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무제.

카테고리 없음 2010. 12. 27. 03:52
  근자에 새로 쓴 소설은 도저히 공개할 수 없는 사정에 의해 삭제했고, 내용이나 방향은 다르지만 취지는 유사한 이전에 썼던 소설로 대체함. 아래 소설의 평은 ::: 저자가 너무 전면에 드러나서 말하고 있다. 이것은 소설의 흐름을 해치고 내용과 독자 사이의 간격을 방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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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서 말갛게 피어오른 분홍빛 아지랑이를 나는 손을 흔들어 헤집어냈다. 꿈일 것이다. 그저 환상일 것이다. 내가 이런 홍복을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단지 백일몽에 빠져 나무 그루터기를 베고 잠든 불운한 청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런 행복의 포만감이 나를 찾아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 명백히 무언가 실수가 있었을 것이다. 이럴 수는 없을 것이다. 여우라도 나타나 나를 홀리는 것은 아닐까. 이건 정녕코, 너무도 환상적이었다. 내 평생 단 한번이라도 꿈꿀 수 없었을 정도로. 봄날의 따뜻한 기운에 환상을 보는 것이라고 믿기엔 공기는 너무 차가웠고 미등은 너무 어두웠다. 연둣빛 스커트, 개나리빛 블라우스의 향연이 어지러이 눈을 괴롭혔다. 아니, 그 찬연한 파스텔 톤의 아름다운 옷보다 그 아래 그녀가 더더욱 나의 가슴을 크게 울려냈다. 믿기가 힘들 정도로 어지럽게.

 

지나치게 진부하게도, 결국 나는 피할 수 없는 욕망에 눌려 두 눈을 세게 비볐다. 내친김에, 두 뺨도 세게 꼬집어 비틀어보았지만 고통은 너무 분명했고 환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꿈이 아니던가. 꿈일 수는 없는 것일까. 그래. 진짜일지도 몰라. 정말 이 모든 게 내 머리 속 꿈이 아니고 내가 잠든 것이 아니라면 이 어쩌면 나는. 말을 잇기 힘들었다. 머리 속이 그저 희게 비어버린 것처럼. 아니, 차라리 다홍빛으로 붉게 물들어 버린 것처럼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벌판에 피어나는 아지랑이처럼 그저 사라질 꿈은 아닐까. 그저 설령 꿈이면, 아니 혹시 이게 환상이라면. 아니, 아니, 아니, 그럴 수는 없었다. 인생에 한번 찾아올지 모를 그런 행운을 환상처럼 흘려보낼 수는 없다. 차라리, 차라리 한번 확인이라도 해보자. 정말, 정말 그녀인가? 아니다. 그러나 차마 이마 위로 뻗은 머리카락 한 올마저 나는 건드릴 수 없었다. 설혹 환상 일까봐, 아지랑이 피어나는 가을바람 위로 떠오른 그저 환상 일까봐, 나는 건드릴 수 없었다. 사라져버리면, 사라져버리면.

 

순간 정녕코 견디지 못할 강렬한 욕망에 나는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릿결을 살짝 어루만졌다. 주의 깊게, 건드린 덕에 그녀는 깨지 않았다. 나는 범죄를 저지른 듯한 가책에 할 말마저 잊어 버렸다. 그녀의 촉감이 너무도 생생했다. 그녀는 살아있고 내 앞에서 생생히 숨쉬고 있었으니까. 정녕코 그저 살아있는 존재였으니까. 차라리 기분이 가라앉았다. 확실했다. 그녀는 확실했다. 내 옆에서 그녀가 앉아 있는 것이 확실했다. 손을 내리고 나는 최대한 잠든 그녀가 불편하지 않을 수 있게 조심해서 자세를 고쳤다. 조용히, 몸이 약간 위로 들리는 느낌이 그때 들었다. 자리에 앉아마자 덮개를 들어 두었던 창 밖을 내다보았다. 날씨가 좋지는 않았다. 천장에 붙은 디스플레이는 출발한지 2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는 고작 러시아 상공에 머물러 있다고 나지막이 말했다. 대륙의 기상답게, 막 찾아온 봄은 겨울의 난동 같은 폭풍 속에 실종되어 있었다. 검푸른 구름과 창연한 벼락의 향연이 창 밖을 혼란스럽게 수놓고 있었으니까. 아니, 어쩌면 이것이 대륙의 봄일런지도 몰랐다. 한국과는 다른 그런 대륙의 봄. 한국 시간 밤 12시 44분 21초. 시속 924km. 발밑이 조금 붕 뜬 느낌. 무게를 느낄 수 없으리만큼 가벼운, 내 어깨 위에 얹힌 저 아름다운 얼굴만큼이나 비행기 승객석은 환상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여행의 시작이 이토록 환상적일 줄이야. 비일상의 환각을 그리며 떠난 것이긴 했지만 이토록 아름다운 시작일 줄이야. 차라리 그리도 기대했던 여행 자체가 퇴색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스러울 만큼이나 신비로웠다. 어깨로 느껴지는, 지나치리만큼 보드라운 두 뺨의 무게는 너무도 가벼웠다. 붉은 향기가 감도는 그 뺨 위로 흐르는 머리칼을 만지기 전엔 그저 꿈이라고 믿을 만큼이나.

 

그 확인만으로도 어떤 말도 할 수 없으리만큼 가슴이 북받쳐 올랐다. 슬픈 것인지, 도리어 기쁜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행복한가? 지금 나는 행복한가? 분명코 원해오던 상황이고, 더 이상 기쁠 수 없을 정도로 황홀한 지금 이 순간에 행복하냐고 되묻고나 있다니, 대체 나는 정신이 제대로 박힌 놈인가. 실소만 새어나왔다. 그저 말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볼을 조심스레 내려다보았다. 그녀가 깨지 않도록 나는 조심하여 그녀를 바라보았다. 박수라도 치고 싶었지만, 어깨를 움직일 수 없었으니 그럴 수는 없었다. 피식. 나지막하게, 하지만 소리 내어 나는 처음으로 웃어냈다. 꿈에도 그리던 그런 순간이 이뤄지고 보니, 도리어 행복한지 알 수 없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이를테면, 도리어 저주라도 받은 것인가.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그녀가 내 옆에 있다는 것 뿐 이었다. 그것도 지금 내 어깨에 기대어서. 환각에 몸을 맡기어, 비일상적인 꿈을 꾸면서 나를 잊고자 했던 여행의 목적은 출발만으로 충족된 느낌이었다. 가장 아름다운 극한으로서.

 

희디 흰 벼락이 꽤나 가까이에서 내리꽂혔다. 어두운 기내에 창백한 빛이 새어들었다. 깨지 않았으려나.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리어 어깨를 내려다보았다. 깨지 않았다. 왼손으로 창 덮개를 내리 덮었다. 히터는 너무 덥지 않았다. 왠지 너무도 멀리 떨어져 아스라이 흔들리는 것 같은 오렌지색 미등 사이로 승무원들이 다니며 자는 이들의 가슴 위로 모포를 덮어주는 모습이 보였다. 이쪽으로 오는 이는 아직 없었다. 조용히 손을 들어 그녀에게 모포를 하나 덮어주고 나는 맥주를 한 캔 받았다. 이상하게 알싸한 향이 났다. 달콤한 그 향내는 맥주에서 난 것일까? 알콜의 맛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희한하게 한 잔 만으로 붉게 술기운이 달아올랐다. 기분이 좋았다. 따스한 오른편 어깨만큼 온몸이 포근했다. 그녀는 나의 어깨와 시트가 정녕코 편한 듯, 깊이 잠들어 깨지 않았다.

 

좁은 비행기의 좌석에서 머리를 어깨에 기대이려면 꽤나 목을 길게 빼야 할 텐데, 이 사람은 지금 외간 남자, 그것도 처음 보는 이의 어깨를 자연스레 무단 점유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고, 연예인 직업특성상 꽤나 신변관리에는 철저할 텐데도 그러는 걸 보면 꽤나 피곤한 모양인데, 목을 너무 길게 늘이고 있는 것이라면 도리어 깨어났을 때 더 피곤한 상황에 처해버릴지도 모르니까. 조심스레, 1분에 1센티미터라는 소심한 생각으로 조금씩 그녀 쪽으로 어깨를 밀었다. 차츰, 밀려나는 그녀의 무게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을 생각하면 소심한 걱정이 그래도 맞아떨어진 모양이었다. 잠에서 깬 그녀가 근육통을 호소하느니, 내 쪽이 무례한 소리를 듣는 것이 낫겠지. 그런 생각에, 조금 더 나는 몸을 오른쪽으로 밀었다. 아마 그녀는 꽤 편한 자세가 된 모양인지, 가볍게 한숨쉬더니 다시 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행복했다.

 

왜 그녀는 이곳에 있는 것일까. 꽤나 이르게 나는 탑승한 편이었고 자리에 앉자마자 곧 곯아떨어졌으니 그 뒤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당연히 기억해낼 수 있을 리 없었다. 헌데 마땅히 있어야할 매니저도 보이질 않고, 그녀가 왜 비즈니스나 퍼스트 클래스가 아닌 이코노미 클래스에 앉아 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남들에겐 비밀로 해두고 짧은 휴가라도 떠나는 것일까? 단출한 차림에 단지 눌러쓴 모자와 그녀의 작은 얼굴을 반도 넘게 가려버린 선글라스 하나만 믿고 떠날 수 있을까. 아무리 그래도 그토록 얼굴이 알려진 연예인이. 제대로 몰라서 그리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긴 하지만, 보통 연예인이 혼자 돌아다니면 아무래도 위험하거나 하지 않을까? 곰곰이 생각을 곱씹어 보았다. 아무래도 사람들도 몰려들 테고, 그런데서 실수라도 한다면 이미지에도 좋을 것 같지는 않은데. 흔히 말하듯, 이미지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려나.

 

으음, 하고 가벼운 신음성이 들렸다. 희한하게도 기대어 자는 것이 편한 모양인지, 그녀는 이젠 완연히 미소까지 띄면서 조금 더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하기사, 중요한 건 그런 것이 아니었다. 얼마 전 촬영을 마치고, 또 다음 촬영의 계획까지 잡혀있는 이가 홀로 비행기를 탄 거라면 그녀 스스로에게 퍽이나 중요한 일이 있을 터였고, 그런 중요한 일을 앞두고도 처음 보는 사이에서 연인 같은 포즈를 자연스레 취할 정도로 피곤한 상태라면 퍽이나 강행군의 일정을 수행하고 있을 터인데. 눈가에 어린 검은 기운이 안쓰러웠다. 너무나도. 빛을 발하지만 자신은 아무 것도 받지 못하고 결국 이리도 피곤에 지치는, 그런 것일 뿐이려나. 따뜻한 연둣빛 긴 스커트 자락을 흐르는 주름을 따라 눈길을 돌리다 너무도 가녀린 그녀의 손을 바라보았다. 애욕에서가 아니라, 같은 인간이기에 정녕코 두 손으로 부여잡고 눈물 흘리고 싶을 정도로 메마른 그 손은 시릴 만큼 창백했다. 연둣빛, 봄의 향연 위에 가로 얹히어 이유 없이 슬펐다. 저리도 여윈 손이라니. 저리도 창백한 손이라니. 따스한 봄볕을 맞으며 쉬지도 못하고 그리도 항상 웃어야만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었을까. 이 사람은 그러면서 행복했을까. 행복했다면 그는 왜 지금 이리도 피곤하게 비행기를 타고 있는 것일까.

 

어쩐지 매체를 통해 그녀를 접할 때 상상하던 것만큼의 애정은 솟아오르지 않았다. 만나는 것만으로, 한번이라도 접해보는 것만으로 환희의 희열에 차오를 것이라는 생각은, 그때에도 이미 알고 있었듯 당연하게도 부정되었다. 그녀도 인간이었고 피곤에 지쳐 쓰러져 잠이 든 사랑스런 고양이일 따름이었다. 영상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창백하고 마른, 그래서 동정심이 이는 그런 가엾은 소녀. 환상적일 정도로, 나는 필생의 소원을 우연히도 이뤄냈지만 그러나 나는 내가 행복한지 알 수 없었다. 복 받쳐 올라 이미 숨소리마저 가로막은 알 수 없는 설레임도 그것이 과연 행복인지 장담하지 못했다. 나는 행복한가.

 

행복하지 않을 리 없다. 정녕코 내 어깨에 기대어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 어찌 내가 이 여성을 더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던가. 아름답고, 자는 모습마저 흐트러짐이 없는 이런 단아한 여인을 어찌 그 누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비록 잠시뿐이지만, 내 옆에 잠시 같은 시간을 했다는 것만으로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 나는 왜 행복함을 고민하는가. 느껴지지 않아서? 혹은 지금의 벅차오른 감동은 지속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나는 착각했을 뿐인가. 이미지에 포장된 그녀만을 보면서, 단순히 나는 그저 내 안에 담겨진 어떤 미감의 충족을 느끼면서 그 획득을 곧 행복이라고 착각한 것이려나.

 

깜빡, 앞 선반에 가로 놓인 모니터 화면이 변했다. 영하 22도. 결코 봄이라고 믿을 수 없는 온도. 계절을 뜻하는 것은 수도 없이 많겠지만 온도는 그 가장 큰 상징이라고 쉽게 믿었다. 혹은, 그 날짜가 그 계절을 상징한다고 믿었다. 지금은 봄이 아닌가? 곤한 잠을 이루는 그녀의 연둣빛 스커트만큼이나 내 곁의 봄은 너무도 명료한 것으로 느꼈기에 나는 길을 바잡았다. 영하 22도. 봄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그토록이나 맑은 하늘색의 구름들 사이로 이토록이나 매서운 혹한이 지금껏 남아있었을까. 화면은 다시 변했다. 쓰읍, 하는 가벼운 마찰음이 오른쪽 귀를 간질였다. 향긋한 소리. 창 덮개 사이로 흰 빛이 예리하게 파고들곤 사라졌다. 밖에서는 아직도 폭풍이 몰아치는 것이려나. 봄인데도, 겨울이 사라진 봄인데도 시베리아이기 때문에 그저 추운 것뿐일까. 엷은 하늘색 청명한 구름 사이로도 이토록 시린 냉기가 그대로 남아있던 것일까. 흰 빛이 사라져 봄을 노래하는 것 같았던 그때 신촌의 하늘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무엇을 보고 봄을 노래했던 것일까. 아니, 어떤 봄을 노래했던 것일까, 나는.

 

어슴푸레한 미등을 가리고 승무원이 나를 바라보았다. 필요하신 것이 있나요. 미등을 꺼드릴까요. 독서등이 필요하시다면 여길 누르시면 됩니다. 자는 이의 귀를 괴롭히지 않도록 나지막이 말하는 훈련을 받았겠지만, 그래도 피곤한 그녀가 혹여 깰까 걱정스러워 나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미소 한 모금, 친절 한 꺼풀을 걷고 뒤돌아선 승무원은 다른 깨어있는 누군가를 향해 걸어갔다. 비행기에 오르기 전 듣던 CD 플레이어의 이어폰을 다시 왼쪽 귀에만 꽂았다. 플레이를 누르지는 않았다. 그저 이어폰을 귀에 꽂아두고 싶었을 뿐이었다. 험히 쓰는 탓에 항상 망가지는 다른 한쪽은 꽂지 않았다. 왜 꽂지 않았을까. 가슴 앞 켠에 덜렁이는 오른쪽 이어폰을 촉각하며 디스플레이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행복한 여행되시길 바랍니다. 가는 길까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행복한 여행이라. 어떻게 하면 행복한 여행이 될까.

 

진부한 질문이었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인데도 부끄러울 만큼이나. 행복 따위, 무언지 알 수 있을 리가 없지 않던가. 행복은 그저 행복일 뿐이고 그 외의 언어로 규정하려는 시도의 실패는 행복의 모호성이 아니라 언어의 모호성에 기인하지 않던가. 그저 나는 그토록 원하던 독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타있고 우연히도 내 옆엔 아름다운 그녀가, 정말 우연히도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자고 있다. 간단했다. 이게 행복이었지. 매체를 통해 볼 때마다 그 단아하고 기품있는 모습, 천박하지 않고 우아한 그녀를 바라보면서 철모를 사랑의 꿈에 나는 얼마나 젖어들었던가. 이뤄질 수 없는 꿈을, 그 어떤 초월자는 이런 식으로 일시적으로나마 충족시켜준 것이라 나는 믿기로 했다. 행복이었다. 이것이야말로. 하지만

 

나는 내가 지금 행복하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행복은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물상이 아니라고 자위하면서도, 난 스스로 꿈에서나 바라던 지금 이 상황에서 도대체 왜 내가 행복하지 않은 것인지 어느새 자신에게 되묻고 있었다. 과연 행복한가. 매체나 일상에서 본 숱한 또래 여자애들 중에 기품이 있다, 혹은 우아하다고 말할 만한 몇 되지 않는 이였기에, 눈물 흘리지 않으면서 그토록 고통스러운 단장 斷腸의 슬픔을 역력히 보여줄 수 있는 기품있는 사람이었기에, 그 어떤 일상이나 심지어 걸음걸이에서도 단아한 매력으로 자신을 감싸고 있던 사람이기에 사랑하던 사람 아니던가. 그저 한번 가까이 할 수 있는 것만으로 행복할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을 하던 이가 아닌가. 소망의 달성은 곧 행복의 성취가 아니던가? 혹은 행복의 절정에서 차라리 행복을 느껴내질 못하는 것인가. 이도저도 아니라면 단지 나 자신의 소심함이 마음껏 기뻐해낼 자유를 스스로 막아서고 있는 것뿐인가.

 

행복하고 싶다고 느끼면서 진정 행복해하지 못하는, 아니 스스로 자신의 행복을 남에게로 돌리면서 그것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그 수많은 사람들을 경멸해본 적이 있었다. 복도 건너편에서 사이좋게 손을 맞 잡은 노부부도 아마 수십년의 시간을 자식을 위해, 직장의 동료들을 위해, 나라를 위해, 그들이 행복해지는 것을 자신의 행복이라 믿고서 살아왔을 것이다. 눈물나게 아름답고, 눈물나게 비참한 그런 식의 생활을. 도리어 자신이 행복해지는 것이 못내 못 견디게 즐거워서, 차라리 슬퍼지고 마는 길을 택하는 그런 사람들. 지독하게 슬퍼서 도리어 기쁘게 살아가는 그런 많은 이들. 내 안에서 행복과 의미를 이끌어내겠다고 나는 서원했고 그 길이 이기적인 욕망으로 뒤덮이지 않게 주의하려 했었다. 이 아름다운 여인과의 기묘한 하룻밤이, 비행기 위의 환상같은 단잠이 어찌 아니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일까. 아직도 충족되지 못한 갈망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상상한 행복이 채 행복이 아닌 것인가.

 

어둡게 가라앉은 디스플레이가 다시 시간선 하나를 더 지났음을 알렸다. 결국 나는 다시 손을 들어 맥주 한 캔을 다시 청했다. 세 시간, 앞으로 비행하는 세 시간은 아마도 내 인생에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되리니. 잠으로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기엔 너무나도 감동스러운 시간이었으니까. 맥주를 다시 청했다. 술이 요새 조금 빈번하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설마 맥주 서너 캔인데. 애주나 대주가를 자처하지는 않지만 기념할만한 순간에는 항상 한 잔의 위스키를 나는 갈망했다. 지금 이 순간을 더 뇌리에 깊이 남기기 위해. 보다 더 명료한 행복의 기록을 위해. 건배.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가벼이 올려든 캔을 나는 입으로 가져다 대었다. 아까처럼, 두번째 캔에서도 알싸한 향기가 났다. 설레도록 기품있는

 

확신할 수 있어?

 

무슨 확신 말이야.

 

정말로 지금 행복하니?

 

그래. 행복해. 아니, 행복해야해. 행복하다는 걸 스스로 너무도 잘 알잖아.

 

정말 행복하니 지금?

 

왜 그래 진짜. 행복하다니까. 너도 알잖아. 내가 이 여인을 얼마나 사모했는지. 우연이지만, 그리고 잠들어 있지만 난 지금 그녀와 같이 있어. 신기루 같은 기분이지만, 환상의 여인에게 적절한 시간이라고 생각해. 행복해 그래서.

 

그래서, 정말 행복하니?

 

귀찮게 굴지 마. 행복해. 지금은 네가 나설 때가 아니야. 행복해. 어떻게 행복하지 않을 수 있어? 몇 년을 꿈 속에서나 마주하던 상황이고, 그녀는 내 어깨를 베고서 향기를 온통 흩뿌리고 있고 난 조용히 맥주나 기울이고 있잖아. 행복해. 행복해. 말할 나위 없이 기뻐. 다시 행복하냐고 물을 생각이라면, 꺼져. 네게 허비할 시간이 없어. 이 기쁨을 되씹고 그녀의 우아한 모습들을 그려보면서 보내기에도 3시간은 너무 짧아. 사라져. 귀찮게 하지 마. 지금 이 행복한 시간을 너와 투닥거리며 허비할 여유는 내게 없어. 지금처럼 행복할 수가 없기 때문에.

 

아니, 넌 행복하지 않아.

 

뭐라고?

 

넌 행복이 뭔지도 몰라.

 

목소리는 사라졌다. 퍼뜩, 눈을 떴다. 디스플레이는 여전히 새벽 1시 11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고작해야 이삼분쯤 잠든 건가. 그녀는 여전히 내 어깨를 베고 향긋한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었다. 편한 모양이었다. 마음이 놓였다. 평소처럼 화들짝 놀라 잠에 깨었다면 자칫 깨버릴 수도 있었을 텐데. 다행이었다. 정말로. 검게 가라앉은 그녀의 앞에 가로 놓인 디스플레이 화면 위로 그녀의 얼굴이 비췄다. 너무나도 자그마한 얼굴에 지나치게 크게 보이는 검은 안경이 밀려 내려와 있었다. 그녀의 그 두 눈을 덮은 눈꺼풀 위로 미등의 오렌지색 빛이 부드럽게 내리비추는 것이 느껴졌다. 공항을 들어서던 그때 보았던 노란 팬지나 하늘거리는 부드럽고 작은 꽃잎을 가진 개나리같은 그녀의 얼굴이 그립도록 아름다웠다. 그러나 나는 알 수 없었다. 잠깐 눈을 붙인 새에 들려온 그 말들이 여전히 귓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지독하게도 밝은 그 목소리는 저주처럼 귓속을 떠나지 않으면서 계속 되묻고 있었다. 너는, 행복하냐고.

 

행복하지 않다니. 사실 자신이 없었다. 비록 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그녀였지만, 그래도 지금 내 어깨를 베고 잠든 이 여인은 내게 너무도 각별한 사람이었다. 그 걸음 하나, 목소리 하나까지 기품과 우아함을 느끼게 해준 그녀는 내가 닿고픈 지향점 그 자체였다고 해야 할까. 단아함을, 꿈꾸고 천박하지, 않은 내 자신이 되길 원하지만 언제나 너무도 비루한 내 자신을 나는 너무도 경멸했다. 그리고 그녀는 오로지 우아했다. 인터뷰에서, 혹은 영화 속에서 한 마디 말을 하는 목소리, 손놀림 그 끝마저도 단아했었다. 내가 닿을 수 없는 그 너머에서 그녀는 서 있었다. 그녀의 생활과 일상 속에 녹아있는 기품은 향기가 되어 매체 밖에 서있는 나의 마음을 감싸 안았고 나는 순수하게 절망했다. 깔깔거리며 밝게 웃는 모습에 마저 비루함은 없었고, 지극히 슬픈 모습의 연기에서 눈물 없이도 한을 표현하는 그녀의 깊은 감성의 발로를 보면서 나는 따를 수 없는 깊은 그녀의 내면을 보았고 나는 패배했다. 그녀의 기품은 일상에 녹아있었고 곧 나의 지향점이 되었다. 그녀는 내가 원하는 나의 이상형에 다름없다.

그런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가능하려나. 나는 곧 내가 단 한번도 대화를 섞어보지 못한 그녀와 사랑에 빠진 것을 깨달았다. 우아함, 그녀 자신의 내면을 가득하게 메운 성찰과 고민의 깊이를 연기하는 중간마다 향기처럼 배어나오는 모습을 보며 난 오로지 그녀의 뒷 모습을 한없이 바라보는 내 자신을 깨달았었다. 사랑이란 독점적인 영향력을 상호간에 행사하는 것이 허가된 관계성을 말하는 것이고, 사랑의 시작은 상대방의 영향력만이 내 자아를 독점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녀는 그 발걸음 하나, 심지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의 연기마저도 아름다웠고 내 지향점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녀에의 지향이 행복이 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하였다. 그리고 그 확신은 천박한 내 자신에 대한 경멸 위에 서있었기에 나는 더욱 그녀를 사랑하였다. 그녀의 아름다움을 경애하는 만큼 나 자신의 비루함이 보상받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우아한 그녀의 모습을 직접 대하면서 손가락 끝마저 천박하게 행동하지 않으려 혼신의 주의력을 집중하는 지금, 나는 가장 나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행복하지 않다고 나는 고민해야 하는가.

 

한 캔 더 필요하신가요? 눈을 들어보니 갈빛 제복의 승무원이 나를 향해 말하고 있었다. 아까부터 왠지 승무원들이 거듭 내 주변을 오갔다. 아마도 깨어있는 사람이 몇 없는 모양이지. 모포나 베개가 혹시 더 필요하시진 않으신가요. 이보세요. 난 잠들지 않을 거라니까. 시간이 아깝습니다. 이 행복을 나눌 여유는 없어요. 하긴 오른편으로 몸을 기울인 채로 꽤 오래 견딘 것인지, 등이 조금 저려왔다. 미소 띈 얼굴로 의아하게 바라보는 저 승무원은 불편한 자세로 굳이 불편을 감수하는 내가 신기한 것일까, 아니면 나와 그녀의 관계가 궁금한 것일까. 하하. 그저 이 비행기에서 잠에서 깨어난 1시간 전이 첫 만남이자 마지막 만남의 확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뭐라고 생각하려나. 그나저나, 쓸데없는 스캔들이라도 도는 것은 아니려나.

 

생각해보니 그것도 꽤나 걱정스러웠다. 연예인, 그것도 얼굴이 꽤 알려진 그녀를 알아보는 것은 비단 나 뿐만은 아닐 터이고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승무원들은 연예인의 비밀 여행을 엿보는 것이 그리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인데. 자칫, 연인과의 몰래 해외여행 정도로 소문이라도 나면 난처할 터였다. 진정 그러하였다면 나 역시 기뻐할 일이겠지만 사실이 아니었으니까. 실은 그보다는 생각 하나조차 비루한 나같은 놈과 그녀가 일말이라도 엮이게 되는 것은 내 쪽에서 정말로 거부하고 싶었으니까. 그녀의 기품이 이런 천박함 때문에 훼손되어서는 안 되니까.

 

지나친 결벽이 아닐까. 처녀인 연인과의 첫 하루 밤을 목전에 둔 청년의 이유모를 불안감이라거나, 혹은 단순히 마초적인, 보호해야하고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 그런 남성주의적인 생각들. 그녀를 걱정하는 마음 자체가 어쩌면 여성에 대한 단순한 사회적 함의들 위에 입각한 무분별한 감성의 노출일 따름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마저 순간 떠올랐다. 단아함, 우아함이란 그저 얌전한 여인, 현명하되 조용한 그런 여성에 대한 폭력적 사상의 단말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런 불안함. 그래서는 안 되는데, 그 시간 동안 그녀의 슬픈 표정의 연기를 보면서, 밝게 웃는 얼굴을 보면서 그 기품을 느끼고 나 자신의 비루함을 벗을 수 있던, 그런 그녀의 우아함이 고작 그런 폭력의 위에 선 것일 수는 없는데. 나는 그 기쁨과 행복이 올곧게 순수하게도 맑은 이상으로부터 내게 내려진 구원의 사닥다리라고만 믿었는데.

 

혹시, 행복하냐는 자아의 되물음은 내 안에 내포된 그런 불안함의 발로는 아니었을까. 아아. 그녀의 짧게 친 머리카락이 나의 목덜미를 간질였다. 그녀의 머리는 너무도 무겁게도 나의 굳은 어깨를 눌렀다. 고작해야 불안감이고, 나의 소심함일 따름이야. 확신할 수 없었다. 디스플레이는 이제 그리스 도착까지 남은 2시간 30분을 알려주며 붉게 점멸하였다. 밖은 여전히 영하 20도를 오르내렸다. 나의 마음은 그 이상으로 차갑게 내려앉았다. 그래서 행복하지 않은 것이었을까. 사랑이, 그녀에 대한 경애가 결국 또다시 천한 나 자신의 불쾌할 정도로 얕은 사회학의 감수성에서 비롯되었음을 내면의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녀를 만나 함께하면서도 행복하지 않을 것임을 스스로 깨닫고 있었기에. 그랬다. 나의 비루함은 끊임없이 세련하지 못한 자신에의 성찰에서 비롯되었고, 따라서 나의 사랑에 대한 그런 의혹은 의혹 자체만으로도 나의 천박함을 상징하였다.

 

갑자기 확신과도 같은 강렬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를 만났음에도 행복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녀를 순수히 대할 수 없을 정도로 비루한 나 자신 때문이라는 느낌이. 자는 모습, 살짝 다문 입술마저 그녀는 단아했다. 아무렇게나 단장한 듯한 머리칼의 부드러움에서도 그녀는 향기를 내뿜었다. 우아한 그녀의 향기에, 그러나 나는 다가갈 수 없었다. 그러기엔 나는 너무도 비루했고, 나의 양심은 너무도 강렬히 그녀를 사모했다. 따라서 그녀의 매혹적일 정도로 깊은 내면의 향기는 내게는 결코 닿아서는 안될 처녀지에 해당했다. 나는 바로 옆에서 그녀를 바라보면서도 행복할 수 없었다. 바로 그래서.

 

애시당초, 사람들의 흔한 말이 옳았을런지도 몰랐다. 연예인, 이미지로 사랑하는 것의 부당함을 나무라는 그들의 말이 옳았을 런지도 몰랐다. 이미지로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결국 사랑하는 나 자신에 대한 성찰의 결핍을 의미한다는 것을, 그래서 그 사람들이 나를 나무랐다는 것을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그래. 나는 벌거벗겨졌다. 그녀를 직접 접함으로써. 그녀가 나의 어깨를 기대어 잠에 빠져든 것만으로 나는 비로소 나 자신을 직면하게 된 것이다. 끝간데 모를 정도로 비루한 나를.

 

정확해.

 

잠들지도 않았는데 다시 환청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까, 지옥같이 밝은 봄빛의 그런 목소리가.

 

정확해. 깨달았나보구나. 이제야. 멍청하게도.

 

별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나는 비루했고, 내 마음 한 편에 살던 이 녀석은 최소한 나보다는 덜 비루했으니까. 나는 단아한 그녀에게 올곧게 패배했고 내 마음에게 마저 굴복했다. 디스플레이의 기온은 마침내 영하 25도를 기록했다. 살며시 들춘 창 덮개 뒤로 어두운 구름의 흔적만이 스쳐지나갔다. 날개 한 끝에 켜진 불빛과 나의 눈 사이로 수없이 스쳐가는 물방울의 향연이 어지러이 흔들렸다. 그렇게도 춥고 그리도 어두웠다.

 

어둡다고 느끼는 것도 네 착각이지.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만큼이나.

 

부정할 순 없었다. 스스로의 비루함은 스스로에 대한 끝없는 의심만을 낳는다. 참혹한 날씨, 굶주린 폭풍의 물결 또한 천박한 회피를 꿈꾼 비루함의 발로일 따름일 수도 있으니까. 창 밖에는 구름 속 물방울의 흐름이 다시 차츰 굵어져 가는 것이 보였다. 번개는 치지 않았다. 어두운 그림자가 날개 틈새를 뚫고 재빠르게 지나갔다. 심한 바람이 날개 한 끝을 흔드는 것 같은 착각이 보였다. 비행기는 그러나 흔들리지 않았다. 왠지 발 아래가 붕 뜬 것 같은 몽환적인 느낌은 여전히 그대로였지만 비행기는 굳건했고 그녀도 움직이지 않고 그저 편하게 잠에 빠져있었다.

 

행복이란 건 밖에서 찾을 수 없는 걸 너도 잘 알고 있잖아. 네 스스로 너 자신의 의미를 찾고 행복을 만들어야 하잖아. 비겁한 놈. 넌 그 책임을 네 옆에서 잠든 그녀에게로 이연했어. 책임을 견디지 못하고. 비루하게도.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가리던 피로의 검은 흔적은 이미 거의 사라져있었다. 평온하게도, 사랑스럽게도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계속 자고 있었다. 그 얼마나 피곤했을까. 얼마나 괴롭도록 웃어야만 했을까. 그녀가 겪은 고통을 나는 알 수 없었다. 허나, 그 수많은 팬이라는 이름의 욕망으로부터 떠넘겨진 행복의 책임을 그녀는 어떻게 견뎌내고 있었을까. 행복하지 못한, 행복하길 원하는 그 많은 이들의 욕망을 대하며 그녀는 어떻게 그 힘겨운 짐을 지고도 밝게 웃거나 하염없이 눈물지을 수 있었을까. 나는 알지 못했다.

 

네가 말하는 사랑이란, 너의 경배란 또 다른 욕망에 불과해. 그녀의 이미지를 보고 그녀의 밝음과 그녀의 깊이를 마치 은행의 충실도를 판단하듯 생각하고 너의 행복을 예금한 것에 불과해. 그녀는 그런 너의 예금을 그동안 힘겹게 불려주었고. 그녀 눈 밑의 피곤의 흔적은 바로 네가 만든 거야. 그러면서도 자각하지 못하고, 더 큰 행복을 날로 물려받기만을 원하기나 하고. 넌 그녀를 사랑한 것이 아냐. 그저 그녀의 존재를 갉아먹고 생을 영위하는 더러운 괴물 같은.

 

검게 죽어버린 그녀 자리의 디스플레이 위로 한 남자가 눈물 흘렸다. 불쌍했다. 하지만 그 남자의 눈물이 슬퍼보이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깨달은 기쁨, 자각의 한스러움만이 그 얼굴을 가득 메웠을 따름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의미가 무언지 그는 전혀 알지 못했으니까.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왠지 그럴 것이라고, 나는 그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눈에도 눈물이 흘렀기 때문에, 나는 그 남자가 너무도 불쌍했다. 나 자신이 불쌍하다고 생각하기보다는 그게 편했다. 아직도.

 

정말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지금 네 어깨에 기댄 그녀뿐 아니라 그 누구라도 네가 사랑할 수 있기 위해서는 너 자신을 우선 봐야 하잖아. 네 자신을 직접 대면할 용기조차 내지 못하고 저 순수한 소녀 같은 여인에게로 떠넘기는 그런 불민한 남자가 그 어찌 진정으로 타인을 대면하며 사랑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는 거지. 행복도, 너 자신을 확인하고 그 욕망을 인식해야만 네게 내려올 축복이야. 떠넘겨서도, 단지 기다려서도 행복은 내려지지 않음을 넌 이미 알고 있잖아. 연둣빛 스커트, 개나리색 블라우스에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네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달아나는 너를 잡고 누군가 네 손에 쥐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너 자신을 직시하고 괴물같은 천박함을, 언제까지고 피하기만 하는 더러운 근성을 버리지 않고는 행복할 수 없어. 저주, 속에서 언제까지고 행복할 수 없는 자신을 한탄하기만 할 생각이 아니라면.

 

나는 그 방법을 모른다. 나 자신의 천박함, 이미 인에 박힌 비루함을 버릴 수 있는, 정녕 그녀처럼 깊은 슬픔의 명랑함을 내 것으로 만들 그런 방법을. 내가 정말로 행복해하고,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그런 방법을 나는 모른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고, 누구에게고 사랑받고 싶었다. 비루하지 않게, 나 역시 우아한 기품을 내 것으로 만들 방법을 알고 싶었다. 나는 모른다.

 

굴레를 벗어던지는 방법은 피하는 것만은 아니지. 단지 주어진 끼니에 감사하며 썩어빠진 뼈다귀를 갉아먹는 것만으로 생을 영위하던 부스럼투성이 늙은 개라도, 제 목을 감싸 안은 목줄을 물어뜯을 여력만은 남겨놓는 법이니까. 목줄을 뜯다 앙상한 이빨마저 다 뜯어져 나갈지라도 조금 더 자신있게, 한번만 용기를 내서 잡아당기면 희망이 있을 수도 있겠지. 자유를 택하고 스스로 걸메진 도피의 굴레를 벗어던져. 비루하지 않게, 천박하지 않도록 너 스스로에게 조금은 솔직해져. 너의 욕망을 인정하고 네 비루함의 반대항으로서가 아니라, 그저 한 인간과 인간으로 사랑하려고 노력해. 아프더라도, 힘겹더라도 자유를. 네가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비루함을 방패처럼 걸머진 네가 그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아. 나 스스로 그 얼마나 천박한 나인지를 알고 있기에 그럴 수 없었다. 눈물의 흔적 마저 이제는 말라붙었다. 나의 어깨를 그리도 편안히 베고 있는 그녀에게 한없이 죄스러웠다. 그 미안함마저도 실은 천박함의 발로임을 알기에 나는 몸서리쳐지게 한스러웠다. 흑, 하는 소리를 내며 나는 눈물 흘렸다.

 

어느새 목소리는 다시 들려오지 않았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승무원의 동그랗고 검은 두 눈이 예쁘게 빛났다. 왼손을 들어 나는 눈을 훔쳤다. 그 통에 손을 뗀 창 덮개가 슬며시 내려 닫혔다. 승객님, 불편하신 것이라도 있으십니까? 없지요. 빙긋 웃으며 답했다. 눈물이 말라붙은 얼굴로 미소띄는 얼굴이, 미남도 아닌 내 모습이 얼마나 웃겼을까. 그러나 잘 교육받은 탓인지 승무원은 웃지 않았다. 그보다는 걱정을 한 가득이 담은 얼굴로 되물었다. 승객님? 건의사항이나 개선사항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시면 최선의 노력으로 저희가 해결하겠습니다. 예. 그런데 당신들 문제가 아닌데. 괜찮다는 말로 돌려보내려 했지만, 승무원은 끝내 다시 입을 열었다. 옆 자리에 계신 연인 분께서 무슨 문제라.. 아니에요. 아니라니까. 자칫 화를 낼 뻔했다. 그녀가 깨어나게 할 수는 없으니까, 나는 힘겹게 밀려나오는 화를 다시 안으로 우겨넣었다. 맥주나 한잔 더 주시겠어요? 승객님 지금 네 잔째인데, 괜찮으신가요? 그리 쉽게 취하지 않아요. 괜찮아요. 조금 우울해서 그래요. 걱정할 거 없어요. 당신이.

 

맥주는 여전히 차가웠다. 그리 말하려던 것이 아닌데 너무도 차갑게 말한 것인가, 싶을 정도로. 예. 허나 여전히 그 목소리는 밝았다. 승무원들도 꽤나 힘들겠지. 우울증 환자는 혹여 아닌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지 못하면서도 사고라도 나는 일이 없도록 해야할 테니. 그들의 고충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나란 녀석은 어딜 가나, 이토록이나 민폐일 뿐이었다. 언제나, 어디서나 기품있는 그녀와는 전혀 다르게도. 맥주캔의 목을 잡고 가볍게 한 바퀴 돌렸다. 찰랑, 하며 맥주가 캔 안을 감싸고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따라 희한하게도 맥주에서 달콤한 향기가 났다. 허나 맥주는 텁텁한 평소 맛 그대로 였다. 언제나처럼.

 

그녀는 과연 행복할까.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끔찍한 비극에서, 혹은 한없이 일상적이어서 더더욱 슬픈 칸딘스키의 차가운 추상처럼 냉정하게 분할된 뜨거운 슬픔의 영화 속에서 조용히, 하지만 단호하게 말하고 슬픔 때문에 아름답게 웃고 너무도 비참하리만큼 절망하는 그런 연기들. 그 끝 모를 내면의 깊은 고민과 성찰에서 비롯되었을 기품과 단아함을 한없이 내비치는 그녀의 모습에서 일상화되고 항상 몸에 배어있게 된 그런 우아함을 나는 읽었다. 아니, 읽었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면의 슬픔을 안고서, 그녀는 과연 행복했을까. 그녀의 웃음, 티없이 맑은 표정을 보면서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을 리 없었지만, 허나 실은 그녀가 행복했을지에 나는 관심 두지 않은 것은 아닐까. 영상에 비치는 그 맑은 모습 하나만을 갖고 그녀가 행복하다고 믿은 것은 아닐까.

 

이미지 위에 서서 대상을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더욱 명확해질 필요를 가진 말이기도 하다. 단지 스쳐간 이미지에 따라 대상을 판단하고 그것에 대해 말하는 것은 정녕코 위험하다. 이같은 태도는 작게는 대인관계를 붕괴시킬 수 있고 크게는 억압적인 사회 구조에 스스로를 포섭하여 적극적으로 재생산하는 무비판적 시민을 만드는 토대로 자신을 몸 바쳐 제공하게 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나레이션처럼 머리 속을 스쳐가는 마치 사회학 교과서 같은 말의 홍수가 이번엔 다시 머리를 어지럽혔다.

 

우리는 우리의 인식이 엄연한 한계를 갖고 있고, 결국 대상을 온전히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는 현대의 철학이 우리에게 던져준 숙제이며 우리를 억누르고 있는 일종의 진리다. 헌데 이같은 사실을 토대로 이미지에 입각한 사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변명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 결국 우리는 대상을 완벽히 인식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로지 찰나의, 혹은 실질적인 접촉을 수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형성된 이미지만을 갖고 상대에 대해 판단 내려도 실존에 닿지 못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라고. 이는 결국 우리는 전 국민 모두가 범법하는 것이 사회통계학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모두가 범죄를 저질러야 한다는 의견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차라리 그보다는 우리는 상대에 대해서 명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쉽게 판단하지 말고 계속 이해하려 노력해야한다는 말로 바꿔 쓰는 것이 조금 더 바람직하다. 모른다. 알지 못한다. 그래서 너는 더 알려고 노력해야한다. 알지 못하면서 그걸 정당화하는 건 실로 정당하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단지 책임을 회피하는 것뿐이다. 너는 놓쳤고 인식을 흐렸다. 알지 못하는 것에 불과하다. 아예, 너는 그 어떤 대상에서도 눈 돌려 회피한 것일 따름이다. 행복을 떠맡긴 그녀조차도 넌 진정으로 이해한 것이 아니다. 넌 그저 이미지에 눈 밝히고 믿고 싶은 대로 믿은 것뿐이다. 이렇게 작은 어깨로 이토록이나 피곤해하는 모습 그 어디에 언제나 한결같은 행복과 웃음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냐. 말의 홍수는 교과서 속에서 밖으로 흘러나와 나를 감싸고 괴롭혔다. 너는 심지어 네 멋대로 네 행복에의 책임을 떠넘긴 그녀에게조차 무책임했다, 라고. 그녀를 연모한다 하면서 정말 그녀를 알려 한적 없었다고.

 

알고 있다.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 일상에서, 연기 한 끝한끝에서, 눈길 보내는 행동 하나마저 기품있는 그런 모습은 단순히 이미지가 아니야. 진정 그 자신이 정말 그런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런 매사에서 항상 그렇게 기품을 보일 수는 없어. 그 자신이 그 얼마나 스스로 연마하고, 세련해 낸 것인지, 발걸음 하나에서도 지극한 우아함을 그토록 평범하게 드러내 보이는 그런 사람인데, 그런 일상은 아무나 그리 일상처럼 내보일 수 없는 것인데, 그게 어떻게 이미지가 될 수 있겠어. 단순히 겉모습만을 본 것이 아니야. 어차피 우린 이미지만 볼 수밖에 없고, 마주 앉아 대화하는 친구조차 우린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 없어.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 그의 모습들을 하나하나 알아간다는 것과, 매체에서 드러나는 말투 하나, 목소리 한 소절, 손짓 그 끝에서 드러나는 일상을 읽는다는 것은 하등 다를 것이 없어. 그녀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이었고 나는 알려고 노력했어.

 

난 그저 이미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기품과 우아함을 사랑했고 그런 단아함을 자연스레 내뿜을 수 있는 그녀를 연모했다. 매체를 통해서만 접해서, 그녀를 단 한번도 마주하지 못했지만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 믿었다. 그토록이나 아름다운 그 모든 것을 내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런 모든 것이 다만 내 내면에서 만들어낸 허상일 따름이려나. 혹은 그녀가 진정으로 생각하는 그런 면모와는 전연 무관한 이미지일 따름일까. 복잡한 만큼 생각은 정리되지 않았다.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 것만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으니까, 그녀는 행복할까. 그토록이나 기품있는 그녀는 행복할까.

 

왜 나는 그녀를 사랑할 수 없을까.

결국 다섯 번째 맥주를 나는 들이켰다. 당혹스러웠으니까. 창 밖은 여전히 영하 20도를 오르내렸다. 그리스의 공항까지, 아직 1시간 넘게 긴 시간이 남아있었다. 태양은 보이지 않았다. 현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었다. 디스플레이는 왠지 너무도 멀리 동떨어져 있어 보였다. 가장 황홀하다 믿었던 시간이 가장 끔찍하게 변해 버렸다. 추웠다.

 

흰 눈이 아직 소복이 쌓여있는 둔덕에 나는 홀로 서있었다. 아무도 내 곁에 없었고 그 누구도 나를 바라보는 이 없었다. 나는 아무 것도 걸치지 않았다. 추웠다. 휘날리는 눈발은 없었다. 둔덕 아래 벌판에는 연둣빛 잔디가, 연분홍빛 진달래가 피어올랐지만 내가 있는 둔덕에는 아직 눈이 녹지 않았다. 뒷산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 눈이 녹지 않는다. 추웠다. 나는 눈을 치우지 않았다. 나풀거리는 고운 개나리 꽃잎의 결을 그리며 나는 눈을 뭉쳐 던졌다. 개나리 가지가 하나, 꺾어졌다. 나는 그저 개나리가 좋았을 뿐인데. 개나리 꽃잎에 그저 닿고 싶었을 뿐인데.

 

봄날은 오지 않는다. 내가 원하지 않는다면. 봄은 왔으되 봄이 아니었다. 내가 본 봄은 그저 다른 봄일 뿐이었다. 나의 봄은 오지 않았다. 봄이 오지 않고선 나는 사랑할 수 없다. 사랑해서는 안된다. 비루한 자신을 뜯어내기 전에는 사랑해서는 안된다. 겨울을 가셔내지 않고서 사랑할 수는 없다.

 

여섯 번째 맥주는 천천히 마셨다. 희한하게도 알싸한 향이 나는 맥주를 혀끝으로, 코끝으로 깊이 들이켰다. 텁텁한 맥주가 혀를 감고 메말라 버린 목을 적셨다. 그녀는 잠에서 깨지 않았다. 기내엔 봄을 느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녀의 연둣빛 치마, 개나리빛 블라우스만이 사랑스런 봄을 느끼게 해줬다. 닿을 수 없게도. 도리어 차가운 회색과 흰 빛의 시트와 기구들의 차가움 뿐.

 

어깨의 저림은 없었다. 그녀는 그토록 가벼웠다. 아름다운 그녀는 그토록 자유로웠다. 내가 상상할 따름이던 이미지, 천박함을 버리고 싶어하던 욕망의 대립항이던 그녀는 그 존재 자체로 정녕코 사랑스러웠다. 닿을 수 없으리만큼 사랑스러웠다. 그녀가 나의 어깨를 베고 있다는 것은. 그럼에도 행복할 수 없었다. 나는. 꿈에도 그리던 그런 상황 속에서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잘못된 것은 꿈이 아니라 단지 나였다. 행복을 행복으로 느낄 수 없는 그런 비참한 나.

 

조금쯤 자유로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 모든 생각들, 그 모든 고민의 고통에서 나는 조금 더 자유로워야 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겨울의 언덕 위에서 내리막을 뒹굴어 떨어지는 것은 봄을 향하는 고통의 자유일 터이다. 비행기 밖의 온도는 영하 어느새 높아져 15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차가운 극한의 공기가 하늘을 가득 메울 때라도 여전히 땅에서는 진달래가 필 것이고, 보드라운 개나리의 꽃잎이 스스럼없이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자만심 없이도. 디스플레이가 다시 점멸하며 한국은 이제 새벽 다섯시가 되었음을 말했다. 자유로워져야 한다. 욕망에서도, 금기에서도. 스스로의 비루함을 벗어던지지 않고서는 나는 행복할 수 없음을 안다.

 

흑해 상공으로 비행기가 날고 있다고 기장이 방송으로 말했다. 곧 그리스에 다다를 테고, 그녀가 깨어날지도 모른다. 그녀는 아마도 영영, 그녀로 인해 그토록 고통스러워한 한 남자가 있었음을 알지 못할지도 모른다. 나는 안다. 나는 내가 그녀를 그토록이나 사랑함을 안다.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함을 안다. 그녀의 단아함을 나는 사랑할 수 있을까. 깊은 그 내면을 내가 깨달을 수 있을까. 모르지만, 모르니까.


Posted by Chlo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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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봐도 7일 정도면 2차 발표가 나올 듯 합니다. 정말 그 길던 채점기간이 거의 다 끝나가네요. 발표 생각만 하면 먹은 게 얹히고 마음도 싱숭생숭하고 뭔가 서늘한게 가슴을 쓸고 내려가는 것 같고, 앞으로 올 날들에 대한 계획이라거나 내년에 다시 수험생활 치를 생각에 골머리가 아프기도 하고, 올해 썼던 답안들이나 미친 짓;; 들이 너무 한스럽기도 하고 복잡한 생각이 뒤엉켜서 생각하는 자체가 고통인 것도 같습니다. 아마 다른 수험생들도 비슷하겠지, 생각하다가도 막상 주변에 알고 지내는 다른 수험생들은 다들 똑똑하고 성실하고, 나와서 대화했을 때 듣기로는 답안들도 잘 썼었고... 나만 떨어지면 정말 얼마나 슬플까, 차라리 다 같이 떨어졌으면! 하는 악의적인 생각을 하다가도 차라리 그것보다는 그 사람들이 다 붙는게 인생 전체로는 훨씬 좋은 거야, 라는 이기적인 생각도 하고. 이래저래 정말 온갖 생각이 다 나는 시절인 것 같아요. 막상 보면 주변 다른 수험생들도 서로 저 사람은 붙었겠고 난 안됐겠지, 이런 생각을 서로 간에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자기 답안에 확신을 가진 사람은 하나도 없겠지만 그렇다고 내년 준비를 벌써 할 수 있는 사람도 없는 것 같네요.

혹시나 수험을 접을 거면 올해가 막차라는 이야기도 많이 듣다가, 또 주변에서 직장생활하는 사람이나 그러다 때려친 사람들과 얘기하면 젊을 때 1, 2년 늦는 것이나 혹은 수험에 돈 천 정도 쓰는 건 그렇게 큰 것이 아니라면서 하고 싶고 소신이 있고 언젠가 될 수 있다면 계속 하라는 말도 듣고 그럽니다. 늦깍이로 군대를 갔다가 제대했을 때 이미 동기 상당수가 취업을 하고 있었고, 재작년에 전역해서 수험을 처음 시작해 이제 27개월 됐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수험 기간이 그렇게 길지도 않으니, 게다가 올해 2차가 행시 2차는 처음 본 것이니(작년에 입시만 2차를 봤지요) 아직 난 더 해볼 여지가 있어,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하지만 남들도 2년 정도 했으면 슬슬 붙는다던데 올해 과락사태나고 이러면 정말 난 가망이 없는 것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고. 언제는 올해 그렇게 공부를 했는데 대체 뭘 더 해야할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막상 내가 모르는게 산더미처럼 많다는 절망감이 들기도 하고요. 나같은 위험기피적 성향이 극단적이게 강한사람이 수험이라니, 미친 것 아닐까 싶다가도 신문이나 사람들 말만 들으면 행시 지망이 안정 지향의 극단으로 여겨지는 것 같아서 웃음도 나고 그러네요. 난 지금 이렇게 불안한데 말이죠.;

이제까지는 사회며 정치며 경제에 관심이 많아서 항상 뉴스도 챙겨보고 논평도 항상 붙여두려고 노력하고, 사회 현상이나 혹은 한국사회의 발전방향 같은 거시담론에 공부도 하고 고민도 많았는데 이제는 그런 거 다 귀찮고 내 깜냥에 무슨.. 공부나 해야지 하는 생각도 들고 하네요. 사실 평생으로 적은 돈이라고는 들어도 일단 당장 매달 수십만원 돈이 학원비로 빠져나가고 하는데 지금 공부 혼자 자습이라도 해야 조금이라도 아끼는 것 아닐까 싶고, 내가 매일 하고 싶은 것만 하고 놀면서 자면서 공부 안하는게 참 비합리적인 행동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올해 행정학이나 재정학 답안 생각하면서 그런 사례라도 좀 더 모으고 암기라도 해두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애초에 그런 논평같은 거 달고 하면서 이름팔리는 것이 굉장히 부담스럽기도 하고요. 알려지는 게 싫지요 사실;

혹시 올해 붙는다면 완전 늦깎이긴 하지만 그래도 올해 졸업하는 처지니, 곧바로 들어갈텐데 그렇게 보면 평생에 이런 휴가는 지금이 마지막 아닐까, 싶어서 여름 내내 정말 하고 싶던 것 다하고 살아보기도 했어요. 자전거로 전국 돌기라거나 야구장 쫓아다니기 같은 소박한 것밖에 안했다는 것이 도리어 서글프기도 하고. 어째 하고 싶은 게 딱히 없었구나 싶다가도 그거면 과하지 생각이기도 하고. 뭐든지 일단 다 내년 수험으로 생각이 연결되어서 맘 편하게 놀기도 그렇고 공부는 막상 안되고 하는 우유부단의 극치인 생활이구나 싶지요. 아니 제 성격자체가 우유부단 덩어리인 것도 같고요. 왜 이리 난 무능할까, 효율적으로 공부하지 못했을까 하는 자괴심도 좀 있고 -_-;;

올해 썼던 답안지를 객관적으로 되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머저리같이 공부했구나 중요한 건 다 빼고 혼자 엉뚱한 걸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랬구나, 아 아무래도 한 세과목(경제학, 행정법, 국제경제학)은 과락나지 않을까 싶다가도 작년처럼 아무 것도 모르던 시절에도 과락이 안났는데 설마 올해 과락이 날까, 어쩌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러면서도 합격을 바라는 건 과욕이라는 생각도 들고 한편으로는 그걸 다시 답안을 쓴다고 해도 정말 뭘 수정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게 잘 썼다는 자신감은 아니고 ㅠ 내 한계를 느낀 것 같은 생각이라 참 생각하는 자체가 힘드네요. 막상 7일 뒤부터 다시 수험 시작하면 우선 그것부터 다시 뜯어보고 스스로 공격해봐야겠지요?

주변 사람들하고 대화하고 연락하면 다들 될거야, 네가 안되면 누가 되겠어 같은 덕담을 해주긴 하지요. 그런데 다시 생각하면 그런 말 하나 못듣는 사람이 어딨겠어요. 자기 지인이나 친척애 에게 그렇게 말 안해주면 그게 싸우자는 거지; 사실 수험생의 7, 8할은 그런 얘기 듣고 살텐데 그건 뭐 위로는 커녕 위안도 안되는 것 같다, 결국 기댈건 자기 실력뿐이야, 라는 자각이 매번 그런 얘기를 들을 때 마다 들곤 하지요. 그냥 관심을 안가져서 저 사람들이 내가 행시 본 걸 몰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발표 난 뒤에 쪽팔리지도 않을텐데. 혹시 합격하면 왠지 더 뿌듯할 거 같은데 하는 소심한 생각이 가득하지요. 군대 2년에 수험 2년 치르면서 아는 사람들의 폭이 굉장히 좁아지긴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는 사람은 많은 것 같고. 수험생들이 수험생끼리 알고지내고, 수험생끼리 사귀고 하는 이유를 알 것 같고요. 결국 동병상련하는 사람 말고 편하게 배려해주는 사람이 어디있겠어요. 하지만 막상 수험생끼리는 2차 발표를 기다리면서 되려 연락을 피하게 되고. 이건 제가 굉장히 발표를 의식하는데다가, 의식하는 주제는 항상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못된 성격이라는 점에 좀 더 기인하긴 하지요. 결과적으로 이런 생활이 더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대인기피가 심해질 것 같아요.

그런 고로 그냥 차라리 발표가 안났으면, 발표가 다가오지 않았으면 싶기도 해요.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랬으면 좋겠어요. 정말 이런 중압감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은데 말이죠. 대입할 때 실패한 발표를 보면서 가슴이 짜게 식던 그 느낌을 (재수했지요; ) 매일 꿈꾸면서 다시 느끼고 있고, 꿈자리나 잠자리가 편하던 날이 별로 없었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합격했다는 통보를 받고 나면 지금 느끼는 중압감을 1년치 더 가중해서 느껴야할테니, 정말 죽을 거 같을 듯 하네요. 그래서 발표를 기다리지 않는 동시에 기다리지 않지도 못하겠는, 기괴한 마음 상태네요. 아마 다른 수험생 분들도 같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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牧孑然孤立 一榻之外 皆欺我者也 明四目 達四聰 不唯帝王 然也 항통之法 使民重足側目 決不可行 鉤鉅之問 亦近譎詐 君子所不爲也. 每孟月朔日 下帖于鄕校 以問疾苦 使各指陳利害. 子弟親賓 有立心瑞潔 兼能識務者 宜令微察民間. 首吏權重 壅蔽弗達 別岐廉問 不可己也. 凡細過小疵 宜含雖藏疾 察察非明也 往往發奸 其機如神 民斯畏之矣. 左右近習之言 不可信聽 雖若閑話 皆有私意. 微行不足以察物 徒以損其體貌 不可爲也. 唯漢刺史六條之問 最爲牧民之良法也.

 목민관은 고립되어 있으며 모두 나를 속이려는 자들뿐이다. 사방을 보는 눈을 밝게 하고 사방을 듣는 귀를 통달하게 하는 것은 오직 제왕만이 할 바가 아니다. 투서를 이용하는 것은 백성들로 하여금 걸음을 무겁게 하고 서로 눈치를 살피게 하는 것이니 결코 행해서는 안 된다. 갈고리로 남의 마음속을 긁는 것 같은 질문은 또한 간휼한 속임수에 가까운 것이니 군자로서 할 짓이 아니다.
  해마다 정월 초하루면 향교에 통첩을 보내어 힘든바를 묻고 각각 이해를 지적하여 진술토록 하라.
  자제나 친빈 중에서 마음가짐이 단결하고 겸하여 일을 할 줄 아는 자가 있다면 마땅히 민간의 일을 미행하여 살피도록 하라.
 수리의 권한이 무거워서 백성의 일이 가리워 지고 서로 트이지 않는다면 따로 염탐하여 알아보는 일을 그만두어서는 안 된다.
 무릇 변변치 않은 과실이나 조그만 흠은 마땅히 덮어둘 것이니 샅샅이 밝혀내는 것은 현명치 못하다. 가끔씩 농간을 적발해 내서 그 기틀이 귀신과 같다면 백성들이 두려워할 것이다. 좌우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말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비록 한가롭게 하는 말 같지만 모두 사사로운 뜻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미행이란 물정을 살피는 데 흡족치 못한 것이며 한갓 체모만을 손상할 뿐이니 할 것이 못 된다.

Posted by Chlo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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