 한번도 대화를 섞어보지 못한 그녀와 사랑에 빠진 것을 깨달았다. 우아함, 그녀 자신의 내면을 가득하게 메운 성찰과 고민의 깊이를 연기하는 중간마다 향기처럼 배어나오는 모습을 보며 난 오로지 그녀의 뒷 모습을 한없이 바라보는 내 자신을 깨달았었다. 사랑이란 독점적인 영향력을 상호간에 행사하는 것이 허가된 관계성을 말하는 것이고, 사랑의 시작은 상대방의 영향력만이 내 자아를 독점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녀는 그 발걸음 하나, 심지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의 연기마저도 아름다웠고 내 지향점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녀에의 지향이 행복이 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하였다. 그리고 그 확신은 천박한 내 자신에 대한 경멸 위에 서있었기에 나는 더욱 그녀를 사랑하였다. 그녀의 아름다움을 경애하는 만큼 나 자신의 비루함이 보상받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우아한 그녀의 모습을 직접 대하면서 손가락 끝마저 천박하게 행동하지 않으려 혼신의 주의력을 집중하는 지금, 나는 가장 나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행복하지 않다고 나는 고민해야 하는가.

 

한 캔 더 필요하신가요? 눈을 들어보니 갈빛 제복의 승무원이 나를 향해 말하고 있었다. 아까부터 왠지 승무원들이 거듭 내 주변을 오갔다. 아마도 깨어있는 사람이 몇 없는 모양이지. 모포나 베개가 혹시 더 필요하시진 않으신가요. 이보세요. 난 잠들지 않을 거라니까. 시간이 아깝습니다. 이 행복을 나눌 여유는 없어요. 하긴 오른편으로 몸을 기울인 채로 꽤 오래 견딘 것인지, 등이 조금 저려왔다. 미소 띈 얼굴로 의아하게 바라보는 저 승무원은 불편한 자세로 굳이 불편을 감수하는 내가 신기한 것일까, 아니면 나와 그녀의 관계가 궁금한 것일까. 하하. 그저 이 비행기에서 잠에서 깨어난 1시간 전이 첫 만남이자 마지막 만남의 확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뭐라고 생각하려나. 그나저나, 쓸데없는 스캔들이라도 도는 것은 아니려나.

 

생각해보니 그것도 꽤나 걱정스러웠다. 연예인, 그것도 얼굴이 꽤 알려진 그녀를 알아보는 것은 비단 나 뿐만은 아닐 터이고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승무원들은 연예인의 비밀 여행을 엿보는 것이 그리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인데. 자칫, 연인과의 몰래 해외여행 정도로 소문이라도 나면 난처할 터였다. 진정 그러하였다면 나 역시 기뻐할 일이겠지만 사실이 아니었으니까. 실은 그보다는 생각 하나조차 비루한 나같은 놈과 그녀가 일말이라도 엮이게 되는 것은 내 쪽에서 정말로 거부하고 싶었으니까. 그녀의 기품이 이런 천박함 때문에 훼손되어서는 안 되니까.

 

지나친 결벽이 아닐까. 처녀인 연인과의 첫 하루 밤을 목전에 둔 청년의 이유모를 불안감이라거나, 혹은 단순히 마초적인, 보호해야하고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 그런 남성주의적인 생각들. 그녀를 걱정하는 마음 자체가 어쩌면 여성에 대한 단순한 사회적 함의들 위에 입각한 무분별한 감성의 노출일 따름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마저 순간 떠올랐다. 단아함, 우아함이란 그저 얌전한 여인, 현명하되 조용한 그런 여성에 대한 폭력적 사상의 단말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런 불안함. 그래서는 안 되는데, 그 시간 동안 그녀의 슬픈 표정의 연기를 보면서, 밝게 웃는 얼굴을 보면서 그 기품을 느끼고 나 자신의 비루함을 벗을 수 있던, 그런 그녀의 우아함이 고작 그런 폭력의 위에 선 것일 수는 없는데. 나는 그 기쁨과 행복이 올곧게 순수하게도 맑은 이상으로부터 내게 내려진 구원의 사닥다리라고만 믿었는데.

 

혹시, 행복하냐는 자아의 되물음은 내 안에 내포된 그런 불안함의 발로는 아니었을까. 아아. 그녀의 짧게 친 머리카락이 나의 목덜미를 간질였다. 그녀의 머리는 너무도 무겁게도 나의 굳은 어깨를 눌렀다. 고작해야 불안감이고, 나의 소심함일 따름이야. 확신할 수 없었다. 디스플레이는 이제 그리스 도착까지 남은 2시간 30분을 알려주며 붉게 점멸하였다. 밖은 여전히 영하 20도를 오르내렸다. 나의 마음은 그 이상으로 차갑게 내려앉았다. 그래서 행복하지 않은 것이었을까. 사랑이, 그녀에 대한 경애가 결국 또다시 천한 나 자신의 불쾌할 정도로 얕은 사회학의 감수성에서 비롯되었음을 내면의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녀를 만나 함께하면서도 행복하지 않을 것임을 스스로 깨닫고 있었기에. 그랬다. 나의 비루함은 끊임없이 세련하지 못한 자신에의 성찰에서 비롯되었고, 따라서 나의 사랑에 대한 그런 의혹은 의혹 자체만으로도 나의 천박함을 상징하였다.

 

갑자기 확신과도 같은 강렬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를 만났음에도 행복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녀를 순수히 대할 수 없을 정도로 비루한 나 자신 때문이라는 느낌이. 자는 모습, 살짝 다문 입술마저 그녀는 단아했다. 아무렇게나 단장한 듯한 머리칼의 부드러움에서도 그녀는 향기를 내뿜었다. 우아한 그녀의 향기에, 그러나 나는 다가갈 수 없었다. 그러기엔 나는 너무도 비루했고, 나의 양심은 너무도 강렬히 그녀를 사모했다. 따라서 그녀의 매혹적일 정도로 깊은 내면의 향기는 내게는 결코 닿아서는 안될 처녀지에 해당했다. 나는 바로 옆에서 그녀를 바라보면서도 행복할 수 없었다. 바로 그래서.

 

애시당초, 사람들의 흔한 말이 옳았을런지도 몰랐다. 연예인, 이미지로 사랑하는 것의 부당함을 나무라는 그들의 말이 옳았을 런지도 몰랐다. 이미지로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결국 사랑하는 나 자신에 대한 성찰의 결핍을 의미한다는 것을, 그래서 그 사람들이 나를 나무랐다는 것을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그래. 나는 벌거벗겨졌다. 그녀를 직접 접함으로써. 그녀가 나의 어깨를 기대어 잠에 빠져든 것만으로 나는 비로소 나 자신을 직면하게 된 것이다. 끝간데 모를 정도로 비루한 나를.

 

정확해.

 

잠들지도 않았는데 다시 환청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까, 지옥같이 밝은 봄빛의 그런 목소리가.

 

정확해. 깨달았나보구나. 이제야. 멍청하게도.

 

별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나는 비루했고, 내 마음 한 편에 살던 이 녀석은 최소한 나보다는 덜 비루했으니까. 나는 단아한 그녀에게 올곧게 패배했고 내 마음에게 마저 굴복했다. 디스플레이의 기온은 마침내 영하 25도를 기록했다. 살며시 들춘 창 덮개 뒤로 어두운 구름의 흔적만이 스쳐지나갔다. 날개 한 끝에 켜진 불빛과 나의 눈 사이로 수없이 스쳐가는 물방울의 향연이 어지러이 흔들렸다. 그렇게도 춥고 그리도 어두웠다.

 

어둡다고 느끼는 것도 네 착각이지.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만큼이나.

 

부정할 순 없었다. 스스로의 비루함은 스스로에 대한 끝없는 의심만을 낳는다. 참혹한 날씨, 굶주린 폭풍의 물결 또한 천박한 회피를 꿈꾼 비루함의 발로일 따름일 수도 있으니까. 창 밖에는 구름 속 물방울의 흐름이 다시 차츰 굵어져 가는 것이 보였다. 번개는 치지 않았다. 어두운 그림자가 날개 틈새를 뚫고 재빠르게 지나갔다. 심한 바람이 날개 한 끝을 흔드는 것 같은 착각이 보였다. 비행기는 그러나 흔들리지 않았다. 왠지 발 아래가 붕 뜬 것 같은 몽환적인 느낌은 여전히 그대로였지만 비행기는 굳건했고 그녀도 움직이지 않고 그저 편하게 잠에 빠져있었다.

 

행복이란 건 밖에서 찾을 수 없는 걸 너도 잘 알고 있잖아. 네 스스로 너 자신의 의미를 찾고 행복을 만들어야 하잖아. 비겁한 놈. 넌 그 책임을 네 옆에서 잠든 그녀에게로 이연했어. 책임을 견디지 못하고. 비루하게도.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가리던 피로의 검은 흔적은 이미 거의 사라져있었다. 평온하게도, 사랑스럽게도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계속 자고 있었다. 그 얼마나 피곤했을까. 얼마나 괴롭도록 웃어야만 했을까. 그녀가 겪은 고통을 나는 알 수 없었다. 허나, 그 수많은 팬이라는 이름의 욕망으로부터 떠넘겨진 행복의 책임을 그녀는 어떻게 견뎌내고 있었을까. 행복하지 못한, 행복하길 원하는 그 많은 이들의 욕망을 대하며 그녀는 어떻게 그 힘겨운 짐을 지고도 밝게 웃거나 하염없이 눈물지을 수 있었을까. 나는 알지 못했다.

 

네가 말하는 사랑이란, 너의 경배란 또 다른 욕망에 불과해. 그녀의 이미지를 보고 그녀의 밝음과 그녀의 깊이를 마치 은행의 충실도를 판단하듯 생각하고 너의 행복을 예금한 것에 불과해. 그녀는 그런 너의 예금을 그동안 힘겹게 불려주었고. 그녀 눈 밑의 피곤의 흔적은 바로 네가 만든 거야. 그러면서도 자각하지 못하고, 더 큰 행복을 날로 물려받기만을 원하기나 하고. 넌 그녀를 사랑한 것이 아냐. 그저 그녀의 존재를 갉아먹고 생을 영위하는 더러운 괴물 같은.

 

검게 죽어버린 그녀 자리의 디스플레이 위로 한 남자가 눈물 흘렸다. 불쌍했다. 하지만 그 남자의 눈물이 슬퍼보이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깨달은 기쁨, 자각의 한스러움만이 그 얼굴을 가득 메웠을 따름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의미가 무언지 그는 전혀 알지 못했으니까.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왠지 그럴 것이라고, 나는 그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눈에도 눈물이 흘렀기 때문에, 나는 그 남자가 너무도 불쌍했다. 나 자신이 불쌍하다고 생각하기보다는 그게 편했다. 아직도.

 

정말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지금 네 어깨에 기댄 그녀뿐 아니라 그 누구라도 네가 사랑할 수 있기 위해서는 너 자신을 우선 봐야 하잖아. 네 자신을 직접 대면할 용기조차 내지 못하고 저 순수한 소녀 같은 여인에게로 떠넘기는 그런 불민한 남자가 그 어찌 진정으로 타인을 대면하며 사랑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는 거지. 행복도, 너 자신을 확인하고 그 욕망을 인식해야만 네게 내려올 축복이야. 떠넘겨서도, 단지 기다려서도 행복은 내려지지 않음을 넌 이미 알고 있잖아. 연둣빛 스커트, 개나리색 블라우스에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네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달아나는 너를 잡고 누군가 네 손에 쥐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너 자신을 직시하고 괴물같은 천박함을, 언제까지고 피하기만 하는 더러운 근성을 버리지 않고는 행복할 수 없어. 저주, 속에서 언제까지고 행복할 수 없는 자신을 한탄하기만 할 생각이 아니라면.

 

나는 그 방법을 모른다. 나 자신의 천박함, 이미 인에 박힌 비루함을 버릴 수 있는, 정녕 그녀처럼 깊은 슬픔의 명랑함을 내 것으로 만들 그런 방법을. 내가 정말로 행복해하고,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그런 방법을 나는 모른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고, 누구에게고 사랑받고 싶었다. 비루하지 않게, 나 역시 우아한 기품을 내 것으로 만들 방법을 알고 싶었다. 나는 모른다.

 

굴레를 벗어던지는 방법은 피하는 것만은 아니지. 단지 주어진 끼니에 감사하며 썩어빠진 뼈다귀를 갉아먹는 것만으로 생을 영위하던 부스럼투성이 늙은 개라도, 제 목을 감싸 안은 목줄을 물어뜯을 여력만은 남겨놓는 법이니까. 목줄을 뜯다 앙상한 이빨마저 다 뜯어져 나갈지라도 조금 더 자신있게, 한번만 용기를 내서 잡아당기면 희망이 있을 수도 있겠지. 자유를 택하고 스스로 걸메진 도피의 굴레를 벗어던져. 비루하지 않게, 천박하지 않도록 너 스스로에게 조금은 솔직해져. 너의 욕망을 인정하고 네 비루함의 반대항으로서가 아니라, 그저 한 인간과 인간으로 사랑하려고 노력해. 아프더라도, 힘겹더라도 자유를. 네가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비루함을 방패처럼 걸머진 네가 그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아. 나 스스로 그 얼마나 천박한 나인지를 알고 있기에 그럴 수 없었다. 눈물의 흔적 마저 이제는 말라붙었다. 나의 어깨를 그리도 편안히 베고 있는 그녀에게 한없이 죄스러웠다. 그 미안함마저도 실은 천박함의 발로임을 알기에 나는 몸서리쳐지게 한스러웠다. 흑, 하는 소리를 내며 나는 눈물 흘렸다.

 

어느새 목소리는 다시 들려오지 않았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승무원의 동그랗고 검은 두 눈이 예쁘게 빛났다. 왼손을 들어 나는 눈을 훔쳤다. 그 통에 손을 뗀 창 덮개가 슬며시 내려 닫혔다. 승객님, 불편하신 것이라도 있으십니까? 없지요. 빙긋 웃으며 답했다. 눈물이 말라붙은 얼굴로 미소띄는 얼굴이, 미남도 아닌 내 모습이 얼마나 웃겼을까. 그러나 잘 교육받은 탓인지 승무원은 웃지 않았다. 그보다는 걱정을 한 가득이 담은 얼굴로 되물었다. 승객님? 건의사항이나 개선사항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시면 최선의 노력으로 저희가 해결하겠습니다. 예. 그런데 당신들 문제가 아닌데. 괜찮다는 말로 돌려보내려 했지만, 승무원은 끝내 다시 입을 열었다. 옆 자리에 계신 연인 분께서 무슨 문제라.. 아니에요. 아니라니까. 자칫 화를 낼 뻔했다. 그녀가 깨어나게 할 수는 없으니까, 나는 힘겹게 밀려나오는 화를 다시 안으로 우겨넣었다. 맥주나 한잔 더 주시겠어요? 승객님 지금 네 잔째인데, 괜찮으신가요? 그리 쉽게 취하지 않아요. 괜찮아요. 조금 우울해서 그래요. 걱정할 거 없어요. 당신이.

 

맥주는 여전히 차가웠다. 그리 말하려던 것이 아닌데 너무도 차갑게 말한 것인가, 싶을 정도로. 예. 허나 여전히 그 목소리는 밝았다. 승무원들도 꽤나 힘들겠지. 우울증 환자는 혹여 아닌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지 못하면서도 사고라도 나는 일이 없도록 해야할 테니. 그들의 고충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나란 녀석은 어딜 가나, 이토록이나 민폐일 뿐이었다. 언제나, 어디서나 기품있는 그녀와는 전혀 다르게도. 맥주캔의 목을 잡고 가볍게 한 바퀴 돌렸다. 찰랑, 하며 맥주가 캔 안을 감싸고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따라 희한하게도 맥주에서 달콤한 향기가 났다. 허나 맥주는 텁텁한 평소 맛 그대로 였다. 언제나처럼.

 

그녀는 과연 행복할까.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끔찍한 비극에서, 혹은 한없이 일상적이어서 더더욱 슬픈 칸딘스키의 차가운 추상처럼 냉정하게 분할된 뜨거운 슬픔의 영화 속에서 조용히, 하지만 단호하게 말하고 슬픔 때문에 아름답게 웃고 너무도 비참하리만큼 절망하는 그런 연기들. 그 끝 모를 내면의 깊은 고민과 성찰에서 비롯되었을 기품과 단아함을 한없이 내비치는 그녀의 모습에서 일상화되고 항상 몸에 배어있게 된 그런 우아함을 나는 읽었다. 아니, 읽었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면의 슬픔을 안고서, 그녀는 과연 행복했을까. 그녀의 웃음, 티없이 맑은 표정을 보면서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을 리 없었지만, 허나 실은 그녀가 행복했을지에 나는 관심 두지 않은 것은 아닐까. 영상에 비치는 그 맑은 모습 하나만을 갖고 그녀가 행복하다고 믿은 것은 아닐까.

 

이미지 위에 서서 대상을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더욱 명확해질 필요를 가진 말이기도 하다. 단지 스쳐간 이미지에 따라 대상을 판단하고 그것에 대해 말하는 것은 정녕코 위험하다. 이같은 태도는 작게는 대인관계를 붕괴시킬 수 있고 크게는 억압적인 사회 구조에 스스로를 포섭하여 적극적으로 재생산하는 무비판적 시민을 만드는 토대로 자신을 몸 바쳐 제공하게 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나레이션처럼 머리 속을 스쳐가는 마치 사회학 교과서 같은 말의 홍수가 이번엔 다시 머리를 어지럽혔다.

 

우리는 우리의 인식이 엄연한 한계를 갖고 있고, 결국 대상을 온전히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는 현대의 철학이 우리에게 던져준 숙제이며 우리를 억누르고 있는 일종의 진리다. 헌데 이같은 사실을 토대로 이미지에 입각한 사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변명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 결국 우리는 대상을 완벽히 인식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로지 찰나의, 혹은 실질적인 접촉을 수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형성된 이미지만을 갖고 상대에 대해 판단 내려도 실존에 닿지 못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라고. 이는 결국 우리는 전 국민 모두가 범법하는 것이 사회통계학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모두가 범죄를 저질러야 한다는 의견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차라리 그보다는 우리는 상대에 대해서 명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쉽게 판단하지 말고 계속 이해하려 노력해야한다는 말로 바꿔 쓰는 것이 조금 더 바람직하다. 모른다. 알지 못한다. 그래서 너는 더 알려고 노력해야한다. 알지 못하면서 그걸 정당화하는 건 실로 정당하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단지 책임을 회피하는 것뿐이다. 너는 놓쳤고 인식을 흐렸다. 알지 못하는 것에 불과하다. 아예, 너는 그 어떤 대상에서도 눈 돌려 회피한 것일 따름이다. 행복을 떠맡긴 그녀조차도 넌 진정으로 이해한 것이 아니다. 넌 그저 이미지에 눈 밝히고 믿고 싶은 대로 믿은 것뿐이다. 이렇게 작은 어깨로 이토록이나 피곤해하는 모습 그 어디에 언제나 한결같은 행복과 웃음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냐. 말의 홍수는 교과서 속에서 밖으로 흘러나와 나를 감싸고 괴롭혔다. 너는 심지어 네 멋대로 네 행복에의 책임을 떠넘긴 그녀에게조차 무책임했다, 라고. 그녀를 연모한다 하면서 정말 그녀를 알려 한적 없었다고.

 

알고 있다.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 일상에서, 연기 한 끝한끝에서, 눈길 보내는 행동 하나마저 기품있는 그런 모습은 단순히 이미지가 아니야. 진정 그 자신이 정말 그런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런 매사에서 항상 그렇게 기품을 보일 수는 없어. 그 자신이 그 얼마나 스스로 연마하고, 세련해 낸 것인지, 발걸음 하나에서도 지극한 우아함을 그토록 평범하게 드러내 보이는 그런 사람인데, 그런 일상은 아무나 그리 일상처럼 내보일 수 없는 것인데, 그게 어떻게 이미지가 될 수 있겠어. 단순히 겉모습만을 본 것이 아니야. 어차피 우린 이미지만 볼 수밖에 없고, 마주 앉아 대화하는 친구조차 우린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 없어.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 그의 모습들을 하나하나 알아간다는 것과, 매체에서 드러나는 말투 하나, 목소리 한 소절, 손짓 그 끝에서 드러나는 일상을 읽는다는 것은 하등 다를 것이 없어. 그녀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이었고 나는 알려고 노력했어.

 

난 그저 이미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기품과 우아함을 사랑했고 그런 단아함을 자연스레 내뿜을 수 있는 그녀를 연모했다. 매체를 통해서만 접해서, 그녀를 단 한번도 마주하지 못했지만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 믿었다. 그토록이나 아름다운 그 모든 것을 내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런 모든 것이 다만 내 내면에서 만들어낸 허상일 따름이려나. 혹은 그녀가 진정으로 생각하는 그런 면모와는 전연 무관한 이미지일 따름일까. 복잡한 만큼 생각은 정리되지 않았다.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 것만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으니까, 그녀는 행복할까. 그토록이나 기품있는 그녀는 행복할까.

 

왜 나는 그녀를 사랑할 수 없을까.

결국 다섯 번째 맥주를 나는 들이켰다. 당혹스러웠으니까. 창 밖은 여전히 영하 20도를 오르내렸다. 그리스의 공항까지, 아직 1시간 넘게 긴 시간이 남아있었다. 태양은 보이지 않았다. 현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었다. 디스플레이는 왠지 너무도 멀리 동떨어져 있어 보였다. 가장 황홀하다 믿었던 시간이 가장 끔찍하게 변해 버렸다. 추웠다.

 

흰 눈이 아직 소복이 쌓여있는 둔덕에 나는 홀로 서있었다. 아무도 내 곁에 없었고 그 누구도 나를 바라보는 이 없었다. 나는 아무 것도 걸치지 않았다. 추웠다. 휘날리는 눈발은 없었다. 둔덕 아래 벌판에는 연둣빛 잔디가, 연분홍빛 진달래가 피어올랐지만 내가 있는 둔덕에는 아직 눈이 녹지 않았다. 뒷산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 눈이 녹지 않는다. 추웠다. 나는 눈을 치우지 않았다. 나풀거리는 고운 개나리 꽃잎의 결을 그리며 나는 눈을 뭉쳐 던졌다. 개나리 가지가 하나, 꺾어졌다. 나는 그저 개나리가 좋았을 뿐인데. 개나리 꽃잎에 그저 닿고 싶었을 뿐인데.

 

봄날은 오지 않는다. 내가 원하지 않는다면. 봄은 왔으되 봄이 아니었다. 내가 본 봄은 그저 다른 봄일 뿐이었다. 나의 봄은 오지 않았다. 봄이 오지 않고선 나는 사랑할 수 없다. 사랑해서는 안된다. 비루한 자신을 뜯어내기 전에는 사랑해서는 안된다. 겨울을 가셔내지 않고서 사랑할 수는 없다.

 

여섯 번째 맥주는 천천히 마셨다. 희한하게도 알싸한 향이 나는 맥주를 혀끝으로, 코끝으로 깊이 들이켰다. 텁텁한 맥주가 혀를 감고 메말라 버린 목을 적셨다. 그녀는 잠에서 깨지 않았다. 기내엔 봄을 느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녀의 연둣빛 치마, 개나리빛 블라우스만이 사랑스런 봄을 느끼게 해줬다. 닿을 수 없게도. 도리어 차가운 회색과 흰 빛의 시트와 기구들의 차가움 뿐.

 

어깨의 저림은 없었다. 그녀는 그토록 가벼웠다. 아름다운 그녀는 그토록 자유로웠다. 내가 상상할 따름이던 이미지, 천박함을 버리고 싶어하던 욕망의 대립항이던 그녀는 그 존재 자체로 정녕코 사랑스러웠다. 닿을 수 없으리만큼 사랑스러웠다. 그녀가 나의 어깨를 베고 있다는 것은. 그럼에도 행복할 수 없었다. 나는. 꿈에도 그리던 그런 상황 속에서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잘못된 것은 꿈이 아니라 단지 나였다. 행복을 행복으로 느낄 수 없는 그런 비참한 나.

 

조금쯤 자유로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 모든 생각들, 그 모든 고민의 고통에서 나는 조금 더 자유로워야 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겨울의 언덕 위에서 내리막을 뒹굴어 떨어지는 것은 봄을 향하는 고통의 자유일 터이다. 비행기 밖의 온도는 영하 어느새 높아져 15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차가운 극한의 공기가 하늘을 가득 메울 때라도 여전히 땅에서는 진달래가 필 것이고, 보드라운 개나리의 꽃잎이 스스럼없이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자만심 없이도. 디스플레이가 다시 점멸하며 한국은 이제 새벽 다섯시가 되었음을 말했다. 자유로워져야 한다. 욕망에서도, 금기에서도. 스스로의 비루함을 벗어던지지 않고서는 나는 행복할 수 없음을 안다.

 

흑해 상공으로 비행기가 날고 있다고 기장이 방송으로 말했다. 곧 그리스에 다다를 테고, 그녀가 깨어날지도 모른다. 그녀는 아마도 영영, 그녀로 인해 그토록 고통스러워한 한 남자가 있었음을 알지 못할지도 모른다. 나는 안다. 나는 내가 그녀를 그토록이나 사랑함을 안다.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함을 안다. 그녀의 단아함을 나는 사랑할 수 있을까. 깊은 그 내면을 내가 깨달을 수 있을까. 모르지만,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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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봐도 7일 정도면 2차 발표가 나올 듯 합니다. 정말 그 길던 채점기간이 거의 다 끝나가네요. 발표 생각만 하면 먹은 게 얹히고 마음도 싱숭생숭하고 뭔가 서늘한게 가슴을 쓸고 내려가는 것 같고, 앞으로 올 날들에 대한 계획이라거나 내년에 다시 수험생활 치를 생각에 골머리가 아프기도 하고, 올해 썼던 답안들이나 미친 짓;; 들이 너무 한스럽기도 하고 복잡한 생각이 뒤엉켜서 생각하는 자체가 고통인 것도 같습니다. 아마 다른 수험생들도 비슷하겠지, 생각하다가도 막상 주변에 알고 지내는 다른 수험생들은 다들 똑똑하고 성실하고, 나와서 대화했을 때 듣기로는 답안들도 잘 썼었고... 나만 떨어지면 정말 얼마나 슬플까, 차라리 다 같이 떨어졌으면! 하는 악의적인 생각을 하다가도 차라리 그것보다는 그 사람들이 다 붙는게 인생 전체로는 훨씬 좋은 거야, 라는 이기적인 생각도 하고. 이래저래 정말 온갖 생각이 다 나는 시절인 것 같아요. 막상 보면 주변 다른 수험생들도 서로 저 사람은 붙었겠고 난 안됐겠지, 이런 생각을 서로 간에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자기 답안에 확신을 가진 사람은 하나도 없겠지만 그렇다고 내년 준비를 벌써 할 수 있는 사람도 없는 것 같네요.

혹시나 수험을 접을 거면 올해가 막차라는 이야기도 많이 듣다가, 또 주변에서 직장생활하는 사람이나 그러다 때려친 사람들과 얘기하면 젊을 때 1, 2년 늦는 것이나 혹은 수험에 돈 천 정도 쓰는 건 그렇게 큰 것이 아니라면서 하고 싶고 소신이 있고 언젠가 될 수 있다면 계속 하라는 말도 듣고 그럽니다. 늦깍이로 군대를 갔다가 제대했을 때 이미 동기 상당수가 취업을 하고 있었고, 재작년에 전역해서 수험을 처음 시작해 이제 27개월 됐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수험 기간이 그렇게 길지도 않으니, 게다가 올해 2차가 행시 2차는 처음 본 것이니(작년에 입시만 2차를 봤지요) 아직 난 더 해볼 여지가 있어,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하지만 남들도 2년 정도 했으면 슬슬 붙는다던데 올해 과락사태나고 이러면 정말 난 가망이 없는 것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고. 언제는 올해 그렇게 공부를 했는데 대체 뭘 더 해야할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막상 내가 모르는게 산더미처럼 많다는 절망감이 들기도 하고요. 나같은 위험기피적 성향이 극단적이게 강한사람이 수험이라니, 미친 것 아닐까 싶다가도 신문이나 사람들 말만 들으면 행시 지망이 안정 지향의 극단으로 여겨지는 것 같아서 웃음도 나고 그러네요. 난 지금 이렇게 불안한데 말이죠.;

이제까지는 사회며 정치며 경제에 관심이 많아서 항상 뉴스도 챙겨보고 논평도 항상 붙여두려고 노력하고, 사회 현상이나 혹은 한국사회의 발전방향 같은 거시담론에 공부도 하고 고민도 많았는데 이제는 그런 거 다 귀찮고 내 깜냥에 무슨.. 공부나 해야지 하는 생각도 들고 하네요. 사실 평생으로 적은 돈이라고는 들어도 일단 당장 매달 수십만원 돈이 학원비로 빠져나가고 하는데 지금 공부 혼자 자습이라도 해야 조금이라도 아끼는 것 아닐까 싶고, 내가 매일 하고 싶은 것만 하고 놀면서 자면서 공부 안하는게 참 비합리적인 행동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올해 행정학이나 재정학 답안 생각하면서 그런 사례라도 좀 더 모으고 암기라도 해두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애초에 그런 논평같은 거 달고 하면서 이름팔리는 것이 굉장히 부담스럽기도 하고요. 알려지는 게 싫지요 사실;

혹시 올해 붙는다면 완전 늦깎이긴 하지만 그래도 올해 졸업하는 처지니, 곧바로 들어갈텐데 그렇게 보면 평생에 이런 휴가는 지금이 마지막 아닐까, 싶어서 여름 내내 정말 하고 싶던 것 다하고 살아보기도 했어요. 자전거로 전국 돌기라거나 야구장 쫓아다니기 같은 소박한 것밖에 안했다는 것이 도리어 서글프기도 하고. 어째 하고 싶은 게 딱히 없었구나 싶다가도 그거면 과하지 생각이기도 하고. 뭐든지 일단 다 내년 수험으로 생각이 연결되어서 맘 편하게 놀기도 그렇고 공부는 막상 안되고 하는 우유부단의 극치인 생활이구나 싶지요. 아니 제 성격자체가 우유부단 덩어리인 것도 같고요. 왜 이리 난 무능할까, 효율적으로 공부하지 못했을까 하는 자괴심도 좀 있고 -_-;;

올해 썼던 답안지를 객관적으로 되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머저리같이 공부했구나 중요한 건 다 빼고 혼자 엉뚱한 걸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랬구나, 아 아무래도 한 세과목(경제학, 행정법, 국제경제학)은 과락나지 않을까 싶다가도 작년처럼 아무 것도 모르던 시절에도 과락이 안났는데 설마 올해 과락이 날까, 어쩌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러면서도 합격을 바라는 건 과욕이라는 생각도 들고 한편으로는 그걸 다시 답안을 쓴다고 해도 정말 뭘 수정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게 잘 썼다는 자신감은 아니고 ㅠ 내 한계를 느낀 것 같은 생각이라 참 생각하는 자체가 힘드네요. 막상 7일 뒤부터 다시 수험 시작하면 우선 그것부터 다시 뜯어보고 스스로 공격해봐야겠지요?

주변 사람들하고 대화하고 연락하면 다들 될거야, 네가 안되면 누가 되겠어 같은 덕담을 해주긴 하지요. 그런데 다시 생각하면 그런 말 하나 못듣는 사람이 어딨겠어요. 자기 지인이나 친척애 에게 그렇게 말 안해주면 그게 싸우자는 거지; 사실 수험생의 7, 8할은 그런 얘기 듣고 살텐데 그건 뭐 위로는 커녕 위안도 안되는 것 같다, 결국 기댈건 자기 실력뿐이야, 라는 자각이 매번 그런 얘기를 들을 때 마다 들곤 하지요. 그냥 관심을 안가져서 저 사람들이 내가 행시 본 걸 몰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발표 난 뒤에 쪽팔리지도 않을텐데. 혹시 합격하면 왠지 더 뿌듯할 거 같은데 하는 소심한 생각이 가득하지요. 군대 2년에 수험 2년 치르면서 아는 사람들의 폭이 굉장히 좁아지긴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는 사람은 많은 것 같고. 수험생들이 수험생끼리 알고지내고, 수험생끼리 사귀고 하는 이유를 알 것 같고요. 결국 동병상련하는 사람 말고 편하게 배려해주는 사람이 어디있겠어요. 하지만 막상 수험생끼리는 2차 발표를 기다리면서 되려 연락을 피하게 되고. 이건 제가 굉장히 발표를 의식하는데다가, 의식하는 주제는 항상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못된 성격이라는 점에 좀 더 기인하긴 하지요. 결과적으로 이런 생활이 더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대인기피가 심해질 것 같아요.

그런 고로 그냥 차라리 발표가 안났으면, 발표가 다가오지 않았으면 싶기도 해요.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랬으면 좋겠어요. 정말 이런 중압감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은데 말이죠. 대입할 때 실패한 발표를 보면서 가슴이 짜게 식던 그 느낌을 (재수했지요; ) 매일 꿈꾸면서 다시 느끼고 있고, 꿈자리나 잠자리가 편하던 날이 별로 없었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합격했다는 통보를 받고 나면 지금 느끼는 중압감을 1년치 더 가중해서 느껴야할테니, 정말 죽을 거 같을 듯 하네요. 그래서 발표를 기다리지 않는 동시에 기다리지 않지도 못하겠는, 기괴한 마음 상태네요. 아마 다른 수험생 분들도 같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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牧孑然孤立 一榻之外 皆欺我者也 明四目 達四聰 不唯帝王 然也 항통之法 使民重足側目 決不可行 鉤鉅之問 亦近譎詐 君子所不爲也. 每孟月朔日 下帖于鄕校 以問疾苦 使各指陳利害. 子弟親賓 有立心瑞潔 兼能識務者 宜令微察民間. 首吏權重 壅蔽弗達 別岐廉問 不可己也. 凡細過小疵 宜含雖藏疾 察察非明也 往往發奸 其機如神 民斯畏之矣. 左右近習之言 不可信聽 雖若閑話 皆有私意. 微行不足以察物 徒以損其體貌 不可爲也. 唯漢刺史六條之問 最爲牧民之良法也.

 목민관은 고립되어 있으며 모두 나를 속이려는 자들뿐이다. 사방을 보는 눈을 밝게 하고 사방을 듣는 귀를 통달하게 하는 것은 오직 제왕만이 할 바가 아니다. 투서를 이용하는 것은 백성들로 하여금 걸음을 무겁게 하고 서로 눈치를 살피게 하는 것이니 결코 행해서는 안 된다. 갈고리로 남의 마음속을 긁는 것 같은 질문은 또한 간휼한 속임수에 가까운 것이니 군자로서 할 짓이 아니다.
  해마다 정월 초하루면 향교에 통첩을 보내어 힘든바를 묻고 각각 이해를 지적하여 진술토록 하라.
  자제나 친빈 중에서 마음가짐이 단결하고 겸하여 일을 할 줄 아는 자가 있다면 마땅히 민간의 일을 미행하여 살피도록 하라.
 수리의 권한이 무거워서 백성의 일이 가리워 지고 서로 트이지 않는다면 따로 염탐하여 알아보는 일을 그만두어서는 안 된다.
 무릇 변변치 않은 과실이나 조그만 흠은 마땅히 덮어둘 것이니 샅샅이 밝혀내는 것은 현명치 못하다. 가끔씩 농간을 적발해 내서 그 기틀이 귀신과 같다면 백성들이 두려워할 것이다. 좌우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말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비록 한가롭게 하는 말 같지만 모두 사사로운 뜻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미행이란 물정을 살피는 데 흡족치 못한 것이며 한갓 체모만을 손상할 뿐이니 할 것이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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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나라 사람들은 모두 아들을 극단적으로 선호해서 아들을 가질 때까지 계속해서 아이를 낳습니다. 아들을 가지면 아이 낳기를 중단하고, 딸을 낳으면 아들을 가질 때까지 계속 아이를 낳습니다. 이 나라에서 아들과 딸의 비율은 어떻게 될까요?

 답 : 첫째 아이가 남자일 확률은 1/2이다.
       둘째 아이를 낳는 경우는 일단 첫째가 딸인 경우에 한정되고, 다시 남자일 확률은 따라서 1/4이다.
       셋째 아이를 낳으려면 첫째 둘째가 모두 딸이어야 하고, 다시 남자일 확률은 따라서 1/8이다.
       이렇게 n번째 아이가 남자일 확률은 1/2^n 이므로 전체적인 남자 여자의 비율은 단순한 등비급수의 문제가 되므로 1/2이다.
       다만 위 논의는 다음과 같은 암묵적 가정이 내포되어 있어 한계가 있다.
     (1) 한없이 아이를 낳을 수 있다.  -> 실제로는 5~15 정도가 평균적인 여성 1인에게 한계에 가까운 수치이다.
     (2) 출산편향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아들과 딸은 1:1로 태어난다.  -> 실제로는 105:100 이다.
     (3) 출산하는 부부들 사이에서의 편향이 존재하지 않는다. -> 실제로는 딸이나 아들을 많이 낳는 혈통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아들을 많이 낳는 혈통의 자손이 결혼시장에서 더 우대될 것이다. 
     (4) 결혼시장에서의 완전고용이 나타난다. -> 불완전고용이 나타나는 경우 딸을 많이 낳는 혈통은 도태될 가능성이 있다.

       이같은 현실적인 문제들을 고려하면 실제로는 1/2보다는 아들의 비율이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2. 맨홀 뚜껑은 왜 둥글까요?
  답 : 맨홀 뚜껑의 역할은 하수도에의 연결통로에 불구하고 도로 기능이 정상적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연결통로로 사용되거나 하수도가 넘칠 경우 이에 적합한 용도로 꾸며질 필요가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뚜껑이 각진 형태일 경우 대각선 길이가 길어서 뚜껑이 하수도로 빠질 우려가 있다. 또한 각진 형태일 경우 윗면이 도로로 사용될 때 특정 지점들에 힘이 집중되어 휘거나 부서질 우려가 상대적으로 크다.



3. 시계의 시침과 분침은 하루에 몇 번이나 만날까요?
  답 :  22번. 매 시간마다 1회씩 마주치고, 11시와 12시에 마주치는 경우가 겹친다. 


 
4. 당신은 해적선 선장입니다. 황금을 어떻게 배분할지에 대한 당신의 안을 놓고 100명의 선원이 투표를 합니다. 과반의 지지를 못 얻으면 당신은 죽어요. 죽지 않으면서 최대한 많은 황금을 차지할 수 있는 안은 무엇인가요?
  답 : 문제에 흠결이 많아서 가정이 몇가지 필요하다. 첫째로 황금은 어쨌든 최종적으로 배분될 필요가 있다. 둘째로 선장이 죽으면 부선장, 부선장도 과반 지지 못 얻으면 죽고 갑판장, 하는 식으로 서열 백위까지가 순차적으로 배분한다고 한다. 셋째로 가부동수는 부결이다. 넷째로 논의의 편의를 위해 황금이 예컨대 1천단위가 있다고 본다. 다섯째로 해적선원들은 합리적이다. 
 부분게임완전내쉬균형 개념을 이용하여 부분게임에서의 내쉬균형을 먼저 분석한다. 모든 선원들이 다 죽고 99, 100번째 선원만 남은 경우를 가정하자. 이 경우 100번째 선원은 99번째 선원이 무슨 제안을 하든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서 99번째 선원을 죽이고 자신이 1천단위 황금을 모두 가질 수 있다. 98번째 선원까지 셋이 살아있던 경우 이 사실을 예측하므로 98번째 선원은 99번째 선원에게 황금 1을 주고, 100번째 선원에게 0을 주는 제안을 함으로서 과반수를 득표할 수 있다. 97번째 선원도 살아있던 (총 네명 남았던 경우) 경우 그도 이런 결과를 예측할 수 있으므로 98번째에게 0을 주고 99번째에게 2, 100번째에게 1을 주는 결정으로 과반수를 득표할 수 있다. 이것도 예측가능하므로 96번째가 왕고였던 상황에서 96번째는 이번엔 98번째에게 1, 99번째에게 0, 100번째에게 2를 줌으로써 3표를 얻어 과반수를 획득할 수 있다. (굳이 99번째에게 동의 얻기 위해서는 3단위를 줘야하는데 3표만 있으면 되므로 그럴 필요가 없다) 95번째 선원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97번째에게 1 98번째에게 2 99번째에게 1 100번째에게 0을 주어 4표를 얻을 수 있다. 다시 94번째 선원이 살아있던 경우에는 이번엔 96번째에게 1, 97번째에게 2, 100번째에게 1을 주어 4표를 얻을 수 있다.
 지금까지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혼자 남은 경우 1천단위 모두 갖고, 98번째가 왕고였을 때 자신은 999단위를 갖는다. 97번째가 왕고인 경우 997단위를 갖는다. 96번째가 왕고인 경우 자신은 997단위를 갖는다. 95번째가 왕고인 경우 996단위를 갖는다. 94번째가 왕고면 자신이 996단위를 얻는다. 즉, 얻고자 하는 표수만큼의 단위를 부하들에게 나눠주고 나머지를 모두 자신이 얻을 수 있다. 즉 선장의 경우 요구되는 표수가 51표이므로 51단위를 제외한 모든 황금을 자신이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5. 같은 크기의 공이 8개 있는데, 그 중 7개는 무게가 같고 한 개는 더 무거워요. 저울을 두 번만 사용해서 무거운 공을 찾아내세요.
  답 :
   (1) 양팔저울을 가정한다. 공 6개를 임의로 골라 3개씩 양팔에 올려놓는다. 기울지 않는 경우 남은 두개를 저울로 재어서 무거운 공을 찾는다. 한쪽으로 기우는 경우 다시 임의로 공 2개를 그중 골라 비교하여 확인한다.
   (2) 무게를 재는 저울을 가정한다. 들어서 출제자를 때린다.



6. 특수 제조한 계란이 2개 있는데, 100층 높이 빌딩의 몇 층에서 떨어뜨려야 깨지는지 알아내려 합니다. 단 2개의 계란만 사용해서 몇 층에서 깨지는지 확실하게 알아내려면 계란을 최소 몇 번 떨어뜨려 봐야 할까요?
  답 : 계란을 최초에 3층에서 떨어뜨렸는데 깨졌다고 하자. 이 경우 남은 달걀 하나로는 2층이 최초층인지 1층인지, 3층인지를 알아낼 수 없다. (경우의 수가 세가지인데 대응할 대안은 한가지이므로) 따라서 2층에서 최초에 떨어뜨려볼 필요가 있다. 이 솔루션으로는 총 50회를 떨어뜨려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보다 적은 대안이 있을 것 같은데 모르겠다.
Posted by Chlo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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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 쓰시는 분들 비밀댓글로 알려주시면 친추할께요

 
 이거 재밌네요
 ..........
Posted by Chlo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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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에 망년회가 있었다. 10년 정도 알아온 아이들인데 이번에 그 중 하나가 무슨 쿠폰 같은 걸로 염가에 룸을 잡을 수 있다고 해서 잡은 것. 11명 정도가 왔고 다들 81~85년생이고, 성비는 대략 남 6 여 5 정도. 거기서 룸 값에 포함된 양주와 맥주를 주고 그걸로 먹었는데 그 과정에서 사단이 났다. 양주 맛이 양주 맛이 아니었던 것. 

 양주는 임페리얼 12년산이었다. 나나 삵이나 하루 이틀 양주 마셔온 것도 아닌 터라 임페리얼 맛도 대략은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기억이 바뀌었다는 문제 수준이 아닌 정도의 맛 차이였다. 나는 그 맛을 떫은 뒷맛이 심한 물(경수?)로 미즈와리 하다가 비율을 실패해서 망친 위스키 정도로 비유했는데, 삵은 캡틴큐가 대량 섞인 맛이라고 훌륭하게 묘사해냈다. 그 묘사 듣자마자 나도 공감했고. 임페리얼 맛이 이렇게 열악한 건 절대 아니지 싶은데. 내가 국산 위스키에 인상이 처음에 안좋던 건 스카치블루를 그런 가짜를 먹었다가, 였었고 군대에서(....) 제대로된 위스키를 구해(....) 먹어본 이후로는 그런 인상을 유지하고 있지 않다. 

 문제는 맥주도였던 것. 맥주는 Max였는데 맛이 희한하게 엷었다. 개인적으로 국내 맥주들은 블라인드 테스트까지(....) 해가면서 선호를 구분하고서 맥스를 고른 거라서 대충은 맛을 알긴 하는데 이렇게 엷다니, 싶었던 것. 보니까 병에 QR 코드나 바코드가 없다? (.....) 이건 뭐.... 그래서,

 가짜 술은 조세행정을 교란한다고 이공칠은 이공칠은 국세청에 신고해본다거나
 ...........
 
Posted by Chlo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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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카테고리 없음 2010. 11. 27. 10:11
1. 고시

 우리 깃수가 마지막 고시합격자인 듯 데헷 ☆
 사실 공채건 고시건 아무 상관없지만 그래도 기분이라는 게.......



2. 술
 벌써 사흘 연속으로 술먹다보니 해가 떴네요 (........) 오늘도 그래야할 거 같은데 orz.... 아 진짜 일요일은 좀 쉬어야지;;;



3. Axis & Allies : Pacific 1940
 아직 우리가 초보 플레이어여서 그런지 몰라도 패턴이 원패턴입니다. 미국은 기모으고, 일본은 중국을 치고, 영국은 프랑스땅을 먹고. 이 게임이 미국 영국 중국 호주가 한 편이고 일본이 혼자 한 편이어서 전쟁하는 보드게임인데, 어쨌든 아직은 일본은 항상 중국을 먼저 치는. 다만 그래도 점점 플레이가 세세해져서 일본이 초반에 수송선 타고 파푸아뉴기니에 병력 내린다거나 미드웨이 바로 남방에(캐롤린 섬인듯? 이런 섬도 있었슴미까?; ) 해군기지 짓고서 연합함대를 배치해서 호주랑 진주만을 같이 견제하고서 본토에는 전투기랑 탱크를 깔아둔다거나 하는 플레이가 대체로 먹히고 있는 듯요. 초반에 진주만 털고 미국 서부 해안 공략하면서 만주 인근이랑 광주 인근에서 수비한다는 전략도 있다는데 용자라고 생각함;;;; 아직 우리는 도저히 그런 플레이는 불가능해서요. -_-;;; 미국을 어떻게 치지;
Posted by Chlo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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